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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날 - 2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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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5:47 조회 3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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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개운해 졌고 이제 뭐라도 좀 먹어야지?”



“배고프다.”



“약속대로 중국 음식 시킬 게.”



“돈 많은 사람은 저래서 편하다니까.”



“돈이 가만 있는다고 막 굴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



그녀는 전화를 걸어 중국음식을 시켰다. 그리고 장식 장을 뒤져 중국 제 초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명절이나 특별한 모임이 있을 때 쓰는 초라는데 오늘 같은 날 쓰는 것도 좋을 것 같지?”



빨간 초 겉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예쁜 초가 식탁 위를 밝히자 나는 정말 고급 중식 레스토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식이 도착하고 나와 그녀는 그렇게 촛불 때문에 맑갛게 빛나는 식탁 위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정말 언니 때문에 나 살 찔 것 같아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며?”



“그래도 이렇게 무지막지 한 호화스런 생활을 하다보면 안찔 살도 찔 것 같아요.”



“걱정 마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면 되니까.”



정말 끝도 없는 그녀의 배려에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친 동생 이상으로 생각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애인으로?

그럼 나야 좋지만..



“언니.”



“응?”



“저 번에 나 때릴 때 기분이 어땠어요?”



“언제?”



“왜 사무실에서..”



“아! 그때?”



“나는 무지 아팠었는데 언니는 어땠어요?”



“그냥 내가 선생님이 된 기분이었어. 엄마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어. 그냥 말 못할 느낌이 있었어.”



“기분이 좋았어요?”



“남을 때리는 데 기분이 좋을 리 있어? 그런데..”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 그 여부에 따라 내가 다음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들어갔던 것 만큼은 확실했어. 뭐라고 할 수 없는.. 웬지 너를 더 세게 때리고 싶은 욕구 같은 것.”



“응?”



틀림없었다.

그녀 역시 새디즘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좀 더 과감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나를 더 세게 때리고 싶었어요?”



“응.”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네가 너무 아파 하는 것 같아서..”



“만일 그런 기회가 또 있다면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어요?”



“응?”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역시 무리 일까?



“그런 체험 다시 해보고 싶지 않느냐고요”



“글쎄.. 한번 해보고 나서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이상한 상태에 빠져서 대체 그 기분의 정체가 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언니의 그런 마음의 정체를 알려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찾아가 볼 용기는 있어요?”



“그런 이상한 곳이 있어?”



이쯤에서 미스 엔 마스터 의 애기를 꺼낼 까 하다가 나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만일 그런 곳이 있다면 한번 체험해 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역시 관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런 것 이해하기 가 힘들어.‘



“이해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요”



“게임?”



“특이한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호기심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뭐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언니가 원하면 내가 당장 체험 하게 해줄 수도 있어요.”



“당장?”



그녀는 어색한 눈길로 나를 응시했다.

큰일인데?



괜히 사이만 멀어지는 거 아닌 가 몰라.



“그런 애기 는 그만하고 나 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네?”



나는 그만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생전 이런 쪽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 쉽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그냥 일곱 살 때 쯤 미국에 입양 되었다는 점 만 빼면 별로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걸요.”



“입양?”



“세살 때 엄마가 보육원에 나를 맡기고 사라져 버렸어요. 그때 얼마나 울었던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왜?”



“입양한 부모는 로버트 라는 성을 가진 부부 였는데 다행히도 저는 다른 입양 아 들과는 다르게 학대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 부부 는 저를 친 딸처럼 소중히 길러 주셨죠.”



“그랬구나. 정말 좋은 분들이었네?”



“네 그랬어요. 하지만 안정된 생활은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깨졌어요. 갑자기 친 엄마가 저를 찾겠다고 나서서 결국 로버트 씨 까지 찾아내 버렸거든요.”



“그래서?”



“염치도 없죠? 버릴 때는 언제고. 저는 거부했어요. 그녀가 엄마라고 나를 찾았는데 굉장히 기분 나빴어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나이는 중년에 이르렀으면서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왜 그리 번쩍거리던지.”



“배우자를 잘 만났나 봐.”



“당연 하죠 먼저 아빠는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완전히 패인이 되어 버렸었으니. 우리 아빠는 실외 쓰레기통에 머리 쳐 박고 죽었어요. 참 웃긴 죽음이죠?”



