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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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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3:02 조회 1,48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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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 나들이



대장… !

6:25 전쟁은 6 월 하순경 어느 날 올 장마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일요일 새벽에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공산당의 인민군들이 마치 마른 겨울들판에 쥐불 번지듯 삽시간에「남한」땅 전부를 빨갛게 휘몰아치고 물들이며 점령 해 나가고 있었어 … .

그 전쟁의 회오리바람이 불어 대는 기간 동안에도 처음 한 두달동안은 우리 집 식구들은 신도안의 작산리에 있는 내 할아버지 댁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지.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편안한 것 같았으나 우리 집 식구들은 소위 그들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부르-조아」계급의 무리들이기 때문에 사실은 숨도 크게 못 쉬고 숨어서 두 서너 달 째 살고 있었던 거지.

정말 그해의 여름은 길고도 무더웠어.

그리고 웬 놈의 비는 그리도 많이 내리는지 … !?

남들은 모두들 그렇게 힘들다고 말들을 하지만 나는 나대로 내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격 게 되는 멋진 추억을 만들며 보내고 있었던 거야.



세월은 흘러서 어느덧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려고 하고 있었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추석을 며칠 앞둔 9 월의 중순경이었을 꺼야.

전쟁이 일어 난지 거의 3 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전황은 점입가경으로 돌입하고 세상은 무어라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어.

그러나 그것은 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의 이야기이고… 「작산리」같은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우리 집안사람들의 경우는 그다지 엄청나게 어려운 사태는 격지 않고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던 거야.

다만 전쟁 초기에 내 아버지께서 동네에서 별로 인심을 얻지 못한 까닭에 불안을 느끼시고 오히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대전」시내로 피해 들어가셨던 사실과 나중에는 지방「빨갱이」들의 등쌀에 내 할아버님까지도 뒤울안에 있는 토굴로 숨어 들어가셔야 될 판이 되었던 거야…

그렇게 어른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셨던 것인데… 나는 별로 불편한 걸 모르고 지냈었던 거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전쟁은 막바지에 있다고 하면서 또 저「경상도」의「대구」못 미치는 곳에 있는 「낙동강」까지 쳐들어 갔 던 「인민군」들이 다시 「미국군인」놈들이 개입하면서부터「인민군」들에게 전황이 불리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고도 하는 거야.

전쟁 초기부터 하늘에는「호주기」라 고하는「미국놈」들 비행기가 떠돌며 쌩쌩 거리 더니 요즘 들어서는 거의 매일같이 수많은 기러기 떼들처럼 온통 하늘을 메우며「미국」폭격기 나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거야.

아무리 깊은 산골이라고는 하더라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볼 수가 있는 거지…

멀리「대전」쪽은 그토록 커다란「 B-29 」라는 폭격기가 쏟아 붓는 폭탄에 맞아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는 거야.

그래서 요즘은「인민군」들이 밀려서 쫓겨 올라오고 있다는 소문도 자자하고 밀려가는 「인민군」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어지러워지고 있다는 거야.

자칫 잘못하면 어느 귀신에 잡혀갈지도 모르는 판이라는 거지.

또 한밤중에 사방이 고요할 때면「대전」쪽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이곳 「신도안」까지 은은히 들리기도 하는 거야.

그 소리가 들릴 때면 나나 우리 집 식구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 폭격에 아버님이 어떻게 되지나 않으실 까 하고 내내 걱정들을 하시고 있는 거야.

특히 내 엄마는 말씀은 안 하시지 만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간이 졸이시는 듯 얼굴에 불안한 빛이 역력하게 떠올리시고 계시는 거야.

폭격소리가 더 커지고 그 소리의 횟수가 더 자자지는 것만 보아도 아무리 촌구석에 있어서 전황이나 다른 소 모른다고는 해도… 그 동안 그토록 이나 승승장구 하고 있다고 떠들며 기고만장하던「인민군」들이나 동네 민청의 간부들의 얼굴이 침울해지는 것만 보아도 전쟁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어.

