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이프 운전연수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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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9:02 조회 1,621회 댓글 0건본문
친구와이프 운전연수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오후 무렵이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요란한 벨소리에 무료한 오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휘휘 젖는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졸리운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얌마. 모하냐"
"응..성재구나. 오랜만이네. 잘 지내냐?"
"잘 지내고뭐고..임마야. 나 좀 살려줘라"
"응? 무슨 일이냐?"
"요번에 마누라가 운전면허를 땃거든"
"그런데?"
친구놈 말은 요컨데 면허를 딴 마누라 도로연수를 시키다가 이혼할 뻔 했다는 겁니다.
차를 몰고 도로에 올라설 때 까지만 해도 호들갑을 떨며 자신 있다고 큰소리 치던 마누라가 도로를 타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려 심하게 책망을 했다는 겁니다. 흔히 있는 이야기죠.
"하하하 알만하다. 그런 사정이구나"
"그래 임마야. 나도 좀 상냥하게 가르켜 주고 싶은데, 막상 마누라가 헤멜때마다 내가 돌아버리는 걸 어쩌겐냐. 그러니 니가 좀 수고를 해줘라. 술 한잔 살께"
"글쎄..차라리 운전학원에 가보지 그러냐. 아무래도 거기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많이 가르키니까 잘 하지 않겠어?"
"이런 씹새. 우리 이쁜 마누라를 외간남자에게 어떻게 맡기냐. 넌 신문도 테레비도 안보냐. 그렇고 그런 일 종종 나오잖아"
"하하하...하하하하.."
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자제하기 힘들더군요. 이쁜 마누라라니...하하하 제가 아는 그 녀석 마누라, 그러니까 제겐 제수씨가 되는가요.
전혀 美하고는 관계없는 여자였기 때문이랍니다. 하기사 제 눈에 안경이란 말도, 짚신도 짝이다란 말도 있지만..
아. 그렇다고 제가 그녀를 비하하는 뜻이 있어 웃음이 터져 나온것은 아니란 말은 꼭 해야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오해가 없겠지요. 비하는 커녕, 그녀의 억척스러운 생활모습엔 절로 고개를 숙이고 마니까요.
친구놈이 가진것이라고는 불알 두쪽일 때 시집와서 벌써 10년. 그녀는 알뜰살뜰 살림하고 낮엔 보험하고 밤엔 시간제 파출부로 식당에 나가 설겆이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지금은 40평 아파트에 번듯한 상가건물까지 갖고 있으니, 그녀의 고생은 이루 형용하려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지요.
친구놈도 만만찮은 놈이지요. 처음엔 그런 마누라때문에 볶여서 못살겠다고 푸념 뿐이더니, 돈 들어오는 재미를 알아 버린 놈이 나중엔 더 극성이 되어 버리더군요.
친구들 술자리엔 전혀 콧배기 안 보이고, 관혼상제 어디에서도 녀석은 봉투 한번 내미는 법이 없었습니다.
지독하다...라며 다른 친구들이 수근거렸지만, 녀석의 귀에도 틀림없이 들렸을 그런 악담에도 녀석은 태연하기만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녀석이 찾아 왔더군요. 마누라하고 함께였습니다.
그들 부부 결혼식에 보고 제수씨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으니, 5년만인가요. 그녀는 결혼식때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답니다.
까칠한 피부에 기미 주근깨로 뒤덮힌 얼굴, 가죽과 뼈 뿐인듯한 앙상한 몸.
하지만 지금도 또렷히 기억나는 건 그녀의 강렬한 눈빛이었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일도정진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전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벌어진 일엔 경악스럽기 조차 했답니다. 전 더 큰 충격적인 감동에 휩싸이고 말았던 겁니다.
아직 어수선한 집안으로 극구 거절하던 그들을 억지로 잡아 끌듯이 잡아 들여와 차 한잔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녀가 분명 어디 시장판에서 싸구려로 샀음직한 낡아빠진 코트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새하얀 봉투를 꺼내선 제 와이프에게 떠다 맡기고는 황급히 사라진 것입니다.
친구놈은 그런 마누라 뒤를 따라 가다가 날 잠시 뒤돌아보더니 다시 그녀 뒤를 쫓아 가버리고, 망연자실 남겨진 저희가 그 봉투를 열었을 땐 십만원이란 돈이 담겨져 있던 겁니다.
메모 한장과 함께. 결혼 축하한다. 어쩌구저쩌구. 네가 보여준 20년 동안의 우정에 감사한다. 어쩌구저쩌구.