“엄마를 증오 하고 있구나?”



“네. 저주 하고 있어요. 저의 부모는... 진짜 엄마. 아빠는 필레네 여사 와 로버트 하셀 씨 에요. 두 분이 진짜 저의 부모님인거에요.”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 까지 현정이 친 엄마도 괴로웠을 거야.”



“남편 죽고 나서 힘들다고 친딸 까지 내팽개쳐 버리고 부자 놈팽이 하고 결혼해 버린 주제에 괴로웠을 거라고요?

웃기지 말라고 그래요. 그래서 전 그 여자가 나를 찾았을 때 딱 부러지게 한마디 만 했어요. 로버트 씨가 보는 앞에서. 아니 금발 머리의 아빠가 보는 앞에서요. 당신이 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한국 국적을 갖게 해달라고.”



“한국 국적?”



“외국에 입양 되면서 한국 국적은 포기해야 했어요. 하지만 한국은 저에게 고향이니까 뭘 해도 여기서 하고 싶다는.. 외국에서 살았다고 한국인의 천성까지 버릴 수는 없었어요. 사실 전 미국이 싫었어요. 파란 눈의 아빠 와 엄마 사이에 검은 눈의 나는 미국인들에게는 흠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죠. 엄마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한국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려면 한국에 혈육이 있어야 하니까 그 한국 엄마 라는 사람에게 호적에 내 이름을 기록해 달라고 했던 거죠. 뭐 그 놈팽이 하고 붙어 먹어 자식 새끼 들을 셋이나 퍼질러 놓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까지 제가 한국에서 살수 있던 거 에요.”



“아픈 상처가 있었네. 괜히 물었나 봐.”



“아니에요. 언니 하고는 비밀 없이 지내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 외국인 부모들에게 진짜 감동을 받았던 날이 있었는데 들어 보실래요?”



“응.”



“로버트 아니 아빠는 군 출신으로 그때 만해도 육군 쪽의 대령 계급을 달고 있었어요. 미국에는 군대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인 만큼 아빠는 군인으로 서의 길이 자신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죠.”



“자부심이 대단하셨나 봐.”



“그럼 요. 항상 자신의 위치를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물론 군에서도 아빠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죠. 그랬는데.. 저의 열 번째 생일 날 이었어요. 아빠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군 부대 사람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제 생일을 축하해 주었었어요. 참 행복했었지만 이 날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어요”



“문제?”



“그 날 아빠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어요. 바비큐 파티는 순조롭게 진행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저에게 선물을 주었어요. 그때는 좋았죠. 그런데 오후 늦게 쯤 이었나? 아빠의 상사 가 찾아 왔죠.”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좋은 얼굴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 상사라는 사람이 저에 대해 애기를 꺼냈어요. 아무리 아이를 못 낳는다고 하지만 한국 아이를 키우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고. 우리 나라에서 말들이 많은 한국 인 인데 아이도 그렇지만 자네의 명예에도 흠이 생기게 될 거라고. 자기가 우리 쪽의 아이로 알아볼 테니 나는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뭐 그런 인간이 있어?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건데.”



“저는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올 것 만 같아 애써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어서 말해봐.”



“로버트, 아니 우리 아빠가 어땠는지 알아요? 바비큐 용 뒤집개를 손으로 꽉 쥐더니.. 그 상사에게 크게 말했어요. 헬레나 (현정이) 는 누가 뭐래도 내 아이고 그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바꿀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라고요. 그런 시시껄렁한 조크 나 할 거라면 그만 돌아가 달라고요.”



“우와~”



“전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어요. 슬퍼서가 아닌 너무나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었죠. 나는 아빠가 자랑스러웠어요. 그리고 나를 선택해준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했었어요.

아빠는 그 후로 그 상사 와의 관계가 좋지 않게 되어 군 생활 하는데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저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 일 이후로 저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 줬죠.“



“정말 백 점 짜리 아빠다. 그리고 너무 멋있는 남자였구나.”



“그렇죠? 저도 우리 아빠를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피도 섞이지 않은 나를 그렇게 위해주다니.”



“그런 말 하면 아빠가 서운해 할 걸?”



“히히히..”



“그러고 보니 엄마애기는 꺼내지 않았네? 그 외국인 엄마 말이야.”