글쎄… ? 어느 쪽이 이겨야 좋은 건지… ? 나는 아직 어려서 알 수가 없는 거야.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세상이 몽땅「공산치하」로 바뀌었던 초기에 우리 집 식구들 모두는 이곳「작산리」의 커다란「할아버지 댁」에 모여 살다가 이곳 토박이「공산당원」들의 행패가 심해지고 또 동네에서 별로 인심을 얻지 못하셨기 때문에「아버지」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시고「대전」시내로 역행해 들어 가셨었다는 건 이미 말한 대로야…

「대전」같은 큰 도시는 워낙 사람이 많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누가누군지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 세상에 잘 적응하여 전화위복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던 거지.

아니나 다를까 내「아버님」께서 복이 있으셨는지 그곳에 가셔서 얼마 안 있어서「아버님」은 뜻밖에도 옛날 「만주」에 사실 때「하얼빈」의 우리 집 가게에서 일도 도와주고 우리가게의 관청 일을 전담 처리해주던「중국」사람을 만나셔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전쟁 전에 운영하시던 양조장 문을 다시 열게 되셨다는 이야기도 먼저 번에 말했었던 사실 그대로인 거야.

그때도 말했지만 그 중국 사람은 우리가 귀국한 후 바로「모택동」군대와 인연을 맺어서 계속해서 전쟁터만 찾아다니다 보니까 이번「조선 인민해방전쟁」에서는「인민군」의 비공식 숨은 고문관 자격으로 참가하여「대전」까지 왔다가 옛날 친구인 내 아빠를 만나게 되어서 마치 맞게 내 아빠를 크게 도와주게 되었다는 거래.

그리고 또「인민공화국」치하의 세상으로 바뀐 지 두 달가량 지났을 때부터는「대전」시내 정도는 이미 전쟁터로부터는 후방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가 다시 온 듯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 것처럼「양조장」의 사업도 날로 번창해 가고 또 피난 갔던 일꾼들도 다시 돌아 온데다가 다른 양조장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집 사업은 날로 번창 하는 듯 했었대.

「공산당당국」사람들도 모든 인민들은 자기의 일터에서 생업에 전념하라고 선전을 하고 다니기도 했었던 거야.

그 바람에 내 엄마도 그 혼란한 전쟁 통인데도「대전」을 두 번씩이나 다녀오시기도 하셨고 차차 시국이 안정을 되찾자 거의 이틀이나 삼일에 한번 꼴로 집안의 일꾼들이「대전」과「신도안」을 왕래하게까지 되었었어.



그랬었는데 … ! 다시 전황이 어수선해지면서 이번에는「인민군」들이 소위「유엔군」들에게 밀리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부터 거리의 상황도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야.

소위「의용군(義勇軍)」이라는 이름으로 동네마다 청년들을 동원해서 군인으로 끌고 가다 시피 하다못해「대전」에서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을 무차별 잡아가기도 한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는 거야.

또 중 장년 층 사람들은「보국대(保國隊)」라는 이름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잡아다가 폭격기에 맞아 부서진 건물들이나 신작로 등을 수리하는 작업에 투입하기도 한다는 거야.

그러다가 자기네들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고 불평을 하거나 불순한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불문곡직하고 그 길로 최전방 소총부대로 보내서 총알받이가 되도록 배치를 한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거야.

우리가 사는「작산리」까지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이 나타났던 날 우리 마을과 옆 마을에 살던 몇몇의 젊은 사람들이 잡혀가는 소동도 벌어졌었어.

또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옛날 전쟁 전에「대한민국」시절 경찰가족이나 군인가족이라고 하던 사람들과 소위 악질 지주라고 딱지가 붙었던 사람들은 집집을 수색 당하여 잡혀가거나 인민재판이라는 걸 통해서 즉석에서 총살을 시키기도 한다는 소문이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어.