다른 놈들에겐 이야기 하지마라. 누군 주고 누군 못 주는 내 심정도 편친 않구나.....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전후 사정이 길어졌읍니다만, 몇 번의 사양 끝에 전 녀석의 부탁을 승낙했습니다. 아참. 제소개가 늦었군요.
전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IMF로 인한 실직자 신세였답니다. 어쩔 수 없는 무능한 자신만을 원망하며 무의도식, 퇴직금만 까먹을 때였죠.
그러니 시간도 철철 넘치는 놈이 거절하기 힘들었기도 했고, 집구석에서 마누라의 눈총 받기도 불편했으니 오랜만의 외출을 결심한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죠.
만나기로 한 전철역 환승주차장에 어슬렁거리며 약속보다 좀 늦게 나갔답니다. 그런데 녀석의 차가 안보이더군요.
덜덜거리는 르망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차가 안보여서 아직 안왔나 싶었죠.
그런데 제가 기다릴 요량으로 나무그늘을 찾고 있는데 저 쪽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그랜져에서 녀석이 나오더니 팔을 치켜드는 거에요.
"야. 여기다"
"어라?"
전 그렌져쪽으로 걸어 갔습니다. 하긴 현재 녀석의 재력으로 볼 때 그렌져쯤이야 전혀 무리가 아닐것입니다.
저도 녀석과 이십년지기라지만 , 녀석이 그리 재테크에 능력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답니다.
언젠가 녀석이 술 마시면서 들려준 이야기로는 <한단위>가 어렵고 그걸 넘어서면 나머지는 그냥 들어온다는 거였습니다.
말하자면, <백만원>을 벌면 <999만원>까지는 일방통행이고 ,<천만원>을 채우면 <9999만원>까진.....그리고 <억>인데...<억>에서부터는 <단위>가 <일억, 이억, 삼억....>으로 바뀌는 걸 빼면 원리는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저야 한달마다 나오는 월급만으로 살아오던 놈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만...
그렌져는 첫 눈에 보기에도 그야말로 티끌조차 없는 센삥이었읍니다. 파리가 낙상한다더니, 그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와아. 니 차냐? 하하. 근사하다"
전 진심으로 기뻣습니다. (물론 100%냐고 물으신다면....^^)
"이제 너도 쓰고 살기로 한 모양이구나. 그래 잘 생각했다. 젊은 놈이 즐기면서도 살아야지"
기쁘기도 부럽기도 한 마음에 좀 수선을 피웠는데도 녀석은 쓴 웃음만 지을 쁜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백수인 내게 좀 미안하다 싶었겠죠.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 얼굴빛으로 들을수 있는 사이란 건 정말 편합니다만, 때론 불편할 때도 있죠.
지금처럼..그래서 좀 수다를 떨었답니다. 얼마냐느니, 잘나가냐느니..녀석은 간단한 대답만 하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차 안을 들여다보며 빨리나오라고 재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썬팅이 짙어서 안이 들여다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녀석의 마누라, 제수씨가 타고 있겠죠. 역시 그렇더군요.
부끄러워서...어쩌구 하면서 좀처럼 나오려 하질 않더군요.
"이런...선생님 오셨는데 무슨 부끄럼이야. 빨리 안나와" 녀석의 윽박지름이 이어지고, 마침내 탈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다리가 먼저 땅을 딛더군요.
빨간 슈즈가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첫눈에 보기에도 고급품이란걸 알 수 있을만큼 매끄럽게 여름햇살에 반짝이더군요.
얼마나 고가이고 고급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장바닥제품이 아닌건 확실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제수씨가 나오는데.....
앗! 전 내심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던 친구마누라가 아니었습니다. 전혀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 녀석이 딴 여자를 데리고 나온 줄 알고 적잖이 당황했을 정도였으니 그녀의 변신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는 제 이야길 들으시는 당신에게 맡깁니다.
제가 해드릴 설명이라면 먼저 머리는 숱 많은 생머리로 목덜미에서 묶었고, 옷은 검은색 심플한 끈원피스였답니다.
예전에 깡마르고 눈빛만 형형하던 몸매는 적당한 영양상태 덕분인지 매우 보기좋을 만큼 살이 붙어 있었고 피부는 썬탠을 했는 모양으로 콜라빛으로 시원해 보였습니다.
짙은 썬글라스 때문에 그녀의 눈빛을 보지 못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틀림없이 그녀였습니다.
아무튼 녀석이 우리 이쁜 마누라 어쩌고 한 것을 웃었던 내 자신이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폐를 끼칠것 같아요. 어쩌죠?"
말투조차 완전히 딴 사람이었습니다. 제 집에 친구와 둘이서 왔을 때는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별다른 말도 하지않고 묻는 말에나 마지못해 대답하던 여자였는데....
