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 친구를 강간하다 - 1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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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0:22 조회 1,784회 댓글 0건본문
동정병기J님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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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주인공J
임가희
유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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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e Trice, Real Name No Gimmicks..."
오늘은 토요일이다. 어제부로 여름 방학이 시작되어, 앞으로 약 한달 반은 주 6일 학원에 등원해 열 시간 넘게 그림에 매진하게 되었다. 파스텔가루가 휘날려 에어컨이라도 키면 알록달록한 폭풍이 몰아치는 최악의 근로조건이다. 하지만 뭐, 지금 내게 그런 건 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J야, 왔어?"
"여, J! 밥은 벌써 처먹었냐?"
이렇게 반갑다는 인사와 주둥이 씨부리는 소리를 동시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방학이라해도 고3은 수험생이므로 전원 의무적으로 3교시는 듣고 하교해야 했다. 더욱이 나는 공부할 시간이 학교 수업시간 뿐이니 빠질 수도 없었다. 서울대 미대를 노리는 최고급반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중상이상의 성적은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비록 방학이긴 했지만 3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다른 예체능 계열 학생들과 함께 하교하던 중이었다. 체대준비를 하는 애들은 대부분 학교 내 체육교사가 약간의 수고비를 받고 수업을 해주기 때문에, 교외 학원에 다니는 놈이 아니라면 대개 4교시 수업을 잠으로 때우며 점심시간까지 노는게 보통이었고, 나처럼 미대 준비를 하는 애들은 한시간을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고 학원에 가든지, 아니면 이대로 곧장 학원에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 해야 했다. 토요일 그것도 방학 시즌에는 급식실이 텅텅 비어서 꽁쳐먹기가 좋아 가능하면 한시간 때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전날 완성하지 못하고 마무리한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려 그냥 학원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매점에서 뭔 빵을 사먹을까"등을 생각하며 중앙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가희와 재완이를 마주한 것이다.
"둘다 안녕. ...그런데 넌 새꺄 대체 왜 우리학교까지 온거야? 시간이 남아도냐 이 상병신아"
우리학교와 유재완이 다니는 학교는 거리상으로는 400m정도로 가까웠으나, 워낙 고지에 있다보니 언덕길의 경사로가 장난이 아니었다. 걱정따윌 한건 아니지만 얼굴을 보자 그냥 욕한번 해주고 싶었다. 놈은 "뭐 이새꺄"둥 언제나 그랬듯이 주절거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언제나 그랬듯 귓등으로 넘기며 곁에서 미소짓고 있는 가희를 보았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조금 긴 앞머리, 여름용 민소매 블라우스와 리본, 그리고 우리학교의 자랑인 통치마를 입은 그녀는 미술도구가 담긴 보조가방과 분홍색 캔버스파일을 들고 있었다.
"...이 상병신은 냅두고... 여자반도 벌써 끝난거야? 요즘 여자반은 대개 남자반에 비해 5분은 늦게 끝나잖아?"
"흠흠, 사탐시간이라서 그런지 필기만 잔뜩하고 설명은 요 만큼 해서, 금방끝났어. 맨날 이랬으면 좋겠다."
그녀는 "요 만큼"이라고 말할때, 보조가방을 바닥에 내려두고 비게 된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1cm정도로 좁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래? 하.. 남자반 사탐은 늘어지게 졸린 얘기만 하다가 수업도 늘어지던데.. 아 우울한 얘기 패스. 그런데 둘다 지금 학원으로 가는 거야?"
내 말에 재완은 우리학교에 다니는 체대 친구를 만나러 온거라고 했고, 그녀는...
"... ...어. 지금, 가는 거야."
우물거리는게 신경쓰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럼 또 둘만 버스에 타는 건가?
"야, 그런데 토요일엔 버스안온다며?"
"... 젠장, 깜빡했다."
타산적인 내가 승차감도 떨어지고 소화기관에도 안좋은 폐차직전의 통학버스를 타는 것은, 시내버스를 타면 최소한 40분은 경유지를 돌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통학버스를 놓친다면 다섯시 반의 수업 종료>이동 및 저녁 식사>여섯시 오분 수업 시작의 빡빡한 시간대에서 도저히 끼니를 챙길 수 없었다. 덜커덩거리긴 해도 통학버스안에선 빵쪼가리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어디 시내버스에서 그럴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버스 천장의 지지대를 붙잡고 러쉬아워의 시내버스에서 초코우유와 사과잼 빵을 먹는 모습을... 학원에 등록한 다음 날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시내버스를 타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용기를 내어 가방안에 든 빵을 먹어 볼까... 하다가, 그냥 열시 사십분 수업 끝나고 집에 오면서 먹었다. 속으로 수업이 욕을 씨부리면서...