“필레네 여사 요? 그러니까 우리 엄마죠. 그 분은 아주 조용한 성품에 세련된 여성이었어요.”



“역시 좋은 남자는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구나.”



“얼굴은 그리 예쁘지 않았지만 쉽게 말해 사랑스런 여인이었죠. 항상 아빠를 생각하고 가정을 생각하는 흔하면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여인이었어요. 엄마와 그네 타던 생각이 나네요.

작은 앞마당이었지만 거기엔 큰 나무가 있었어요. 아마 호두나무였을 거 에요. 그곳에 아빠가 나무로 만든 그네를 만들어 달아줬는데 엄마는 시간이 날 때 마다 나를 안고 그네를 탔어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왜 그래?”



“괜히 눈물이 나네. 친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자장가 와 동화책 등을 엄마가 들려줬어요. 한국 과는 조금 내용면에서 다르지만 그런 건 상관없잖아요? 전 엄마 무릎을 베고 그네 위에서 잠이 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럴 때 면 엄마는 나를 살며시 안아침대로 옮겨주셨죠.

제가 있던 보육원에 와서 저를 택한 것은 엄마였어요. 저를 꼭 딸로 키우고 싶다고. 아빠는 그때 좀 멍청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셨다나봐요. 아무래도 입양이라는 걸 잘 몰랐을 테니까 생소했던 거겠죠. 이제는 아빠도 나를 무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됐지만 요.“



“정말 그렇게 좋은 분들을 부모 로 둘 수 있었던 현정이 는 행복했던 아이였구나.”



“네. 정말 그랬어요. 우리 아빠 힘이 좋아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그냥 두지 않았어요. 아빠는 저에게 있어 뽀빠이 이상의 영웅이었어요.”



“친 엄마는 지금 어떻게 됐어?”



“뭣 하러 그런 것은 물어요? 언니라고 해도 그런 것은 말하고 싶지 않지만 뭐 저에게 형식적인 가족 절차를 밟아주고 지금도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죠. 지난 날을 후회 한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무슨..”



“엄마를 좀 이해해 보려고 하면 안될까? 여자는 어려운 상황에 자신이 기댔던 남자마저 떠나면 견딜 수 가 없게 되어 버리거든?”



“시끄러.”



“뭐?”



“언니라고 해도 그런 말은 참기 어려워. 하지 마요.”



“그래. 쉽게 사라질 앙금은 아닐 거야. 그런 애기는 그만두자.”



“그래요. 그것 보다 우리 아빠 진짜 멋있죠?”



“응.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정말 최고의 매력남이라 할 만 해. 그리고 제일 좋은 아빠 상이기도 하고.”



“그럼 이제 언니 애기도 해 줘야지요.”



“나?”



“내 것 만 빼앗아 가면 나는 손해잖아요?”



“글쎄. 딱히 할 말이 있을까?”



“아무거나 좋아요. 빨리요.”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사업 실패 후 돈 한 푼 없이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 마다 그 나라의 말을 틈틈이 배워가며 한인 타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결국 스파이크 라는 미국인 사업가를 만났다고 했다.



스파이크는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은 되어 있었으나 추진력이 없어 고민하던 중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어 함께 사업을 시작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낯선 땅에서 빵에다 고추장을 발라 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다는 편지를 엄마 가 읽어줄 때는 눈물이 나왔어. 우리 아빠도 현정이 아빠 만큼이나 멋진 분이었지. 아버지는 그 미국인 사업가 스파이크 씨와 작은 악세서리 점포를 꾸려가다가 곧 전문 팬시 용품 상점을 여셨어. 그리고 팬시 용품에서 고가 의 팬시 스타일의 쥬얼리 (보석,장신구) 상점을 세우고 체인점 화하기 까지 온갖 노력을 기울이셨지.”



“대단하다. 승승장구 하셨네요?”



“스파이크 씨는 능력 면으로는 뛰어난 사업가 라 할만 했지만 추진력이 부족 했던 거야. 아버지는 한국인 만의 밀어붙이기 의 힘으로 그를 도와 사업을 성장 시킬 수 있었지. 결국 두 분이 마음이 맞았기에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거지. 스파이크 씨는 우리 아버지의 힘이 없었다면 지금도 나는 사업 구상만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라고 힘주어 말한 바 있어”



“와~~ 정말 굉장한 분이시다. 한국인의 매운맛 이라는 건가요?”