"아네....별말씀을요..(우물쭈물..)"
"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디 가서 시원한 거라도 한잔 마시자. 지낸 이야기도 좀 하고말야"
친구놈이 그렇게 곤혹스러운 절 구해주더군요.
"어때? 오늘 인천에나 갈까? 마침 내가 거기 일도 있고말야 연수하기에 좋은 곳도 있다구. 나 일볼 때 연수하고 올라올 때 또 셋이 같이 오면 되겠어"
저야 시간이라면 써도 써도 남아도는 형편이니 별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 가게 됐죠.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보니 어느새 경인고속도로가 끝나더군요.
월미도에서 회 한사라를 먹고는 택지조성중이던 연수동으로 갔습니다. 연수동이라니. 그래서 아직 그 이름을 못 잊나봅니다.
도로연수할 곳 , 연수동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모양으로 그 기초공사 때문인지 여기저기 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제법 쌓아 올린 건물들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하면 될꺼야. 차라고 해야 뜸하게 트럭들만 지나다니거든"
"응.."
그러고보니 신도시라서 그런지 도로도 잘 정돈되어 있었고,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어 도로연수엔 적격처럼 보였습니다.
"아참! 너 생명보험 들어놨냐? 안들었으면 안전벨트 꼭 해라. 에어빽이 운전석만 터진다. 하하하"
"이이는...호호"
눈을 곱게 흘기는 마누라를 등 두드려 격려해주곤 녀석은 성큼성큼 걸어가 어느 공사장으로 들어가더군요.
둘이 남자 좀 어색하기도 하고 해서 전 맡겨진 임무에 곧장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네"
둘이는 차를 탔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빤히 쳐다보더군요. 무얼 어떻게 해야하냐는 의미겠지요.
그런데 전 그때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겁니다. 감히 그녀와 눈을 맞출 용기가 안나서 헛기침 한번 하고는 말을 꺼냈죠.
"어느정도 하셨어요 연수는?"
"연수랄거 까지도 없어요. 한 백미터 가면서 내내 저이 잔소리만 듣느라고 아무 기억도 안나요"
"하하.."
"얼마나 잔소릴 해대는지 .. 결국 대판 싸우고선 운전대 뺏기고 말았어요"
"하하...저도 잔소리 할 지도 모르는데.."
"호호..인규씨가 설마 저이처럼 막말이야 하겠어요"
"막말...을 하던가요? 성재가요?"
"말도 마세요. 얼마나 난리던지..욕은 기본이에요"
"그래서 제 식구는 못가르키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정말 그런가봐요. 처음이었어요. 저이 그러는건"
"자.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보죠"
전 달리 그런 문제에 대해 말 할만한 것도 없고 해서 말을 돌렸습니다
"네. 잘 가르켜주세요"
썬글라스 너머로 절 보며 그녀가 웃음 띤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도로연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전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돌을 집어서 도로 가장자리에 눈대중으로 사각형의 줄을 그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일렬주차연습을 위한 작업이었지요. 지금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운전의 기본이자 기초는 주차라고 전 믿습니다.
혹 이 이야기를 듣고 계신 분들 중에는 저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제 짧은 소견으론 차를 출발하는 자리가 바로 기본이란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여기서..계속 왔다갔다 해야 하는건가요?"
그녀가 뾰루퉁한 얼굴로 이렇게 물어 왔을때 , 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답니다.
단호하게!! 여자는 공간인지관념이 부족하다더니, 그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스무번 쯤 반복하고 나면 어느정도 감을 잡을만한데, 그녀는 당장 시작한 것처럼 수십번을 되풀이해도 마찬가지로 헤메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별로 이 작업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한번 떠 보았죠 "재미없나요?" 그녀는 날 얼핏 보더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곤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하고 묻더군요.
전 물론!! 하고 응답했죠. 그녀말은 ,자신은 도로를 달리고싶지 네모진 칸 안에 자신을 우겨넣고 싶진 않다고 말하더군요.
전 참을성 깊게 그녀가 할 말을 다 하도록 기다려 주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푸념이 끝났을 때 제 소견을 들려 주었습니다.
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가 떠나고 출발하는 그 위치다. 그것이 주차다. 도로를 달린다는것은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고나서 차를 못세운다면 그것 만큼 곤란한것도 없는 것이다. 달리는 것은 누구라도 한다.
하지만 처음에 주차를 배워 놓는다면 그 주행은 후환을 없앤 편안한 것이 분명하다 라고요.
