특별한 사랑 어이 할꺼나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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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3:45 조회 1,633회 댓글 0건본문
특별한 사랑 어이 할꺼나 1부
이 야설은 6.25라는 민족 비극 전쟁의 산물로 오랜 세월동안 아픔 속에서 절규하던 어느 쌍둥이 남매의 아름다운 사랑이 축복받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을 야설로 꾸며본 이야기 이며 실화가 아닌 작가의 순수 창작 물입니다.
야설의 더한 재미는 근친을 다룰때 좀더 스릴을 느끼는 작가의 개인적 취향을 바탕으로 꾸민 이야기입니다. 쌍둥이는 아니지만 혹여 남매간에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그림을 그려 보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살던 곳은 지금은 가볼수 없는 원산항에서 약 이십여리 떨어진 읍내인데 당시 우리집안은 꽤 부농 이었으며 당시 인민군들의 말대로라면 지주 계급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으며 툭 하면 보안서에 아버지가 불려가서 혹독한 자아비판을 받는 인민재판을 받곤 하였지만 과거 우리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거나 땅을 붙여먹던 사람들 대부분이 보안서 우두머리 였는데 과거 아버지의 후덕한 인심 때문에 몽둥이질을 면하고 혹독한 자아비판만 받고 풀려나곤 하였다가 끝내는 우리집 전 재산을 헌납 하기로 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는데 육이오가 일어나고 얼마뒤 일사후퇴를 하면서 가족 모두를 데리고 월남을 결심한 아버지는 어머니 형님 한분 누나, 그리고 쌍둥이 남매인 내 누이 이렇게 여섯식구가 원산항으로 배를 타려고 같는데 밀고 밀리는 아수라장 속에서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
당시 내 나이는 세살인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피난짐을 짊어지고 있어 나는 형님이 등에 업고 누이는 누나가 업고 있다가 그만 가족과 헤어져 떠밀려 배에 타게된 형님과 나는 가족 모두를 잃어 버리고 말았답니다.(내가 성장한 후에 형님이 들려주신 우리 집안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피난을 오게 된것이 부산 이었으며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으며 형님과 나 둘이서 너무도 고생하며 먹을 때보다 끼니를 굶는 것이 다반사로 겨우 목숨 부지하며 살다가 전쟁이 끝나고 형님과 나는 서울로 올라와 형님이 넝마주이를 하면서 미아리 넘어 산동네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나보다 여덟살이 위인 형님의 사랑으로 나는 국민학교를 입학하게 되었고 형님은 닥치는 데로 일을해서 겨우 의식주는 해결 하다가 내가 중학교를 입학 할때쯤에는 산동네를 벗어나 돈암동 시장에 잡화 가계를 내어
형편이 좋아져 주변 어른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 중2학년이 되면서부터 인데 당시는 그저 가슴 설레이고 이런 것이 행복인가 하면서 꿈속을 헤매는 그런 날들이 내가 군대를 다녀와 결혼을 하려는 그 순간까지 뿐이었답니다.
다시 중2때로부터 시작 하겠습니다.
형님이 주시는 차비를 아끼려고 학교까지 약 이킬로쯤 되는 대를 걸어서 다니게 되었는데 여름이 시작 될무렵부터 내 가슴이 쿵당 거리는 일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등교길을 가다보면 거의 매일 어떤 지점에서부터 정말 예쁜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중생이 내 앞을 가고 있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2가 되면서부터 이니까 한 삼개월정도 전부터 여학생과 자연스레 학교까지 같이 걷게 되었는데 처음엔 무심코 보다가 한달이 넘으면서부터 차츰 호감이 가기 시작 하였으며 앞에 가고 있는 여학생 얼굴이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고 또 한달쯤 후에는 그 여학생 일미터 후방까지 접근하여 자연스레 인사정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또 한달여가 지날 무렵쯤에는 나란히 어깨를 하며 같이 등교를 하였는데 여학생 학교가 우리 학교보다 조금 더 멀기 때문에 우리 학교 앞에서 자연스레 목례를 하며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용기를 내어 일요일날 등산을 가자고 제의 하였고 여중생은 내 제의를 받아들여 내 친구 한명 여중생 친구 한명 이렇게 넷이서 도봉산 입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는 지냈지만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하니까 자기 소개부터 하고 그리고 친구 하기로 하면 어떨까요"
내가 먼저 제안을 하자 다들 좋다며 각자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부터 하죠 나는 제이 중학교 2학년 김인철이며 나이는 열네살 성격은 밝고 명랑 합니다"
"나는 인철이와 같은반 친구이며 나이는 열네살 이구요"
"저는 제일 여중 2학년 김소희 이고 성격은 온순 얌전 이랍니다"
"그럼 이제 내가 마지막이네 저도 소희와 같은반이며 나이는 열 다섯이고 조금은 새침떼기랍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한살 더 많지만 우리 같은 학년이니까 지금부터 말은 아주 편하게 하기로 하고 좋은 친구 하기로 해요"
이렇게 소희와의 만남이 시작 되었고 우리는 정말 행복 했답니다.