“그러게.. 그 후부터 우리 의 생활 자체가 달라졌어. 아버지는 미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시고 우리는 붙여주는 돈으로 생활 했는데 점점 은행의 이자가 불어나는 쪽이 된 거야.”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었기 때문이죠?”



“정확히 말하면 스파이크 씨 의 사업이었지. 아버지는 거들었을 뿐 이니까. 하지만 스파이크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점포를 체인점 화 시키며 사업이 거대해 졌을 때 는 스파이크 킴 이 라는 (본명은 김 태영)애칭 까지 아버지에게 붙여서 부 사장의 자리를 맡겼는 걸?”



“부 사장?”



“굉장했어. 아버지도 기뻐했지만 어머니도 아주 기뻐 하셨어. 그렇게 인내의 시간을 홀로 보냈던 어머니 였는데.. 어쨌든 해피 엔딩 이었어.”



“그럼 언니도 아버지의 밑에서 일을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난 친인척의 힘을 빌고 싶지 않았어. 나에게도 프라이드가 있는데 왜 남에게 의지 하려 하겠어? 난 혼자 만 의 힘으로 아버지처럼 거대해지고 싶었어. 인내하면서 승리 하는 그날까지”



“정말 굉장한 집안 이었네요. 언니의 아버지도 괴물이고 언니도 괴물이고..”



“괴물?”



“어려운 일을 잘도 그렇게 해내고 지금와선 마치 장난처럼 말하고 있으니까요.”



“훗. 그러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어? 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어머니는 세 들어 있던 집을 빼서 친가로 나를 데려가서 생활 했는데 그때 만해도 참 힘들었지.”



“뭐 다들 그런 고생을 하잖아요?”



“그래. 어쨋든 보상을 받았으니 됐지 뭐. 이렇게 허심탄회 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 좀 더 가까워 진 것 같다. 그치?”



“전 이미 언니를 친 언니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섭섭하네?”



“친 언니 이상?”



“내 애인.”



“애인?”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까르르르 하고 웃었다.

뭐가 웃기지? 정말 당신은 내 애인 이란 말이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우리 아버지는 사업을 스파이크 씨에게 모두 맡기고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그 후 스파이크 씨도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지금은 뒤에서 감독역할 정도만 하고 있대. 성공 한 자들의 여유를 이제야 느끼고 있다나봐.”



“역시 정당한 승리자 의 축배는 달고 긴 것이죠.”



“의미 심장 한 말인 걸?”



“그래요? 별로 모르겠는데?”



나와 그녀는 가슴이 시원해지도록 숨겨두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 헤쳤다.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는 이상의 효과는 없었지만 우리는 그로 인해 한발짝 더 서로를 위해 다가선 것 만 같았다.



“언니 생일이 언제에요?”



“9월 20일”



“엑? 그럼 지났네?”



“그렇지.”



“선물을 못 줘서 미안해요.”



“뭐 괜찮아.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으니 무리도 아니지 사무실 동료 들도 그날 모른 체 지나가 버렸어.”



“그들까지?”



“하긴 요즘 같은 때에 누구 누구 생일을 꼬박 꼬박 챙겨 줄 여유가 있겠어? 하루가 불안한 세상인데 말이야.”



“듣고 보니 그렇 네요.”



“현정이는 생일이 언제야?”



“저요? 그러니까.. 10월 10일이요.”



“응. 그렇구... 엑? 10월 10일? 그럼 앞으로 5일 남았네?”



“네.”



“이런 앙큼한 것. 일부러 생일을 알리고자 했던 거지?”



“아니에요. 아아아악~~ 귀 잡아당기지 마요.”



나의 그녀는 10월 10일 이라는 말을 여러번이나 되풀이해서 머릿속에 기억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차를 사줘요.”



“너 미쳤지? 미친게야..”



“왜요?”



“선물로 차를 갖고 싶다고 정말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생각해 봤어?”



“언니는 돈이 많으니까..”



“아무리 돈이 굴러다닐 정도로 많아도 그런 요구는 안돼. 나도 없는 마이 카를 네가 타고 다니겠다고?”



“피~~ 구두쇠.”