제가 워낙 진지하게 설명해서일까요. 그녀는 썬글라스 너머로 보이지않는 눈으로 쭉 저를 응시하는 듯 보이더군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번 더 해요 하고 말해주더군요. 이 기회다 싶어 전 달갑지 않은 소릴 한마디 더 했죠.
썬글라스는 자외선을 막아주며 눈의 피로를 덜어 주는 중요한 소품이지만, 초보로서 아직 주위를 살피는 능력도 안되면서 스스로 빛을 차단하다는것은 아직 배우는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그렇게 힐 높은 구두는 유사시에 브레이크를 밟기에 적당치 못하다.
운동화를 하나 준비해서 운전할 때는 운동화를 신는 편이 좋겠다...... 한참 듣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하더군요
"정말 제 남편 친구 맞네요. 똑같은 잔소리....호호호"
그라고서는 썬글라스를 벗어 버렸답니다. 그리고는 쑥스럽게 웃고 있는 저를 향해 얼굴을 돌렸습니다. 아....그 눈... 그 눈빛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더군요. 아까 말씀드린듯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선 그걸 향해 줄달음쳐갈 때 옹고집이 번뜩이는... 그 눈빛이 다시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전 이 여자가 언젠가 때 절은 옷과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제 결혼축의금을 던져놓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던 내 친구의 마누라란 걸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야 이야기지만 그때까지도 혹시?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저흰 다시 차에 올라 탔습니다. 그녀는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부르릉~~ 차 엔진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달아 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답니다.
마치 전쟁터에 투입되기 전날의 병사의 코 고는 소리처럼,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희극적이기도 하죠.
그녀는 기어를 넣는다고 기어쪽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내려다보시지 않아도 계기판에 나오잖아요. 시선은 앞을 주로 해 주세요"
"네.."
그녀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다소곳하게 대답했는데, 그게 제 눈에는 왜 이리 이뻐보이는지요.
그녀는 R로 기어를 넣고 핸들을 돌리며 룸미러와 빽미러를 번갈아 힐끗거리며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에어콘을 틀어 놓았음에도 그녀는 긴장했는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있었읍니다.
차는 꾸물거리며 주춤주춤 뒤로 향했습니다만, 역시 별로 나아진 것은 없더군요. 삐뚤삐뚤한 움직임.
아직도 차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으로 후진 일렬주차는 아직 무리였던 걸까요. 그녀도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이제 첫날이니까 당연한거랍니다. 점점 더 익숙해지실거에요."
"정말 그럴까요?..전 왠지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풀 죽은 모습의 그녀가 왠지 안쓰럽고 측은해 보여서 전 무언가 용기를 주고 싶어 졌습니다.
자신감을 되찾아 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느라 전 그녀의 말을 얼핏 놓치고 말았는데, "선생님? 냉커피 한잔 하러가자구요. 무슨 생각을 그리.."
"아...네. 좋죠. 저도 목이 컬컬하던 참이니...가죠"
그리고는,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자신감회복을 위한 궁리.
"제수씨. 아까 우리가 차 마신 곳 있죠? 거기로 가요"
"월미도요? 좋아요" 하면서 일어나려는 그녀를 전 가만히 제지 했답니다. 그리고 말했죠.
"제수씨가 운전해서 가는거에요"
"네? 제가요? 어머 안돼요. 전 못해요. 자신없어요"
호들갑을 떨면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전 말 없이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여주었죠.
"저...정말 자신 없어요...."
"걱정마세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오히려 주차가 어렵지. 그냥 앞으로만 가면 되요. 내가 잘 살펴줄테니 미러 보는것 염두에 두고 브레이크와 악셀레이터만 확실히 밟아 주세요"
"하지만.."
"그렇게 겁이 많으신 분이셨나요? 제 기억하고는 다른데요.."
전 일부러 그녀의 약을 올렸습니다. 자존심 강한 여자란 걸 알고 있었답니다. 과연 효과는 금방 나타나더군요.
이를 앙다물며 저를 흘깃 보더니 운전대를 꼬옥 잡아 쥐더군요.
"좋아요. 하지만 사고나면 선생님이 책임지셔야 해요"
"후후. 책임지죠. 갑시다"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키를 돌렸습니다. 부르르릉~ 차가 가벼운 진동을 했어요.
제가 보기엔 그녀나 차나 둘 다 긴장상태인 듯 보였습니다. 저도 슬슬 긴장이 되더군요.
사고나면 내 책임이라는데 방관자적 입장에서 지켜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더군요.
기어를 D로 넣더니 브레이크를 서서히 놓는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톱!!"
"어멋!"
끼이잌!! 제 돌연한 정지명령에 그녀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차가 출렁 할 정도로 급히 멈추어 섰습니다.
"왜그래요?"