"아 그럼 토요일마다 버스타고 가야되? 끔찍하다... 학원가기 싫어졌어. 허무해졌다."
"얘는, 그래도 3교시 끝나고 학원 수업시간까지는 두시간의 여유가 있잖아? 그냥 널널이 가면 되지..."
"...그래. 그건 그렇고, 어째 니놈은 만나러 온 놈 안 찾냐? 불러주랴?"
가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생각난 김에 재완의 일도 처리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널널했고, 채권이란것은 많이 쥐어둘수록 이득이 되니까.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조용한것이 딴에는 안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려는 것 같은데...
"야, 너 잠만 일로 와봐."
"어,어,어, 뭐하는 거야 새꺄"
놈은 나를 끌고 현관 근처의 으슥한 곳으로 갔다. 가희는 끌려가는 나를 잠시 미소지으며 바라보았지만, 둘만의 대화란 것을 알고 따라오지는 않았다.
가희가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가 벌어지자, 녀석은 나에게 냅다 씨부렸다.
"야 새꺄, 너 뭐야 이 빌어먹을 개 배신자 새끼!!"
"어이어이, 갑자기 뭐야? 어? 너 우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지만, 당시만큼 녀석이 해괴해 보인 적은 없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끌고가더니 울먹이며 말을 더듬는데...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일단 진정시키고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야 너 새꺄 이틀전에 캔트지 두장이랑 4B연필 다섯자루, 잠자리지우개 세개에 김밥이랑 라면, 기억하냐?"
단숨에 채무자의 처지를 파악시킨후,
"..배신자 개새리... ...응? 어- 기억나는데 왜."
"알면 싸물어라. 아니면 내 당장 되빨아먹어야 겠다."
내가 되빨아먹는다는 경고를 선언하자 예상대로 녀석은 굳었다. 내가 한번 쏠때마다 얼마나 되받아 먹는지 놈은 몸으로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진정했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쉽게 씨부려봐."
내 말에 안심했는지 녀석은 정확히 요점만 추려 내게 질의를 건네었다.
"임가희 언제부터 사귄거냐!"
---
오도독, 또도독. 빼빼로 깨먹는 소리다. 장소는 학원가 뒷거리의 도서관로. 경사로이고, 후미진 곳이라 늘 조용했다. 학교매점에서 산 빼빼로와-100원싸다-소보루 빵, 생우유를 옆에 둔채 난 생각에 잠기었다. 사귄다고? 내가? 가희랑?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 도 있겠다. 비록 "친구선언"을 한지 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마다 같이있어야지 못죽어 안달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방과후 통학버스를 타고 학원에 갈때까지, 나는 가희와의 대화에서 즐겁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 재완과 수업시간에 늦어서 냅다 뜀박질 한후 맛본 그 즐거움과는 또 달랐다.
나는 오랜만에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당황하여,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손톱을 깨물었다. 하지만 파스텔 채색시 용이성을 위해 매일 손톱을 다듬었기 때문에 물것도 없었다.
"하. 너 이 짜식 그래도 내가 마음속으로 찍은 애를..."
역시 옆에 있던 유재완은 콜라를 들이키며 말했다. 벌써 똑같은 말을 여러번 하고 있었다. ...콜라에 소주라도 부은거 아냐?
"솔직하게 까줄까? 내가 왜 학원에 다니냐면."
들을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할일도 없었으므로 귀를 열어두었다.
"우리학교 야자 조낸 빡시잖냐. 그런데도 매일 튀는 놈들이 생기니까 선생들도 지쳤는지 허술해 지더라고. 내가 작년 봄에 야자 띵까고 중심상가에 놀러나갔는데, 아 술은 안먹었고. 한참 놀다가 슬슬 집에가려는데 애들이 가보자는 데가 있다네? 좋은곳이니 군말없이 오래서 따라갔지. 어디냐면 우리 학원거리였어. 애들이랑 분식집에서 시간때우다가 내가 "새끼들아 지금 뭐하냐? 여기서 뭐하자고"하니, 여전히 닥치고 기다리라는군. 한 아홉시? 기다리다가 자빠져 자고 있었는데, 깨우더라고,"
"...그래서."
