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3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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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5:43 조회 996회 댓글 0건본문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31
날카로운 부엌칼 날은 선영의 여린 손목에 살며시 접촉했다. 차갑기보다는 섬뜩함이 베어나오는 감촉이 그녀의 팔을 타고 전해지고 있었으나 선영은 조금도 움찔하지 않았다. 선영은 탁한 눈동자로 칼날 부분과 손목의 동맥 부분을 면밀하게 조준해나갔다. 달빛은 주방 창문을 통해 꽤 잘 스며들어왔고, 그래서 선영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게 조명등을 끈 상태에서 별 무리 없이 그것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미 한번 죽었던 그녀는 죽음 자체에는 별 두려움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몸과 뇌를 괴롭힐 죽어가는 ‘과정’이 진저리날 뿐이었고, 한번에 죽지 않으면 ‘치료’라는 더 최악의 현실이 덮칠 것이었기에 확실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사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녀의 지나갔던 과거 중에는 이런 자살 방법에 도움이 되는 경험도 존재했으며, 어떻게 힘을 주면 확실하게 목숨을 끊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자신의 과거를 파노라마처럼 떠올려본 선영은 곧 핏하고 웃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왜 그래? 난 이미 죽은 것 아니었나? 선영. 그래, 넌 이미 죽었어. 그것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죽음을 목전에 두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네가 인생의 지나간 추억을 돌이켜보는 것은 캠퍼스 별관에서 떨어지기 직전 매달려있었던 그 때뿐이야.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매달려있었던.
죽지 말라고 붙잡아온 손에 매달려있었던.
“……!”
선영은 그 손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그것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 눈을 날카롭게 떴다. 그리곤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동맥을 제대로 끊기 위한 목적으로 점철된 손가락들이 바짝 긴장했다. 그 손가락들을 관장하는 팔의 근육들도 순간 짧지만 팽창하듯 그녀의 의지에 부합했다. 그녀는 주저 없이 칼을 옆으로 그었다.
“…….”
그리고 그녀는 몸을 떨었다. 부들거렸다. 고개는 더욱 숙여졌고, 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그녀의 얼굴에 늘어뜨려져 눈가를 가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미한 자국만 났을 뿐 피는 거의 나오지 않는 왼쪽 손목. 임무를 실패한 자책감마냥 칼자루를 쥔 그녀의 다른 쪽 손은 심하게 떨렸다. 이런 병신 같은 년. 미끄러진 거야? 그래, 미끄러졌겠지. 다시 제대로 해봐. 죽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멍청한 녀석.
그리고 선영은 칼자루를 제대로 쥐지도 못한 채 한참을 그 자세로 떨고만 있었다. 왜 그래? 대체 왜….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인데….
어째서 그 녀석 생각이 나면서…….
선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왜 이렇지? 왜 그 녀석이…… 그 녀석이 왜…….
챙캉-! 타각-.
결국 바닥에 떨어뜨리고 마는 부엌칼. 그리고 선영은 두번째로 충격에 휩싸였다. 떨어뜨린 것은 칼만이 아니었다.
한 방울, 두 방울씩 칼 주변으로 떨어지는 알 수 없는 액체.
눈물…? 어째서…….