약간은 신경질적인 어투로 그녀가 항의반 의아반으로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죠.
"아직 출발하기 위한 준비가 안됐어요"
"무슨...?"
"먼저 안전벨트"
"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벨트를 찾아내선 끼우려고 하는데, 긴장 탓인지 제대로 그 구멍에 맞추질 못하더군요.
전 속으로 아이구 이 여자가 엄청 쫄았구나, 하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운전하라 그랬나 하는 후회도 밀려오고.
하지만 이대로 그녀에게서 운전대를 뺏는다면 그녀가 완전히 자신감을 잃을 것이 뻔했습니다. 던져진 돌팔매였습니다.
어디에 떨어질런지 몰라도 일단 날아갈 수 밖엔... 그녀는 아직 벨트를 끼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마에 핏줄이 불끈거리고 땀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보다못해 제가 거들었습니다.
제가 끼우려 했는데도 안들어가더군요. 줄을 짧게 뺀 때문이었습니다. 못 미치는 걸 어떻게든 끼우려니.
전 줄을 잡아당기기 위해 팔을 뻗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딸려가고 마치 제가 그녀를 안는것처럼 몸이 겹쳐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제 후각으로 확 끼치는 냄새. 화장품과 땀냄새가 믹서된 묘한 자극이 제 후각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게다가 제 왼편가슴과 그녀의 오른쪽 가슴이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완전히 밀착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가는 숨결이 제 턱을 간지럽혔습니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아니 착각일 것입니다.
그녀의 가는 신음소릴 들었다고 느낀건... 탈칵! 하고 벨트가 채워지고 전 제위치로 돌아 왔습니다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마른침이 자꾸만 삼켜져서 그걸 들킬까봐 제대로 말도 못했답니다.
벨트를 맸기 때문에 그녀의 가슴은 둘로 확실히 구분되어져 더더욱 도드라져 보이는것도 자꾸 제 시선을 땡겼습니다.
내가 미쳤나봐...하며 죄책감같은것이 불끈 치밀더군요. 친구 마누라를 여자로 느끼다니.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제 쥬니어가 점점 고개를 드는거에요. 난처하기 그지없더군요. 그래서 얼른 말했죠.
"출발하죠"
스르르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한적한 도로를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미러 보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정신없었죠. 속도는 20키로도 안나오더군요.
"악셀을 밟으세요. 천천히..."
우우웅...하며 속도가 빨라지더니 다시 발을 떼었는지 속도가 또 떨어지더군요.
운전대를 움켜 쥔 채 몸이 완전히 앞으로 쏠려서 차유리에 코를 마주할 듯이 바짝 다가서 있는 모습으로 그녀는 앞만 뚫어져라 노려보았습니다. 겁 먹은게 분명했습니다.
"뒤에 차 오나요?"
"네?..몰라요. 잠시만요" 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뒤로 돌리더군요. 그러더니 안온다며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차는 비록 서행하고 있었지만 전방주시태만이라니 .
"차 세우세요"
좀 전보다는 제법 여유있게 섰습니다.
"제수씨. 우선 자세가 나빠요. 운전할 때의 자세는 히프를 뒤로 완전히 붙이고 가슴을 펴세요. 운전대는 10시10분으로 잡고..."
전 하나하나 그녀의 자세를 교정해주었습니다. 그러자니 아무래도 그녀의 옆모습을 보아야 했는데 이게 또 보통 난처하질 않더군요.
짧은 원피스는 허벅지가 훤히 보이고 악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다보니 그럴때마다 그 사이가 아슬아슬하게 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팬티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어둠으로 처리되는 그 부근의 실루엣이 안타까움을 더 한 갈증으로 느껴지는 경험, 여러분들도 있으시죠? 홀라당 벗어제친 것보다는 따오기(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않는...)가 더더욱 감질나는 괴로움으로 우리 남성들을 몰고 가는거 아닌가요.
그런데다가 땀이 송글송글 맺힌 그녀의 목덜미 , 땀에 젖은 옷과 그 옷을 밀어 올리듯 봉긋한 두개의 밥사발같은 가슴의 또렷한 윤곽, 가쁜 숨소리.....고문이 따로 없었습니다. 제 쥬니어는 이미 통제불능.
제 의지가 미치지 않는 놈의 융기를 혹시 그녀가 볼까봐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넣어 꼭 움켜쥐고 있어야 했습니다.
전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너저리너저리 그녀에게 가르쳤고, 그녀는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 듣는체를 했습니다.
다시 차는 출발했고, 이번에는 그녀는 내 지시대로 잘 해주더군요. 자세는 단정하고 시야처리도 원만했습니다.