"...여자애들이 바글 바글 하드라."
"...뭐? 새삼스럽게."
"좆병신아 끝까지 쳐들어바. 사실 그때까지 나 떼지도 못했는데, 그런 내가봐도 하나같이 발랑까진 년들 뿐이더라고. 아 씨바 죄다 화장 떡칠하고 머리엔 어울리지도 않는 고데기에 깻잎에... 이쁜 애도 있었고 돼지같은 년도 있었지만 솔직히 난 짜증났다. 머 어쩌라고?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있다보니 내 친구놈이 쐈는지 먹을거랑 마실게 나오고... 술인건 알았지만 그냥 넘기고 마셨다. 알딸딸해지니 돼지년도 이쁘게 보이더라 씨바."
".. 나머진 상상이 가는데. 그래서?"
이후 이어진 녀석의 말을 요약하면 서로 굶주린 남고와 여고 애들이 배맞았다, 이런 얘기었다. 얼굴 붉어질 내용이었지만 내 알바 아니라고 생각하니 의외로 담담해 졌다.
"그렇게 술처먹고 고기처먹고 여자먹고 이제야말로 집에 가야지~ 하고 헤어져 나서는데, 아, 학원앞 정류장에서 토 한번 한건 어째 기억이 생생한데."
녀석은 "여자먹고"에서 킥킥거렸다.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그리 즐거웠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드런 새끼야 할말은 그것 뿐이냐?"
"씨바 좀 들어봐. 그래서 멍하니 버스 기다리는데, 반대편 정류장에 누가 있더라고. 그때 시간이 열한시 반 이던가? 보기엔 고딩같았는데. 술김에도 잘 보였다고. 알잖냐 꼴랑 이차선인거. 어쨌든, 자알~보니까, 여자더라. 한번 치러서 그런지 별 감흥은 없더라. 아니면 내가 조루던가.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머리는 짧고, 치마는 통치마에... 딱봐도 니네 학교 애라고 생각들더라.
더이상은 안봐도 비디오다.
"그리고, 그 애는 분홍캔버스파일과 스누피가 그려진 보조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있었겠지."
"그래 새꺄. 생각해보면 내가 돌았던게 아닌가 싶어. 솔직히 이쁜걸로 따지면 걔... 가희보다 이쁜애는 많은데 왜 그때 그렇게 꽂혔을까? 어쨌든 담날 학교가서 미술학원 다니는 놈들 불러서 전화번호 물어보고... 발품좀 팔았더니 어느 학원 다니는지 알 수 있더라. 그 날로 등록 했지."
누구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방황하다가 최후의 최후로 미술학원을 선택했는데, 이 좆병신은 그저 여자에게 꽂혀서 등록했다... ...라는 것이다. 이런 알수없는 "우연성"이 인간이 재미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이놈을 처음 만난 것도 우연이라면 순 우연이었고 말이다. 평소에 분식집에서만 저녁을 해결하던 놈이 그저 "그냥 한번 빵이 먹고 싶어서" 그 높은 도서관 매점까지 올라왔으니 말이다.
"...병신아, 나도 걔량 말 놓은 것은 며칠 안됬어. 니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고."
"그래 새랴 말은 고맙다. 다음에 소개나 시켜조라. ...뭐냐 그 눈빛은?"
흠, 슬슬 개소리 하는걸보니 정신차린 모양이군. 난 녀석의 머리를 후리며 말했다.
"넌 새꺄 주는 정이 고와야 가는정이 곱지 당장 뛰어 가서 컵볶이랑 오뎅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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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와 가희, 재완은 친구가 되었다. 나는 재완을 가희에게 소개할 때, 학원내에서도 흐지부진한 까불이를 소개해 혹시나 그녀가 화를 내거나 토라질까 했지만 그것은 기우로 끝났다.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게 웃으며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먼저 말을 놓은 것도 그녀였다.
"그래. 그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어... 어? 응, 그래, 잘 지내자"
주제에 말까지 더듬으며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이 참으로 볼만했지만 나는 그저 머릿속으로 손익계산표를 가동시키고 스스로의 현실적인 사고에 만족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걸로 앞으로 반년간 빨아먹고, 졸업하고 입학 후에 또 빌미로..."