얼굴을 거의 가릴 정도로 늘어뜨린 머리칼 사이로 떨어지는 눈물들. 선영은 두 다리로 지탱하고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다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그렇게 주춤주춤 서있던 그녀는 결국 옆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대었다. 몸은 계속해서 떨렸다. 눈물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꽉 깨문 입술은 이제 거의 피가 나올 정도로 물려져 있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완화하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뜨거움에 속이 삭아 없어질 것만 같았기에. 심장을 옥죄는, 심장을 괴롭히는 몹쓸 감정이란 것은 잊어버리고 싶었던 그녀의 내면 깊숙한곳에서 다시금 끌어올려져서 사정없이 헤집어대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비스듬한 달빛만이 겉의 몸이라도 식혀주려는 듯 그녀를 시리도록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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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에 들어선 미선이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귓가를 울릴 정도로 크진 않았으나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고 몸짓으로 호응을 하고 있었다. 내부는 일종의 바(Bar)처럼 은은한 분위기였고 넓이가 꽤 넓었다. 천장도 높았는데 그 위에는 커다란 미러볼이 조명을 가지각색으로 비추고 있었다. 클럽과 비슷해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떨어진 사람의 얼굴도 또렷이 보일 정도로 밝기는 환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밝기 아래에서 잠시 후 미선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장면에 충격을 먹었다. 그녀의 또래만하거나 기껏해야 이십 대 중후반 여자들이 홀의 전방에 마련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춤추는 게 아니라 옷을 거의 벗은 채로 추고 있었다. 속옷만 입은 채로, 치마만 입은 채로, 혹은 중요한 부위(?)만 그냥 드러낸 채로 제멋대로란 표현력마냥 그들은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전혀 부끄럼없는 모습은 그 사이사이에서 성기를 꺼내어 흔들고 있는 남자 쪽도 마찬가지였고, 곳곳에 널려있는 테이블과 반쯤 쏟아져 뒹굴고 있는 술 등에서 미선은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수의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서 형성되는 통념은 역시나 다수에 의거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일반적인 관념 속에 박혀있는 상식을 지키고 있는 쪽이 ‘틀렸다’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런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미선은 그런 상식을 지키고 있는 자신과 성진 선배의 옷차림을 보면서 더욱 이방인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음을 얼마 안 가 깨달았다. 테이블 근처의 소파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대부분이 아찔한 노출을 일삼고 있었기에.
주변에서 의아함, 미심쩍음, 신기함, 호기심, 의외란 가지각색이 섞인 눈빛이 방금 이 ‘장소’에 들어온 둘에게 꽂히었다. 그 시선들은 곧 다시 외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으나 미선은 어쩐지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온 불청객의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애타는 감정으로 성진의 등만 바라보며 걸었고, 그것과는 별개로 성진은 손을 들어올리며 보이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이어이, 여기 올 때마다 보이는구만, 재식 너는.”
“뭐야, 성진이냐?”
“여, 김성진! 기껏 오랜만에 와서 재식한테만 아는척 하기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한쪽은 가벼운 와이셔츠를 걸치긴 했다) 일어서서 와인을 마시면서 얘기를 하던 그들은 성진을 발견하자 반가운 손짓을 한다. 미선은 그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휑하게 벗겨져있는 그들의 아랫도리를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하며, 벌개진 얼굴로 고개만 까딱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미선의 모습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킬킬거리면서 성진과 가벼운 농담을 몇 주고받았다.
성진은 무대쪽으로 가서 손을 흔들었다. 올라서서 춤을 추던 열 명에 가까운 여자들 중 절반이 성진을 알아보고 환호를 올렸다. ‘성진 오빠’라느니 ‘성진아’ 등등의 지칭으로 반갑게 화답하는 그녀들을 보며 미선은 또한번 넋이 나가버렸다. 뭐야, 저렇게 이쁘고 관능적인 여자들이 다 성진 선배와 아는 사이란 말야? 몇 웨이터가 옆을 지나갔고 이미 그들도 성진과 안면이 있는 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자 웨이터가 꽤 많았고, 그들은 영업용으로 보이는 정장을 통일해서 입고 있었지만 워낙 홀의 손님(?)들이 다 벗고 있는지라 그들의 깔끔한 차림은 상당한 위화감을 안겨주었다.
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지? 미선이 그런 의문감을 들 때쯤 성진은 무대 옆쪽에 마련된 거대한 디지털 음악 기기를 가동시키고 있는 DJ에게 다가갔다.
“야! 김성진! 너 이자식… 요즘 왜이리 얼굴 보기 힘들어!”
두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시디를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리던 그는 성진을 보자마자 대번에 반가운 탄성을 지른다.
“좀 바쁜일이 많아서… 준영은 요즘 안 오냐?”