속도는 50을 넘지 못해서 뒷차의 하이빔과 클렉션소리를 수시로 받아들어야 했지만, 제가 요구한 것들이 성실히 받아들여진다는 기쁨에 전 매우 흐뭇하고 뿌듯해졌답니다.
무엇이 그녀를 갑자기 자신감있게 바꾼건지 전 의아했지만 어쨋거나 가르키는 선생으로서 배운 학생이 잘해주는 것만큼의 보람이 어디 있을까요. 월미도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친구놈이 몰고 올 때는 금방 와서인지 지척거리인 줄 알았습니다만, 제법 멀더군요.
아무리 그녀가 잘해주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그 거리는 무리다 싶던 차에 줄지어선 회집과 여관들이 운집한 곳이 보여서 거기 한곳 커피숍에 차를 세웠습니다. 거기가 송도였습니다.
주차장은 텅비어 있어서 그녀는 별 어려움 없이 무난히 주차를 하더군요. 주차 후 키를 뽑고 나서 절 바라보던 그녀.
의기양양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그 눈길에 왠일인지 전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제 마음이 검어서 그런건지 그녀의 시선엔 무언가 도발적인 기운이 서려 있는 듯 보인 까닭입니다. 제 착각이겠죠?
"선생님. 어때요? 잘했죠?"
"네. 아주 잘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했어요....선생님! 저 열심히 배울께요. 많이 가르켜주세요 네?"
"물론입니다. 잘하시니까 저도 아주 기분이 좋은걸요"
차에서 내려 갑자기 그녀가 내 곁으로 와서 팔짱을 꼈습니다.
느닷없는 행동에 전 당황했읍니다만, 그녀의 뭉클한 젖가슴의 감촉이 제 팔에 확실히 느껴졌을 때의 그 설레임은 지금 이 순간도 또렸하게 남아 있음을 고백해야겠군요.
머리속의 피가 몽땅 쥬니어로 몰려간 때문인지 어찔, 하며 현기증까지 날 정도였답니다.
오랜 시간을 충혈된 상태로 고개들고 있던 쥬니어는 이미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구요.
커피숍에서 누구라도 저희 두사람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연인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녀는 아예 제 옆자리에 앉아서 제 이야기 하나 하나에 까르르르 여고생같은 웃음으로 답해 주었습니다.
비록 화제는 운전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다시 고백컨데 그때 제 옆에 앉아있던 그녀가 제 친구의 마누라란 사실을 전 잊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녀가 채근했습니다. 제가 겪었던 운전중에 일어난 에피소드 한가지를 들려주고 있었거든요.
덤프트럭 앞에서 끼어들기를 했더니 이 자식이 미친듯이 제 차를 받아버릴 듯 바짝 붙여 계속 따라온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되겠더군요. 제가 브레이크를 조금만 밟아도 바로 추돌해 버릴 것처럼 제 엉덩이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으니까요"
"어머어머. 그래서요?"
"차를 세웠죠. 그랬더니 자기도 세우더군요. 그러더니 문이 열리고 내리는 기척이 들리더군요. 오늘 한판 하는구나,하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죠. 저도 내렸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요. 그런데요오~"
"걸어오는 녀석이 글쎄 키가 한 160이나 될까말까한 놈인겁니다. 상상해보세요. 그 큰 덤프트럭에서 왠 난장이똥자루만한 놈이 똥폼을 턱 잡고 배바지를 추켜올리며 씩씩거리며 걸어오는걸.."
"호호호호...호호호...게다가 선생님이 이렇게 한 덩치하시는 분이니...호호호호"
"하하하 걸어오다가 절 보더니 멈칫 하더군요. 녀석도 착각을 한거겠죠. 쪼그마한 프라이드에서 185짜리가 기어나오리라고는 미쳐 생각도 못하고. 하하하하"
"호호호 호호호"
커피숍에 있던 몇명인가가 모두 돌아볼 정도로 저희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녀석이 갑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덤프에 올라타고는 황급히 가버리더군요. 다신 차크기로 밀어붙이는 짓 안할 겁니다 하하하"
"그러고보니 선생님이나 성재씨나 모두 키크고 덩치가 크네요"
"유유상종인가봅니다 하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박에는 땅거미가 스물스물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쉬웠죠.
이대로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고픈게 제 솔직한 마음이었답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던것 같습니다.
제가 그만 가자고 했을때 10분만 5분만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밖은 어둠으로 물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연수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몇번이나 친구놈과의 통화을 시도했지만 , 녀석의 핸드폰이 절명했는지 연락이 닿지를 않자 비로소 그녀도 조금 초조한 안색을 보이더군요.