그 불안이 우리가 사는「작산리」까지 번져오고 있는 거야.

이렇게 시국이 불안해지니까 차츰차츰「대전」과의 왕래도 뜸해지고 우리 집에 그토록 많이 법석이던 식객이나 일꾼, 머슴들도 또다시 하나 둘씩 떠나가게 되는 거야.

「대전」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 ?

이틀에 한번 꼴로 다니러 오던 공장의 창고지기 아저씨도 그의 아들이 의용군에 끌려갔다며 몸져눕는 바람에 그나마「대전」과 왕래하는 사람이 딱 끊어지고 말았어.

그런데다 우리 집 식구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내 할아버님을 놈들이 잡아가겠다고 벼르며 설치고 다니는 일인 거야.

「민청위원장」이라고 하는「천영석」이라는 놈이「공주」에 있는「내무서」에다 내 할아버님을 고발하는 바람에 우락부락하게 생긴「내무서」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 적도 있었어.

얼마나 놀랬는지 … !

다행히 마치 맞게「언년이」를 만나러 와있던「박삼식」이가 그 자리에 있어서 두둔해주고 보증을 서 주는 바람에 당장 할아버님이 잡혀가는 건 면 했지만… !?

그때부터 우리집식구들은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 수 가 없는 거야.

「작산리」에 있는 우리 집 안채의 서북쪽으로 면한 담은 일반적인 울타리로 된 것이 아니라「계룡산」줄기의 끝자락에 맞닿는 우리 집의 크기보다 세 곱절도 더되게끔 커다란 바위덩어리로 되어있어서 천연적인 요새처럼 만들어져 있었어.

그래서 안채 뒤로는 직접 산줄기로 뻗어진「계룡산」줄기인 거지.

그쪽은 별도로 담을 쌓을 필요 없이 곧바로 수십 길 되는 바위가 절벽처럼 솟아있어서 자연적인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있는 거야.

그 바위 아래한쪽 구석에는 옛날에는 어느 들짐승들이 살았을법한 굴이 하나 있어.

내 할아버님께서 이 집을 구입하신 뒤에 이 자연적인 굴을 좀 더 넓히시고 꾸미셔서 지금은 아주 훌륭한 우리 집안의 비밀스러운 창고로 쓰이고 있는 거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상하기 쉬운 자연식품들이나 물건들을 보관하기엔 아주 안성맞춤이고 사람들이 기거하기에도 아주 훌륭한 창고 인 거야.

그리고 그 입구에 대나무를 심어 놓아서 웬만한 사람은 이런 곳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도록 꾸며 져 있는 거야.

「내무서」놈들이 왔다간 다음날부터 할아버지께서는 이곳에 숨어 지내시게 된 거야.

집안이 온통 공포로 휩싸인 셈이지.

「대전」과의 연락이 끊긴지도 벌써 보름 가까이 지났어.

들리는 소문마다 불안하고 나뿐 소문만 들리고 할아버지까지 숨어 지내셔야 할 정도로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보니까 집안 식구들 모두는 우울하고 불안한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되는 형편이 되었어.

이제 믿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어… 물론 할아버지께서 숨으셔서 하나하나 지시는 하시고 계시지만… !?

엄마입장에서는 이것저것 걱정 투 성이들 뿐 인 거야.

「대전」에는 지금 아버지뿐 아니라 내 바로 밑 동생인「동희」도 가서 있는데… !

또 우리를 믿고 사는 많은 객식구들은 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식량들은 넉넉한지… ?

혹시라도 아버지께서 보국대에 끌려가시지는 않으셨을까… ? 요 며칠 전에 엄청난 폭격이 있었다는데… 우리 집은 무사한지… !

그 중에서도 제일 애가 타시는 분은 내 엄마이셨어.

말씀은 안 하셔도 안타까워 해 하시는 모습을 다른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해도 나만은 알고 있는 거야.