“안 오기는. 네가 잘 안오는 거겠지. 걔 벌써 뉴페이스 하나 낚아채서 룸에 들어갔다.”
“범석 이 멍청한 녀석아. 성진이 너 같은 줄 아냐? 여기 죽돌하면서 허송세월 보내는 누구랑은 비교하지 말라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색 삼각팬티 하나만 달랑 입고,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청년이 어디선가 등장했다. 성진은 씩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종훈이 형!”
그렇게 그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약간은 짓궂은 인사를 하는 동안, 미선은 성진의 뒤에서 그의 재킷자락을 붙잡기라도 하듯 서있었다. 그녀는 홀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안절부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성진 선배 맞나? 물론 그가 어느 정도 놀러 다니는 선배인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건 기껏해야 학교 또래나 선배들간의 접점에 그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다른 친구들이 엠티를 가건 말건 만나고 놀 사람의 수는 그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쪽은 누구야?”
종훈이 형이라 불린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내는 담배를 하나 입에 물면서 미선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조금은 무례할법한 동작이었으나 미선은 워낙 기가 눌려서 째려볼 생각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성진은 피식 웃고는 같은 과의 후배라고 간단히 소개했다.
“아, 너 학교 다니고 있다고 했지? 이런 젠장할. 요즘은 이 바닥에서도 다들 기본적으로 대학교 하나는 꿰차고 있다니깐. 가방끈 짧아서 주눅들어 살 수가 있나.”
“그러니까 살살 장사하면서 놀기만 하지 말고 자기개발 좀 해봐라, 이 생각 없는 놈아.”
시디를 바꿔끼우며 투덜거리는 범석에게 종훈은 뒤통수라도 한대 날릴 듯한 표정으로 혀를 찼고, 성진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킬킬 웃기만 했다. 문득 그는 홀 내부를 둘러보다 또 아는 사람을 발견하곤 잠시 가보겠다는 손짓을 하며 걸어갔다. 미선은 그 둘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앞을 지나쳐서 성진을 따라갔다.
홀 한쪽의 테이블에는 각종 술과 와인, 안주들이 쌓여있었고 그곳에는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검은 단발머리를 한쪽 눈을 살짝 가리다시피 빗어낸 볼륨매직 스타일이었고 이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꽤나 터프한 모습이었다. 짙은 눈화장에 짧은 티셔츠, 핫팬츠라고 부르기도 부족할정도로 짧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풍만한 허벅지를 자랑이라도 하듯 긴 다리를 꼬아앉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성진이 다가오자 간단히 왔냐는 눈짓만 보내고는 다시 액정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눌러대었다. 성진은 그녀 옆에 선 채로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는 의문섞인 음성을 내었다.
“하영인 어디갔어?”
“화장실 갔어.”
여전히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그녀. 성진은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들어올 때부터 안 보이던데.”
“화장실에서 누구랑 또 하고 있겠지 뭐.”
별거 아닌 투로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미선은 잠시 ‘화장실에서 뭘 한다는 거지?’란 순수한 의문이 들었고, 본의미를 깨달았을 땐 멍청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홀 내부의 온도에 더워진 성진은 목도리를 풀어서 재킷 주머니에 넣고는 미선을 조금 앞서 세웠다.
“어쨌거나 간단히 소개하지. 같은 디지털 미디어 학과 후배인 채미선이라고 해. 잠시지만 잘 부탁한다고.”
“아… 안녕하세요.”
꼬아 앉은 그녀의 탐스러운 허벅지에 정신이 팔려있던 미선은 그제서야 기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성진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나 그녀는 그제서야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곤 미선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고 무표정일 것 같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녀는 킥하고 웃고는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와인을 집어들며 자신을 소개했다.
“심소희. 아샨대 패션디자인과를 전공중이야. 근데 너 나이가 어떻게 되지?”
“…….”
자신을 소희라 소개한 여자는 잔뜩 기죽어서 대답도 못하는 미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와인을 한모금 슬쩍 들이키며 성진에게 말했다.