학교가 끝나면 아껴둔 차비로 둘이서 극장에도 가고 빵집도 가고 하면서 둘이는 가슴에 서로를 새겨 가는 날들이 이어지다가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고 그때는 학교 위치가 달라서 같이 걸어 가지는 못했지만 매일 만나 헤어질때 다음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 하기 때문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였는데 고 일학년이던 어느날 소희와 나 둘이 신설동 모 극장에 가게 되었는데 공포영화인 드라귤라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속의 공포가 느껴질때 서로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두 손은 서로 꼭 쥐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깨달은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하게 뜨거워지며 가슴은 콩당 거리는것이 그때부터 영화속 장면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소희의 솜 사탕 처럼 보드라운 손의 감촉만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놓을수도 꽉 잡을 수도 없이 그냥 쥐고만 있는데 내 손에서는 홍수라도 난 것처럼 땀이 솟구쳐 나와 흥건히 적시고 있는데 갑작이 소희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내 손을 꼬~옥 쥐어 주는게 아닌가,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던 나는 고개를 슬며시 돌려 소희의 얼굴을 훔쳐 보려고 하는데 막상 고개를 돌리고 보니 소희가 먼저 나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쳐 버렸습니다.
그순간 살폿이 미소 지은 소희의 얼굴에 양쪽 보조개가 파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그런 사랑이 담뿍 담긴 미소를 나는 보았답니다.
어떤 천사가 저렇게 이쁠수 있겠습니까!
마로 형언키 어려운 그런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다가가 소희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고 말았습니다.
살며시 눈을 감으며 내 입술을 받아 주는 그 때의 그 황홀한 느낌을 사랑을 해본 독자님들도 아실 줄 믿습니다.
옆자리의 시선도 아랑곳 없이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스피카에서 나는 괴성에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자세를 바로하고 안자 고개는 여전히 소희를 보고 있는데 이번엔 소희가 먼저 내 손을 다시 잡아 주며 다시한번 천사의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몸을 기울여 소희의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어 지며 향긋한 머리 내음새가 내 코를 마비 시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내 손을 더 꼬~옥 쥐면서 "인철씨 우리 지금 사랑 하는거 맞지"
하는 귀엣말을 소곤 거리는데 나는 정말 너무도 행복해서 황홀한 감점 외엔 아무것도 느낄수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 나면서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극장 밖에까지 나오면서도 그냥 그대로 손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 손을 놓으면 상대가 금새라도 휭하니 날아가기라도 할까봐 깍지 끼워 잡은 손을 소희의 집앞에 와서야 풀었으며 헤어질때는 너무도 아쉬운 심정을 최대한 자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온통 내 머리속에는 솜털처럼 보드라운 소희의 손에서 느껴지던 감촉과 깨물면 톡 터질것만 같던 소희의 그 달콤한 입술의 향기와 느낌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수없어 구들장에 등을 눞히고 눈을 감고는 황홀감에 도취된체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제 글이 야설적인 것이 없어 좀 싱겁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만은 차츰 가까워져 갈것입니다.
쌍둥이 남매의 애절한 사랑을 쓰다보니 그 배경이 중요 할것 같아 1부는 만남의 그런 페이지가 되었답니다. 독자님들의 격려와 배려가 작가들의 힘이 된다는거 잘 아시죠 ㅎㅎㅎ.....!