“차라리 구두쇠 라고 불리는 쪽이 낫다.”



“그럼 그냥 쵸코파이에 촛불이나 켜줘요.”



“정말 극 과 극 이구나?”



“몰라요.”



나는 괜히 토라진 척 해봤다.

그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뭐 선물이야 그때 생각하면 되지 뭐.”



“이럴 거 면서 뭘 그렇게 생각했대?”



“막상 생각을 해보려니 생각이 안나 더라고.”



그녀 와 나는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그녀의 방에서 다시 함께 자려고 하다가 결국 쫒겨 났다.



칫! 매몰찬 여자..



“그러고 보니 그동안 그녀에 대해 기록하던 것을 못했네?”



나는 그녀를 만난 이후로 일기를 써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기라기보다는 그녀를 대상으로 한 관찰 기 같은 거였다.



이 집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그녀에 대해 기록하는 일을 빼놓지 않고 해왔는데 요 며칠 간은 기록하는 일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집에서 쓰던 컴퓨터를 가져오면 그간 기록 한 것을 고스란히 찾을 수 있는 문제라 나는 내 방에 있는 최신식 컴퓨터 의 전원을 넣고 하지 못했던 부분을 기록했다.



10월 4일 그녀의 기분 대체로 좋음..



“우음.. 목 말라.”



새벽 몇시 쯤 되었을 까?

나는 목이 말라 중도에 잠에서 깨어 버렸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부엌에서 미네랄워터를 반잔 쯤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현정이의 방으로 보이는 쪽의 문틈으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안 자고 뭐하고 있는거야?”



나는 호기심이 동해 그녀의 방 문을 살며시 열었다.

걸림쇠가 벗어지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왔다.



딸깍..



“뭐야? 잠은 침대에서 자야지.”



현정이는 컴퓨터를 켜놓은 체 책상 에 구부린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살며시 안아 침대로 이끌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깨우지 않고 침대에 눕히는 것 까지 성공했다.



“하여간에 뭘 하고 있었기에..”



컴퓨터 는 절전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마우스를 살짝 흔들자 다시 온 상태가 되며 모니터가 어두운 방 안을 환히 비추었다.



“뭐야 이건?”



이상한 내용이 모니터 한 가득 씌어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나 에 대한 관찰기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이 아이 대체..”



현정이는 나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루의 시간대 별로 내가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정도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스토커 도 이 정도 까지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무슨 날에 무슨 속옷을 입었는지 까지 기록해 놓은 그녀의 관찰 기를 보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현정이를 깨워 당장에 내쫒으려 했다. 그런데..



모니터 하단에 작은 글씨를 못보고 지나칠 뻔 했던 나는 그 작은 글씨를 보는 순간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이제 그녀를 품어 줄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는 치료 사가 될거야. 이건 내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한거야.”



어제 저녁에 분명히 현정이는 나를 애인처럼 생각한다고 했었다.

나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기분이 묘 했다.



어차피 남자는 싫은 나였지만 막상 나와 같은 여성이 나를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색했다.

그러나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배 되고 싶어.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그녀가 나의 여왕이 되어 주면 좋겠어. 그것으로 우리는 더욱 강한 결속력을 갖게 될 거야. 하지만 그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유감스럽게도. 그래서 나는 미스 엔 마스터 의 존재를 달가워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있어. 그녀가 나를 싫어하게 될 까봐.”



지금 까지 현정이를 동생처럼 생각했던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잠깐 그녀를 원했던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옳지 못한 일인 것 같아 빨리 정신을 차렸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정이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내가 오히려 그녀에게 도화선 역할이 되어주었는지도 몰랐다. 기록해 놓은 내용을 보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였다.



“어쩌면 이 아이..”



나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잠을 자고 있는 현정이에게 살며시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정말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그리고 마음씨도 착한 편이었다.



그녀에게서 어떤 음모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너무 외로워서 였을까?



조금 전 만해도 치한에게 겁탈이라도 당한 것처럼 기분이 나빴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해보니 그리 화를 낼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아이는 내가 하기에 따라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욕구가 조금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라고 이해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잡아주면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지각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나에 대해 기록한 관찰 기 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10월 10일 날 의미 있는 생일 선물...”



나도 모르게 작은 중얼거림이 입술을 열고 삐져나왔다.



<2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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