이제「신도안」의 그 큰집에서도 집안의 남자라고는 할아버지와 나 뿐인데 그나마 할아버지는 숨어 계시니까 안 계신 거나 진배없으신 거지.

여자들도 할머님과 고모들 세 사람 그리고 엄마와 몸져 누워있는「언년이」와 그녀의 엄마뿐인 거지.

전황이 악화되고 시국이 불안해지면서「삼식이」는 후퇴하는「인민군」들을 지휘하기 위하여 벌써 여러 주일 전에 이 고장을 떠나서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자「언년이」는 그 길로 몸져 누워버렸었어.

그렇게 많던 머슴들이나 일해 주는 하녀들도 어찌어찌 모두 흩어져 버리고 만 거지.



참다못해「엄마」가 직접「대전」으로 가시겠다고 나서시었어.

할머님이나 고모들은 무슨 소리냐고 말리시며 난리들을 치셨고 숨어 계신 할아버님께서도 극구 만류를 하셨어.

지금이 어느 때라고 여자가 감히… !? 게다가「엄마」는 내 막내 동생인 동연(東燕)이를 낳은 지 이제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으신 산모(産母)의 몸인 데다가 우리집안의 너무나도 귀중한 종가 집 종부(宗婦)인데 혼자서 가시게 할 리는 만무하신 거지.

그러나「대전」식구들 일이 궁금하신 건 모든 식구들이 다 마찬가지 인 거야… 또 혹시 들리는 소문과 실지 사정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기는 있었어.

또 엄마는 워낙에 건강하신 몸이라 아이를 낳은지 불과 삼일도 안 되어서 평상시처럼 활동을 하시던 분이라 막내 동생을 낳고나서 벌써 두 달도 더되기 때문에 산모라고는 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 …

계속 졸라대는 엄마의 고집과 열성에 드디어 할아버지로부터 허락이 떨어 진 거야.

또 엄마는 지난번에도 산후에 불과 열흘 만인데도「대전」을 걸어서 다녀 온 경험도 있으셨고 날씨도 화창한 초가을 날씨였기 때문에 다소 경솔한 용기가 났었던 모양이야.

다만 엄마가 걱정이 되는 것은 자기가 없는 동안 갓난아기인「동연」이 젖을 먹이는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할머니나 고모들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어서 미음을 먹이면 된다고 마음을 굳히신 모양이야…

할아버지도 여자 걸음이라 하루해가 꼬박 걸릴 것을 걱정하신 거야.



당연히 나도 따라 나섰지.

엄마가 가시는데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고 억지를 쓴 거야.

엄마도 은근히 기뻐하시는 눈치였어… !!

내가 이제 초등학교 오 학년이라고는 하더라도 실지나이는 벌써 열다섯 살이고 얼굴은 아주 여려 보이지만 덩치는 그래도 엄마 목 높이 까지 닿게 큰 것 아닌가 말이야… !?

짐을 져도 엄마 못 지 않게 많이 지고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

귀한 손자를 사내답게 키우려면 어려운 일 도 시켜 보아야 한다고 처음에는 거절하시던 할아버지께서도 결국에는 승낙하시고 만 거야.

이제 며칠만 있으면 추석명절 도 다가올 테니까 빨리 다녀오라고 하신 거야.

그토록 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전쟁 통에서도 조상님들에 대한 정성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유별난 민족들이었어.

이번 추석도 어려운 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같이 지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집 식구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인 거지.

그러니까 추석준비가 막 시작되려 는 계절이었어.



드디어 나처럼 어리고 떼밖에 쓸 줄 모르는 우리집안의 귀한 도련님께서 난생 처음 세상 밖으로 원정을 떠나게 된 거야.

엄마는 몸-뻬 라고 하는 그 당시 여인들이 일할 때 입는 일본식 작업복을 깡뚱하게 받쳐 입으시고 머리에다는 촌 여인들이 일할 때 햇빛가리개로 쓰는 커다란 수건을 둘둘 말아서 똬리처럼 만들어 받쳐 올려놓고 쌀을 한 자루나 이셨어.