허나 나의 이 계산적인 사고패턴으로 초래될, 이후 우리 셋의 관계에 벌어질 일에 대해, 나는 이미 무의식적인 짐작을 했다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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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주인공J
임가희
유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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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e Trice, Real Name No Gimmicks..."
오늘은 토요일이다. 어제부로 여름 방학이 시작되어, 앞으로 약 한달 반은 주 6일 학원에 등원해 열 시간 넘게 그림에 매진하게 되었다. 파스텔가루가 휘날려 에어컨이라도 키면 알록달록한 폭풍이 몰아치는 최악의 근로조건이다. 하지만 뭐, 지금 내게 그런 건 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J야, 왔어?"
"여, J! 밥은 벌써 처먹었냐?"
이렇게 반갑다는 인사와 주둥이 씨부리는 소리를 동시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방학이라해도 고3은 수험생이므로 전원 의무적으로 3교시는 듣고 하교해야 했다. 더욱이 나는 공부할 시간이 학교 수업시간 뿐이니 빠질 수도 없었다. 서울대 미대를 노리는 최고급반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중상이상의 성적은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비록 방학이긴 했지만 3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다른 예체능 계열 학생들과 함께 하교하던 중이었다. 체대준비를 하는 애들은 대부분 학교 내 체육교사가 약간의 수고비를 받고 수업을 해주기 때문에, 교외 학원에 다니는 놈이 아니라면 대개 4교시 수업을 잠으로 때우며 점심시간까지 노는게 보통이었고, 나처럼 미대 준비를 하는 애들은 한시간을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고 학원에 가든지, 아니면 이대로 곧장 학원에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 해야 했다. 토요일 그것도 방학 시즌에는 급식실이 텅텅 비어서 꽁쳐먹기가 좋아 가능하면 한시간 때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전날 완성하지 못하고 마무리한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려 그냥 학원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매점에서 뭔 빵을 사먹을까"등을 생각하며 중앙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가희와 재완이를 마주한 것이다.
"둘다 안녕. ...그런데 넌 새꺄 대체 왜 우리학교까지 온거야? 시간이 남아도냐 이 상병신아"
우리학교와 유재완이 다니는 학교는 거리상으로는 400m정도로 가까웠으나, 워낙 고지에 있다보니 언덕길의 경사로가 장난이 아니었다. 걱정따윌 한건 아니지만 얼굴을 보자 그냥 욕한번 해주고 싶었다. 놈은 "뭐 이새꺄"둥 언제나 그랬듯이 주절거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언제나 그랬듯 귓등으로 넘기며 곁에서 미소짓고 있는 가희를 보았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조금 긴 앞머리, 여름용 민소매 블라우스와 리본, 그리고 우리학교의 자랑인 통치마를 입은 그녀는 미술도구가 담긴 보조가방과 분홍색 캔버스파일을 들고 있었다.
"...이 상병신은 냅두고... 여자반도 벌써 끝난거야? 요즘 여자반은 대개 남자반에 비해 5분은 늦게 끝나잖아?"
"흠흠, 사탐시간이라서 그런지 필기만 잔뜩하고 설명은 요 만큼 해서, 금방끝났어. 맨날 이랬으면 좋겠다."
그녀는 "요 만큼"이라고 말할때, 보조가방을 바닥에 내려두고 비게 된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1cm정도로 좁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래? 하.. 남자반 사탐은 늘어지게 졸린 얘기만 하다가 수업도 늘어지던데.. 아 우울한 얘기 패스. 그런데 둘다 지금 학원으로 가는 거야?"
내 말에 재완은 우리학교에 다니는 체대 친구를 만나러 온거라고 했고, 그녀는...
"... ...어. 지금, 가는 거야."
우물거리는게 신경쓰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럼 또 둘만 버스에 타는 건가?
"야, 그런데 토요일엔 버스안온다며?"
"... 젠장, 깜빡했다."
타산적인 내가 승차감도 떨어지고 소화기관에도 안좋은 폐차직전의 통학버스를 타는 것은, 시내버스를 타면 최소한 40분은 경유지를 돌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통학버스를 놓친다면 다섯시 반의 수업 종료>이동 및 저녁 식사>여섯시 오분 수업 시작의 빡빡한 시간대에서 도저히 끼니를 챙길 수 없었다. 덜커덩거리긴 해도 통학버스안에선 빵쪼가리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어디 시내버스에서 그럴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버스 천장의 지지대를 붙잡고 러쉬아워의 시내버스에서 초코우유와 사과잼 빵을 먹는 모습을... 학원에 등록한 다음 날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시내버스를 타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용기를 내어 가방안에 든 빵을 먹어 볼까... 하다가, 그냥 열시 사십분 수업 끝나고 집에 오면서 먹었다. 속으로 수업이 욕을 씨부리면서...