“얘 미성년자는 아니지? 좀 어려보이네.”
“그치? 문지기 녀석도 얘 민증 확인하고도 계속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더라니깐.”
소희는 소리내어 웃진 않았지만 잠시 고개를 숙이곤 어깨를 들썩였고, 곧 와인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서 그 옆에 있던 담배갑을 집어들어 한 개비 빼문 그녀는 불을 붙이곤 지긋한 눈으로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흐음… 아무리 봐도 대학생으론 안 보이는데…. 뭐 네 후배라면 갓 입학한 신입이겠고 그럴 만도 하겠지. 근데 꽤 귀엽다. 너 이런 스타일이었냐?”
“무슨 스타일. 오버하지 마. 그냥 친한 후배라고.”
“그럼 뉴페이스?”
이곳에 온 이유를 묻는 것이었고, 성진은 볼을 긁적이며 적당한 단어를 찾다가 그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냥 견학 정도? 한번 와본거랄까. 뭐 어때, 꼭 섹스하러 와야한다는 법은 없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와인잔 하나를 집어들었다. 소희도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들어 그의 잔에 채워주었다. 그리곤 자신도 잔을 들어 성진의 잔에 가볍게 부딪치면서 다시 미선을 바라보았다.
“그쪽…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는 성진한테 이미 들었는진 모르겠는데, 보다시피 그냥 노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음악 듣고 춤추고 술마시고… 단지 일반 유흥주점보다 수위가 좀 세지. 대신 회원제이고 외부인이 들어올려고 하면 가입하거나 너처럼 아는 사람을 통해서 몇 번 정돈 그냥 드나들 수도 있긴 해. 하지만 이곳도 그냥 운영되는 곳은 아니니까 웬만하면 가입하고 회비를 내면서 다니는 게 보기에도 좋아. 어쨌거나… 비공개 위주로 운영하는만큼 일단 이곳에 들어오면 오픈 마인드로 서로를 믿고 놀고 연애하고 즐기다 갈 수 있는 매력이 있어.”
미선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흘끗흘끗 관찰해보았다. 시간이 흐르며 처음의 긴장감은 많이 완화된 상태였으나 여전히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나 소파와 테이블, 카펫 등에서 대놓고 정사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광경이었다. 더군다나 대부분 20대로 보이는데 이렇게 노는 또래들도 다 있구나 하는, 신세계를 보는 기분.
“다리아프지 않아? 앉아.”
“아, 예….”
계속해서 반말을 건네는 그녀에게 존댓말로 대답하며 미선은 성진의 곁에 바싹 붙어앉았다. 마치 지금의 그녀로서는 의지할 게 선배밖에 없다는 것처럼. 소희는 그런 미선을 바라보며 다시금 미소를 짓고는 와인을 쥐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입에 문 담배를 빼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는 성진 너머에 앉은 그녀에게 물었다.
“채미선… 이라고 했지? 술 해?”
미선은 여전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보다못한 성진이 미선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잔을 슬쩍 들어보였다.
“뭐 어때, 와인 정도면. 이거 그리 싼 것도 아냐. 온 김에 마셔봐.”
“예, 예. 선배….”
성진의 말이면 뭐든 다 해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미선. 성진은 손수 빈 잔에 와인을 따라서 미선에게 건네주었고, 소희는 두 손으로 받는 그녀를 보며 또한번 피식 웃었다. 그리곤 성진의 어깨를 슬그머니 안으면서 매혹적인 눈빛을 보낸다.
“여전히 능력 좋네, 이런 귀여운 애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기도 하고.”
“경험이야, 경험. 이런 세계도 있다는 걸 알만한 나이이기도 하고.”
“쿡쿡, 하기야 경험이란 구실은 대부분의 불건전한 세계를 탐험하는 데 가장 만만한 면죄부가 되기도 하지. 동시에 자신을 깨끗이 방어하는 비겁한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여전하군. 그 시크한 빈정거림은. 네 자신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흐음, 뭔가 또 지적인 말로 꼬드겼을까?”