운전을 하는 저로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수동에 도착해서 친구놈과 헤어졌던 곳에서 차를 멈춘 채 녀석과 연락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죠.
좀전에 그리 척척 호흡 맞추어가며 이야기하던 그녀와 저였지만, 그땐 서로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짙어져 가는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따름이었답니다.
어색한 침묵이 가라앉은 차안이 답답하더군요.
서울로 가 버릴 수도,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난처함에 놓여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라디오라도 들으실래요...?"
조수석에서 손톱을 물고 있는 그녀가 딱해 보여 한마디 건네 보았습니다.
"선생님..... "
"네..?"
"기억나세요?...제가 결혼식장으로 갈 때 저 태워다 주신거요.."
아. 그렇군요. 제가 미쳐 말씀 못드린 게 있는데,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생각났거든요.
친구놈이 거래처로 가 버리고 둘만이 차에 남게 되자 이 상황이 언젠가 한번 더 있었다는 걸 기억해낸거죠.
녀석의 결혼식날, 전 신부댁으로 가서 신부인 그녀를 태우고 식장으로 갔던 일입니다.
그런데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길 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안 남았답니다. 아마 별 이야긴 안했기 때문일 겁니다.
인상적인 이야길 나누었다면 단박에 기억 못했을 리 없죠.
"네. 기억납니다. 참 이쁘셨죠 그때..후후"
거짓말입니다. 그때 교회에서 결혼을 하느라 신부인 그녀는 신부화장까지 마치고 웨딩드레스를 질질 끌며 제 차에 올랐는데, 긴장으로 잔뜩 굳어진 얼굴에 깡마른 광대뼈만 눈에 가득 들어오더군요.
게다가 잠을 설친 탓으로 화장이 안먹은건지, 아니면 동네미용실 솜씨여서 그런건지 화장마져 붕 떠버려서 그리 감탄할 만큼 이쁘진 않았답니다.
"호호...거짓말마세요. 저도 그때 사진 보면 깜짝 놀라는걸요..호호"
"아닙니다. 정말 이쁘셨어요"
"그럼....그때가 이뻐요? 지금이 이뻐요?"
시트에 파묻힌 채 어둠에 쌓인 전방만 바라보며 사근사근 이야기하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물어왔을 때 전 흠칫! 놀랄 정도로 그녀의 태도는 도전적이었습니다.
끈원피스에 채 가려지지 못한 가슴갈라진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마 그녀의 눈에는 제 동공확대되는게 보였을겁니다.
"무,,물론 지금이 이쁘죠....하하..."
"지금이 더 이뻐요? 정말요? 왜 지금이 더 이쁘죠?"
질문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고 전 자꾸만 말이 더듬어졌습니다.
지금이 더 이쁜 이유야 뻔했죠. 지금 그녀는 여자로 보이니까요.
"그, 글쎄요..이유랄거까진 잘 모르지만...아무튼 지금이 더 이뻐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다시 시트에 몸을 묻더군요.
"그때 저에게 이야기해 주신 거 , 기억나요?"
"언제요?"
"절 식장으로 태워다 주실 때.."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는군요. 아. 한가지 더 기억나는군요.
길이 막혀서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초조했던 기억.
"그때 성재씨 자랑 해 주시고, 길막혀서 제가 초조해 할까봐 우스운 이야기도 해 주시고....노래도 불러주셨잖아요"
그랬군요. 이제 기억납니다. 그랬었죠. 이제야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조금 당혹스럽더군요.
제게는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한 채 잊혀져 버렸던 일이 그녀에겐 또렷한 모습으로 추억되어지고 있었다니.
"그때 불러주신 노래가 초야란 노래였죠?"
"네. 산울림의..."
"그 노래 들으면서 전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사실 , 그때 초조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호호..지난일이지만 다시 생각하니 진땀이 또 나오네요 호호."
그녀는 정말 진땀이라도 난다는 듯이 손바닥을 펴선 호오호오 불기까지 하더군요.
"하하. 그런 기억은 잊어버리세요"
"아뇨!"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곤난한 지경에 빠진 절 위해 노래까지 불러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물론 아직까지도요..."
전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만큼 난처했습니다. 날 빤히 응시하는 그녀와 눈을 맞추자니 오늘 사고 칠 것 같고, 앞만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친구놈이 나타나 야 이 새끼야. 내 마누라랑 무슨 수작이야 하며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도 싶고.
"저..선생님" 하고 불러놓고는 무엇이 우스운지 입을 가리며 웃더군요.
"선생님선생님 하니까 제가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선생님이 자꾸 생각나요. 그러고보니 두분, 공통점이 있네. 자상하고 다정하고....호호.."