이 야설은 6.25라는 민족 비극 전쟁의 산물로 오랜 세월동안 아픔 속에서 절규하던 어느 쌍둥이 남매의 아름다운 사랑이 축복받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을 야설로 꾸며본 이야기 이며 실화가 아닌 작가의 순수 창작 물입니다.
야설의 더한 재미는 근친을 다룰때 좀더 스릴을 느끼는 작가의 개인적 취향을 바탕으로 꾸민 이야기입니다. 쌍둥이는 아니지만 혹여 남매간에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그림을 그려 보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살던 곳은 지금은 가볼수 없는 원산항에서 약 이십여리 떨어진 읍내인데 당시 우리집안은 꽤 부농 이었으며 당시 인민군들의 말대로라면 지주 계급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으며 툭 하면 보안서에 아버지가 불려가서 혹독한 자아비판을 받는 인민재판을 받곤 하였지만 과거 우리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거나 땅을 붙여먹던 사람들 대부분이 보안서 우두머리 였는데 과거 아버지의 후덕한 인심 때문에 몽둥이질을 면하고 혹독한 자아비판만 받고 풀려나곤 하였다가 끝내는 우리집 전 재산을 헌납 하기로 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는데 육이오가 일어나고 얼마뒤 일사후퇴를 하면서 가족 모두를 데리고 월남을 결심한 아버지는 어머니 형님 한분 누나, 그리고 쌍둥이 남매인 내 누이 이렇게 여섯식구가 원산항으로 배를 타려고 같는데 밀고 밀리는 아수라장 속에서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
당시 내 나이는 세살인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피난짐을 짊어지고 있어 나는 형님이 등에 업고 누이는 누나가 업고 있다가 그만 가족과 헤어져 떠밀려 배에 타게된 형님과 나는 가족 모두를 잃어 버리고 말았답니다.(내가 성장한 후에 형님이 들려주신 우리 집안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피난을 오게 된것이 부산 이었으며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으며 형님과 나 둘이서 너무도 고생하며 먹을 때보다 끼니를 굶는 것이 다반사로 겨우 목숨 부지하며 살다가 전쟁이 끝나고 형님과 나는 서울로 올라와 형님이 넝마주이를 하면서 미아리 넘어 산동네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나보다 여덟살이 위인 형님의 사랑으로 나는 국민학교를 입학하게 되었고 형님은 닥치는 데로 일을해서 겨우 의식주는 해결 하다가 내가 중학교를 입학 할때쯤에는 산동네를 벗어나 돈암동 시장에 잡화 가계를 내어
형편이 좋아져 주변 어른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 중2학년이 되면서부터 인데 당시는 그저 가슴 설레이고 이런 것이 행복인가 하면서 꿈속을 헤매는 그런 날들이 내가 군대를 다녀와 결혼을 하려는 그 순간까지 뿐이었답니다.
다시 중2때로부터 시작 하겠습니다.
형님이 주시는 차비를 아끼려고 학교까지 약 이킬로쯤 되는 대를 걸어서 다니게 되었는데 여름이 시작 될무렵부터 내 가슴이 쿵당 거리는 일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등교길을 가다보면 거의 매일 어떤 지점에서부터 정말 예쁜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중생이 내 앞을 가고 있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2가 되면서부터 이니까 한 삼개월정도 전부터 여학생과 자연스레 학교까지 같이 걷게 되었는데 처음엔 무심코 보다가 한달이 넘으면서부터 차츰 호감이 가기 시작 하였으며 앞에 가고 있는 여학생 얼굴이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고 또 한달쯤 후에는 그 여학생 일미터 후방까지 접근하여 자연스레 인사정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또 한달여가 지날 무렵쯤에는 나란히 어깨를 하며 같이 등교를 하였는데 여학생 학교가 우리 학교보다 조금 더 멀기 때문에 우리 학교 앞에서 자연스레 목례를 하며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용기를 내어 일요일날 등산을 가자고 제의 하였고 여중생은 내 제의를 받아들여 내 친구 한명 여중생 친구 한명 이렇게 넷이서 도봉산 입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는 지냈지만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하니까 자기 소개부터 하고 그리고 친구 하기로 하면 어떨까요"
내가 먼저 제안을 하자 다들 좋다며 각자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부터 하죠 나는 제이 중학교 2학년 김인철이며 나이는 열네살 성격은 밝고 명랑 합니다"
"나는 인철이와 같은반 친구이며 나이는 열네살 이구요"
"저는 제일 여중 2학년 김소희 이고 성격은 온순 얌전 이랍니다"
"그럼 이제 내가 마지막이네 저도 소희와 같은반이며 나이는 열 다섯이고 조금은 새침떼기랍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한살 더 많지만 우리 같은 학년이니까 지금부터 말은 아주 편하게 하기로 하고 좋은 친구 하기로 해요"
이렇게 소희와의 만남이 시작 되었고 우리는 정말 행복 했답니다.