미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소희는 테이블 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성진의 어깨를 안은 팔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슬그머니 성진의 재킷 속 티셔츠 안쪽으로 파고들어간다. 성진은 와인잔을 기울이며 무슨 소리냐는 시선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네가 잘하는 것이기도 하잖아? 설마 저애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따라오진 않았을 테고’란 속삭임을 그의 귓가에 전달하는 소희.
성진은 문득 미선을 돌아보았고, 자꾸만 불안한 듯 이쪽을 흘끗거리며 와인을 홀짝거리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언니처럼 보이는 매력적인 여자가 성진을 쓰다듬는 걸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듯한 모습. 성진은 한숨을 쉬고는 밀착하는 소희를 조금 떨어뜨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소희는 밀어내려는 그의 손목을 붙잡아 가슴으로 이동시켰고, 성진은 본의 아니게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만지게 되었다. 성진은 흠칫하며 몸을 뒤로 빼려 했다.
“어이, 이것 봐. 오늘은 나도 그냥 있다가 갈 거라니깐?”
하지만 소희는 더욱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말 속엔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것처럼. 소희는 다리를 바꿔 꼬면서 그에게로 아예 돌아앉았고, 그렇게 밀착해오는 그녀는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하며 성진은 시선을 딴 데로 두었다.
“왜 그래? 저 아이 때문이야? 그렇고 그런 관계도 아닌 그냥 친한 후배라며. 그럼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잖아?”
“소희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냐.”
“흐응…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녹아들더니만 오늘따라 왜 이럴까?”
그리고는 일부러 슬쩍 미선쪽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는 소희.
“너도 벌써 나랑 다섯 번이나 했으면서 새삼스레….”
미선은 그 말에 멍청한 시선으로 성진과 소희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성진은 와인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허둥거렸다.
“그… 러니까, 임마! 오늘은 좀 그냥 넘어가자고!”
“봤지, 미선이. 네 선배가 부정은 안 하고 있는 걸.”
“너 정말…… 그, 그렇지! 너 형오인가 걔랑 사귀기 시작했다며? 네 남자친구는 네가 이러고 있는 거 알긴 하냐?”
핀치에 몰린 성진이 나름대로 반격해본답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소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기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리며 네일아트나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자기 입술로 조금 적셔진 에메랄드빛 손톱을 살펴보는 그녀.
“걔말야? 옛날에 찼어.”
“뭐?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남자새끼가 좀 찌질해야지, 이건 뭐 섬세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서. 징징대는 거 듣기 짜증나서 폰으로 꺼지라고 한 후 얼굴도 안 보고 연락 끊었지 뭐.”
그리고는 다시 미소지으며 자신의 입술로 적셔진 그 손가락을 살며시 성진의 뺨에 갖다댔다. 머리칼 한쪽으로 드러난 짙은 눈화장의 매혹적인 시선이 그에게로 꽂힌다.
“연애는 귀찮아…. 가끔씩 심심할때나 해야지, 그렇잖으면 피곤해.”
그리고는 굳어있는 성진의 얼굴에 마치 선이라도 그리듯 목 부분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희의 손가락. 그녀는 어느 새 성진의 귓가에 입술을 밀착해가며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런데 성진, 너라면 난 괜찮아. 언제든지 사귀자고 하면 사귀어줄 수 있어.”
홀의 음악소리는 여전히 쿵쿵대며 울렸고, 환호성과 신음소리가 여기저기 섞여 들려오고 있었으나 미선은 그녀의 조그만 목소리를 정확히 들었다. 안절부절 못하며 와인잔만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돌연 한번에 그것을 들이켰다. 단숨에 잔을 비운 그녀는 빈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탁하고 내려놓았고, 소희를 찌릿 쏘아보았다. 와인잔이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아지는 소리에 성진과 소희는 거의 동시에 미선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겠다는 투로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미선아…?”