"아 그럼 토요일마다 버스타고 가야되? 끔찍하다... 학원가기 싫어졌어. 허무해졌다."
"얘는, 그래도 3교시 끝나고 학원 수업시간까지는 두시간의 여유가 있잖아? 그냥 널널이 가면 되지..."
"...그래. 그건 그렇고, 어째 니놈은 만나러 온 놈 안 찾냐? 불러주랴?"
가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생각난 김에 재완의 일도 처리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널널했고, 채권이란것은 많이 쥐어둘수록 이득이 되니까.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조용한것이 딴에는 안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려는 것 같은데...
"야, 너 잠만 일로 와봐."
"어,어,어, 뭐하는 거야 새꺄"
놈은 나를 끌고 현관 근처의 으슥한 곳으로 갔다. 가희는 끌려가는 나를 잠시 미소지으며 바라보았지만, 둘만의 대화란 것을 알고 따라오지는 않았다.
가희가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가 벌어지자, 녀석은 나에게 냅다 씨부렸다.
"야 새꺄, 너 뭐야 이 빌어먹을 개 배신자 새끼!!"
"어이어이, 갑자기 뭐야? 어? 너 우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지만, 당시만큼 녀석이 해괴해 보인 적은 없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끌고가더니 울먹이며 말을 더듬는데...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일단 진정시키고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야 너 새꺄 이틀전에 캔트지 두장이랑 4B연필 다섯자루, 잠자리지우개 세개에 김밥이랑 라면, 기억하냐?"
단숨에 채무자의 처지를 파악시킨후,
"..배신자 개새리... ...응? 어- 기억나는데 왜."
"알면 싸물어라. 아니면 내 당장 되빨아먹어야 겠다."
내가 되빨아먹는다는 경고를 선언하자 예상대로 녀석은 굳었다. 내가 한번 쏠때마다 얼마나 되받아 먹는지 놈은 몸으로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진정했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쉽게 씨부려봐."
내 말에 안심했는지 녀석은 정확히 요점만 추려 내게 질의를 건네었다.
"임가희 언제부터 사귄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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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독, 또도독. 빼빼로 깨먹는 소리다. 장소는 학원가 뒷거리의 도서관로. 경사로이고, 후미진 곳이라 늘 조용했다. 학교매점에서 산 빼빼로와-100원싸다-소보루 빵, 생우유를 옆에 둔채 난 생각에 잠기었다. 사귄다고? 내가? 가희랑?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 도 있겠다. 비록 "친구선언"을 한지 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마다 같이있어야지 못죽어 안달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방과후 통학버스를 타고 학원에 갈때까지, 나는 가희와의 대화에서 즐겁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 재완과 수업시간에 늦어서 냅다 뜀박질 한후 맛본 그 즐거움과는 또 달랐다.
나는 오랜만에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당황하여,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손톱을 깨물었다. 하지만 파스텔 채색시 용이성을 위해 매일 손톱을 다듬었기 때문에 물것도 없었다.
"하. 너 이 짜식 그래도 내가 마음속으로 찍은 애를..."
역시 옆에 있던 유재완은 콜라를 들이키며 말했다. 벌써 똑같은 말을 여러번 하고 있었다. ...콜라에 소주라도 부은거 아냐?
"솔직하게 까줄까? 내가 왜 학원에 다니냐면."
들을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할일도 없었으므로 귀를 열어두었다.
"우리학교 야자 조낸 빡시잖냐. 그런데도 매일 튀는 놈들이 생기니까 선생들도 지쳤는지 허술해 지더라고. 내가 작년 봄에 야자 띵까고 중심상가에 놀러나갔는데, 아 술은 안먹었고. 한참 놀다가 슬슬 집에가려는데 애들이 가보자는 데가 있다네? 좋은곳이니 군말없이 오래서 따라갔지. 어디냐면 우리 학원거리였어. 애들이랑 분식집에서 시간때우다가 내가 "새끼들아 지금 뭐하냐? 여기서 뭐하자고"하니, 여전히 닥치고 기다리라는군. 한 아홉시? 기다리다가 자빠져 자고 있었는데, 깨우더라고,"
"...그래서."