학교가 끝나면 아껴둔 차비로 둘이서 극장에도 가고 빵집도 가고 하면서 둘이는 가슴에 서로를 새겨 가는 날들이 이어지다가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고 그때는 학교 위치가 달라서 같이 걸어 가지는 못했지만 매일 만나 헤어질때 다음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 하기 때문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였는데 고 일학년이던 어느날 소희와 나 둘이 신설동 모 극장에 가게 되었는데 공포영화인 드라귤라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속의 공포가 느껴질때 서로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두 손은 서로 꼭 쥐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깨달은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하게 뜨거워지며 가슴은 콩당 거리는것이 그때부터 영화속 장면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소희의 솜 사탕 처럼 보드라운 손의 감촉만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놓을수도 꽉 잡을 수도 없이 그냥 쥐고만 있는데 내 손에서는 홍수라도 난 것처럼 땀이 솟구쳐 나와 흥건히 적시고 있는데 갑작이 소희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내 손을 꼬~옥 쥐어 주는게 아닌가,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던 나는 고개를 슬며시 돌려 소희의 얼굴을 훔쳐 보려고 하는데 막상 고개를 돌리고 보니 소희가 먼저 나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쳐 버렸습니다.
그순간 살폿이 미소 지은 소희의 얼굴에 양쪽 보조개가 파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그런 사랑이 담뿍 담긴 미소를 나는 보았답니다.
어떤 천사가 저렇게 이쁠수 있겠습니까!
마로 형언키 어려운 그런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다가가 소희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고 말았습니다.
살며시 눈을 감으며 내 입술을 받아 주는 그 때의 그 황홀한 느낌을 사랑을 해본 독자님들도 아실 줄 믿습니다.
옆자리의 시선도 아랑곳 없이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스피카에서 나는 괴성에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자세를 바로하고 안자 고개는 여전히 소희를 보고 있는데 이번엔 소희가 먼저 내 손을 다시 잡아 주며 다시한번 천사의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몸을 기울여 소희의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어 지며 향긋한 머리 내음새가 내 코를 마비 시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내 손을 더 꼬~옥 쥐면서 "인철씨 우리 지금 사랑 하는거 맞지"
하는 귀엣말을 소곤 거리는데 나는 정말 너무도 행복해서 황홀한 감점 외엔 아무것도 느낄수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 나면서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극장 밖에까지 나오면서도 그냥 그대로 손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 손을 놓으면 상대가 금새라도 휭하니 날아가기라도 할까봐 깍지 끼워 잡은 손을 소희의 집앞에 와서야 풀었으며 헤어질때는 너무도 아쉬운 심정을 최대한 자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온통 내 머리속에는 솜털처럼 보드라운 소희의 손에서 느껴지던 감촉과 깨물면 톡 터질것만 같던 소희의 그 달콤한 입술의 향기와 느낌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수없어 구들장에 등을 눞히고 눈을 감고는 황홀감에 도취된체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제 글이 야설적인 것이 없어 좀 싱겁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만은 차츰 가까워져 갈것입니다.
쌍둥이 남매의 애절한 사랑을 쓰다보니 그 배경이 중요 할것 같아 1부는 만남의 그런 페이지가 되었답니다. 독자님들의 격려와 배려가 작가들의 힘이 된다는거 잘 아시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