성진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미선은 대답 대신 성진의 한쪽 팔을 자신에게로 홱 끌어안았다. 소희는 그 모습에 푸훗 하고 고개를 숙이며 웃었지만 곧 지지 않겠다는 듯 성진의 다른 쪽 팔을 껴안으며 더욱더 밀착해 앉았다. 얼떨결에 두 여자 사이에 낀 성진은 난데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잠시 멍해있다가 둘 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성진은 아랫도리에서 전해지는 묘한 쾌감에 내지르려던 목소리가 신음소리로 바뀌는 자신을 경험했다.
소희가 어느 새 성진의 바지지퍼를 끌러내린 후 자지를 꺼내어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길고 예쁜 손가락이 자지의 밑동부터 부드럽게 쓸어올리다가 귀두 부분을 세심하고 빠르게 쓰다듬었다. 성진이 그녀의 손가락에 마비된 것처럼 움찔거리는 틈을 타 그녀는 바지지퍼 아랫부분까지 완전히 파고들어가 불알을 손으로 주물렀다.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손놀림.
소희는 그렇게 적당히 성진의 자지를 주무르다가 보란 듯이 성진을 한 팔로 안고는 그의 입에 키스를 했다. 성진은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듯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의 손은 자꾸만 그녀의 가슴을 더듬게 됐고, 소희는 아예 짧은 반팔 티셔츠를 아래로 끌어내려 젖가슴을 드러나게 했다. 결국 성진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지가 불끈거리며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미선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자지를 드러낸 채 소희와 정신없이 키스를 하게 된 성진.
“쪽, 쪼옥…… 쭙…… 쪼옥…….”
“쭙…… 츄릅…… 하읍…… 쩌업…….”
꽤 떨어진 곳에서 들리던 야릇한 소리가 미선 바로 옆에서도 펼쳐졌고, 그래서 성진의 한쪽 팔을 끌어안던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얼굴을 붉힌 상당 부분은 처음 보는 언니가 좋아하는 선배의 몸을 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고, 그에 따라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게 내면속에서 슬금슬금 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증거로 미선은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지 않은 채 노려보듯 눈을 똑바로 뜨고 성진과 소희가 혀를 섞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읏….”
살짝 신음을 흘리며 입술을 뗀 소희. 그녀는 에메랄드빛 네일아트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매혹적인 시선으로 성진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주보던 성진은 문득 소희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곤 이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앉은 상태로 비척비척 옆으로 물러났다. 그 때 자신의 옆에 미선이 앉아있었다는 걸 깨달은 그는 구원의 손길이라도 갈망하듯 고개를 돌렸다.
성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녀가 행동개시를 하려는 듯 소희를 쏘아보며 몸을 일으켰던 것이다. 성진은 비록 꽤 주눅들어 있겠지만 미선이 어느 정도 소희를 방어해주리라 기대했다. 내성적인 그녀라도 의외로 독설에 소질이 있어서 그녀에게 한방 먹여줄 말이라도 선사할지 몰라. 그리고 그런 그의 바람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미선은 소희에게 분명 충격적인 한방을 먹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말이나 어떠한 동작을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해 임팩트를 준 게 아닌, 성진에게 행함으로써 정신적인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미선은 소파에 앉아있는 성진의 앞으로 와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그의 내놓아진 자지를 입으로 물었다. 그리곤 성진이 기겁해서 뭘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그녀는 어느 정도 부풀어있는 성진의 자지를 힘있게 빨아대기 시작했다. 마치 소희에게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다섯 번이나 했다고? 치, 그게 어때서! 이제부터 선배를 다른 누구에게로부터 더럽히지만 않으면 돼.’
미선은 그렇게 생각하며 선배를 향한 마음을 입술에 모아 고개를 계속해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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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집니다.
정식작가 하셔도 될 것 같다는 리플이!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회수는 왜이리 저조한지 ㅠㅠ 야설을 투고할 수 있는 출판사라도 있음 정말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ㅋㅋ 하지만 현실성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