나도 어린애를 업을 때 메는 방식으로 멜빵을 해서 메고 쌀을 거의 닷 말 이상 은 실히 되도록 자루에 넣어서 짊어지었던 거지.

또 가다가 먹을 점심 저녁거리로 주먹밥도 한 보따리 준비했어.

나는 난생처음 누가 거들어 주는 사람도 없이 엄마를 모시고 먼 길을 떠난다는 데에 마음이 두렵고 설레 이면서도 마치 학교에서 소풍이라도 가는 듯 즐겁기만 했어.

또 이제 나도 한사람의 남자 몫을 한다는 자부심과 무슨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더욱 우쭐대고 있었어.

- 이제 도련님은 진짜 어른이 되 셨 네 요… ! - 갑자기 나와 맨 처음 합궁(合宮)하던 날「언년이」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목소리가 생각났어.

어쩐지 나는 이번 기회에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도 싶었어.

물론 떠나기 전 잠깐 짬을 내어서 앓고 있는「언년이」방에 들어가 이별의 입맞춤을 진하게 하면서 그녀의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다 내 특유의 여성경배신전(女性敬拜神殿)에 내 코를 들여 박고 내가 좋아하는 그녀 특유의「암컷」냄새를 맡으며 참배하는 걸 잊지 않았지.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는 식구들을 작별하고 엄마와 나는 기차 타러 다닐 때 늘 다니던 두게 역 쪽의 길로 접어들질 않고 그 반대의 장군 바위산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서 동학사라는 절로 가는 길을 택했어.

그 길로 한참을 가다가 중간 샛길로 빠져서「유성」쪽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꺾어 가야 한다는 거야.

할아버지께서 일러주신 이 길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이런 시절에는 걸어서 가는 길 중 제일 안전하고 가까운 길이라는 거지.

그 길은 중간에 나무가 많고 음침한 곳이 다소 있긴 하지만 가는 길에 높은 고개도 없고 질러가는 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자진 길이라는 거래.

이 길 말고도 여러 군데 돌아가는 길이 많긴 하지만 혹시 밤이라도 지새게 된다면 매우 위험한 길이라 여자와 어린애가 지나가기는 다소 불안하다고 안 된다는 거지.

요즘도 밤이 되면 늑대와 같은 큰 짐승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장정들도 한 두 명이서는 지나가기를 꺼리는 길이라는 거야.

그날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렀기 때문에 중간에 있다는 음침하고 나무가 많은 길은 한낮의 밝은 대낮에 지나갈 수 있었어.

사실 엄마와 나는 집에서는 걱정할 것 없다고 큰 소리 치며 나오긴 했지만... 우리 두 사람 다 동행하는 머슴도 없이 이렇게 먼 길을 걸어본 경험이 없었던 사람들인 거지.

말로는 사 십리 정도만 걸어가면 중간에「유성」쪽으로 접어드는 샛길이 나오고 그 길에 있는 주막거리에서 싸 가지고 간 주먹밥을 먹으면 알맞을 꺼 라고 들 했지만…

우리들 걸음으로 점심때가 가까워지도록 가고 있는데도 샛길은커녕 어째 자꾸만 산 윗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는 거야.

누군가 사람을 만나야 길을 물어 볼 수 가 있는 거지 …

나는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말씀은 안 하셨지만 엄마도 같은 심정이 셨겠 지.

오는 도중에 갈랫길이 몇 군데 있긴 있었는데... 집에서 할아버지께서 일러주신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아서 아무래도 불안한 거지.



거의 점심때가 넘었음직한 때였어.

멀리 앞쪽쯤 해서 갑자기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한 떼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이 보였어.

얼마나 반가운지 나는 소리치며 달려가 길을 물어 보려고 했었지.