"...여자애들이 바글 바글 하드라."
"...뭐? 새삼스럽게."
"좆병신아 끝까지 쳐들어바. 사실 그때까지 나 떼지도 못했는데, 그런 내가봐도 하나같이 발랑까진 년들 뿐이더라고. 아 씨바 죄다 화장 떡칠하고 머리엔 어울리지도 않는 고데기에 깻잎에... 이쁜 애도 있었고 돼지같은 년도 있었지만 솔직히 난 짜증났다. 머 어쩌라고?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있다보니 내 친구놈이 쐈는지 먹을거랑 마실게 나오고... 술인건 알았지만 그냥 넘기고 마셨다. 알딸딸해지니 돼지년도 이쁘게 보이더라 씨바."
".. 나머진 상상이 가는데. 그래서?"
이후 이어진 녀석의 말을 요약하면 서로 굶주린 남고와 여고 애들이 배맞았다, 이런 얘기었다. 얼굴 붉어질 내용이었지만 내 알바 아니라고 생각하니 의외로 담담해 졌다.
"그렇게 술처먹고 고기처먹고 여자먹고 이제야말로 집에 가야지~ 하고 헤어져 나서는데, 아, 학원앞 정류장에서 토 한번 한건 어째 기억이 생생한데."
녀석은 "여자먹고"에서 킥킥거렸다.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그리 즐거웠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드런 새끼야 할말은 그것 뿐이냐?"
"씨바 좀 들어봐. 그래서 멍하니 버스 기다리는데, 반대편 정류장에 누가 있더라고. 그때 시간이 열한시 반 이던가? 보기엔 고딩같았는데. 술김에도 잘 보였다고. 알잖냐 꼴랑 이차선인거. 어쨌든, 자알~보니까, 여자더라. 한번 치러서 그런지 별 감흥은 없더라. 아니면 내가 조루던가.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머리는 짧고, 치마는 통치마에... 딱봐도 니네 학교 애라고 생각들더라.
더이상은 안봐도 비디오다.
"그리고, 그 애는 분홍캔버스파일과 스누피가 그려진 보조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있었겠지."
"그래 새꺄. 생각해보면 내가 돌았던게 아닌가 싶어. 솔직히 이쁜걸로 따지면 걔... 가희보다 이쁜애는 많은데 왜 그때 그렇게 꽂혔을까? 어쨌든 담날 학교가서 미술학원 다니는 놈들 불러서 전화번호 물어보고... 발품좀 팔았더니 어느 학원 다니는지 알 수 있더라. 그 날로 등록 했지."
누구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방황하다가 최후의 최후로 미술학원을 선택했는데, 이 좆병신은 그저 여자에게 꽂혀서 등록했다... ...라는 것이다. 이런 알수없는 "우연성"이 인간이 재미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이놈을 처음 만난 것도 우연이라면 순 우연이었고 말이다. 평소에 분식집에서만 저녁을 해결하던 놈이 그저 "그냥 한번 빵이 먹고 싶어서" 그 높은 도서관 매점까지 올라왔으니 말이다.
"...병신아, 나도 걔량 말 놓은 것은 며칠 안됬어. 니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고."
"그래 새랴 말은 고맙다. 다음에 소개나 시켜조라. ...뭐냐 그 눈빛은?"
흠, 슬슬 개소리 하는걸보니 정신차린 모양이군. 난 녀석의 머리를 후리며 말했다.
"넌 새꺄 주는 정이 고와야 가는정이 곱지 당장 뛰어 가서 컵볶이랑 오뎅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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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와 가희, 재완은 친구가 되었다. 나는 재완을 가희에게 소개할 때, 학원내에서도 흐지부진한 까불이를 소개해 혹시나 그녀가 화를 내거나 토라질까 했지만 그것은 기우로 끝났다.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게 웃으며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먼저 말을 놓은 것도 그녀였다.
"그래. 그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어... 어? 응, 그래, 잘 지내자"
주제에 말까지 더듬으며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이 참으로 볼만했지만 나는 그저 머릿속으로 손익계산표를 가동시키고 스스로의 현실적인 사고에 만족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걸로 앞으로 반년간 빨아먹고, 졸업하고 입학 후에 또 빌미로..."
허나 나의 이 계산적인 사고패턴으로 초래될, 이후 우리 셋의 관계에 벌어질 일에 대해, 나는 이미 무의식적인 짐작을 했다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