막 달려가려고 할 때 갑자기 엄마가 내 손을 잡으셨어…

- 잠깐 … ! 아무래도 이상 한데… ? 쪼매만 기다려 보 그레이… ! -

엄마는 우리식구들이랑만 있을 때나 무언가 다급한 일이 있을 때면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오곤 하셨어…

처녀 때 엄마의 고향은 경상도였으니까… !?

- … !? -

아니나 다를까… !?

그들은 보통 행인들이 아니고 패전 하는「인민군」낙오병 들이었어.

대열도 흐트러지고 군복도 가지각색으로 찢겨져 있었고 또 부상한 사람들을 서로 부축해가며 절뚝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거야.

아마 거의 오륙십 명은 훨씬 넘는 인원 같았어.

엄마와 나는 재빨리 길가의 숲 속으로 몸을 피했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거야.

한참 후 그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 우리는 다시 짐을 지고 길을 재촉했어.

아마도 전황이「인민군」들에게 소문대로 대단히 불리하게 된 것이 분명한 것 같았어.

또 실지 전쟁터가 이 근처 어딘 가로 옮겨진 모양 같기도 하고… !?

잘못하면 해가 저물기 전에「대전」까지 못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들을 더욱 압박하기 시작하는 거야.

불안감 속에서도 한참을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길 앞쪽 좀 편편한 그늘 쪽에서 또 한 떼의 사람들 인기척이 나고 있는 거야.

우리는 또 한 번 놀라서 조심조심 앞을 살펴보니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서 여기저기 눕기도 하고 않기도 한 채 쉬고 있는 거 야.

그들도 역시「인민군」패잔병들이었어.

정말 엄마와 나는 진퇴양난이 된 거야.

그들이 있는 쪽으로 그대로 가다가는 틀림없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귀중한 식량을 빼앗기고 말 것만 같았어.

그렇다고 멀리 돌아 갈 길도 없으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얼굴만 마주 보며 서 있었어.

그들은 모두가 며칠씩 굶은 사람들처럼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들인 거야.

또 말이 군인들이라고 하지 총기를 든 사람들은 불과 몇 명일뿐 나머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한 채 누워 있었어.

그들 중에서 부상이 심한 사람들은 얼마 못 가 죽을 것만 같이 보이기도 하는 거야.

잠시 망설이던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나에게 눈짓을 하고 같이 그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골짜기로 몸을 피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어.

그들이 언제 갈 것인지 모르고 또 점심때도 훨씬 지나도록 걸어 왔기 때문에 피곤하기도 해서 우리는 골짜기의 흐르는 물가에 앉아서 가지고온 주먹밥을 먹기 시작했어.

오랜만에 나는 엄마와 단둘이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이 들어서 주먹밥이 그렇게나 맛 있을 수가 없었어.

혹시나 몰라서 다소 넉넉하게 준비한 주먹밥은 이렇게 야외에서 먹으니 더욱 많이 먹게 되고 더욱 맛이 있는 법이지.

해는 벌써 한낮이 기울어 가고 있었고 맑은 가을날 한낮의 따가운 햇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 밥을 먹고 나니 배도 부르겠다 엄마도 옆에 있겠다 또 지금까지 무거운 쌀을 지고 이고 온 후 본의 아니게 휴식을 취하다 보니 그만 나도 모르게 우리는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어.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엄마는 두 개의 쌀자루를 베개 삼아서 기댄 채 얼마나 잤었는지 몰랐어.

언뜻 몸이 선뜻 해지며 추위를 느끼며 잠이 깨었어.

아 뿔 사… !!??

해는 거의 다 저녁때가 다가오고 있었어. 너무 깊이 자 버리고 만 거야… !

나는 길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 올라가 보았어.

아까 그「인민군」패잔병들은 이미 어디론가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어.

엄마와 나는 너무 늦었다 싶어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 한 거야.

하다못해「유성」으로 가는 큰길가에 있다는 주막거리까지라도 가서 오늘밤을 지새울 요량을 해 가며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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