"네...그럼 그냥 이름 부르세요"
"아뇨. 싫어요. 선생님이라고 부를래요. 그게 좋아요"
"...."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라뇨...말하세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다면야.."
"물론 들어 주실수 있어요. 그리고 꼭 들어 주셔야 하구요"
꼴깍. 전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상황묘사가 얼마나 근사치에 접근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그녀가 우리, 카섹스해요 지금 당장! 하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답니다.
야릇한 열기가 차안을 가득 메웠고, 두사람의 들 뜬 호흡에 차 유리는 뿌옇게 흐려져 있었습니다.
제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제 몸의 일부분이 쿠데타라도 일으키려는 듯 속속 병력을 저 몰래 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부탁이란...."
"네..."
"그때 불렀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 달라는거에요"
이런. 최소한 절 한번만이라도 안아주세요 정도는 나올 줄 알았더니. 온몸에 기운이 주욱 빠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왠지 희롱당한 기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김칫국부터 생각한 건 저 자신이죠.
게다가 그녀는 제가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친구마누라이고요. 그런 사람에게 흑심을 품은 제 자신을 전 책망했습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구제불능이란 말이야 어쩌구 하며 반성을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하하. 저 음치란거 잘 아시면서요. 가사도 다 잊었고요"
"아뇨. 그때 들려주신 노래는 제가 들은 어떤 노래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어요..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선생님은 부끄럼을 무릅쓰고 절 위해 용기를 내셨던 것일거에요. 다시한번 용기를 내 주시겠어요?"
"그 노래 불러본 지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자신없어요 후후"
"모르면 모르는대로 아는데까지만이라도..."
아무래도 쉽게 단념할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에게 연락 올 때까지 킬링타임으로 절 골려주려는 의도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그녀에겐 진실성이 있었습니다.
제가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걸 꺼리는게 사실이지만, 그녀의 간절함에는 거절하기 힘든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전 잠시 눈을 감고 초야란 노래가사를 상기하려 애썼습니다.
밤이 되자 주위엔 낮에 가끔 다니던 트럭은 커녕 자전거 한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풀벌레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절 응시하면서 말을 삼간채 제 노래가 나오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닷바람 차갑지않아 달처럼 어여쁜 얼굴..."
나즈막히 전 읊조리듯 노래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제 노래소리에 눈을 감고는 양손을 모으고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사위는 고즈녁한데 제 음정박자 무시한 노래가 한 여름날밤에 언발란스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꿈결처럼 고운 이 밤에 사랑해 사랑해 밤하늘 무지개 피네...."
전 꿋꿋히 2절까지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제 노래를 듣고 있었답니다.
마침내 제 부끄러운 노래가 끝났을 때 전 휴우, 한숨을 몰아쉬고는 앞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나오질 않는겁니다. 아직 이어지는거로 아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 끝났어요...으이구 챙피해라...하하 하며 막을 내렸음을 알려도 역시 무응답.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더니.....자고 있는 겁니다.
이런 태평한....하하...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녀가 새근새근 가는 숨을 규칙적으로 쉬면서 꿈나라로 가 버린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전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도테의 별이란 단편을 떠 올렸습니다.
저 하늘의 별 하나가 지친 몸을 내 어깨에서 쉬고있다..라며 맺음하던 양치기소년의 이야기.
전 정말 그 양치기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어 잠든 그녀의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싫증내지 않고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전 어느새 그녀의 입술에 가만 입 맞추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절대 정액냄새 비릿한 육욕에서의 행동은 아니었답니다.
그건 굳이 표현하자면 그녀에게 주는 꽃한송이같은 키스였답니다. 여러분들이 믿거나말거나. 입술은 촉촉했습니다.
전 제가 마치 장미꽃잎에게 입맞춘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로 그녀의 입술은 나른하고 촉촉했답니다.
여름이라해도 아직 봄날 꽃샘바람이 밤엔 패잔병들처럼 출몰하던 때라 비록 차안이라 해도 그녀가 좀 추울 듯 생각되어지더군요.
전 입고있던 양복 상의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으음 하면서 뒤척이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저도 잠이 들어버린 모양입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핸드폰 벨소리에 저는 잠을 깼습니다.
전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고 잘 만큼 잠귀가 어두운 편인데도 단 한번 울린 벨소리에 잠을 깬 것을 보면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여보세요"
잠기운 하나 없는 명료한 목소리로 그녀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단 한번 벨소리에 받은 것을 보면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나 봅니다.
어라. 그러고보니 제가 덮어 준 양복상의가 고스란히 제게 덮혀져 있는게 아닙니까.
진작부터 그녀는 깨어 있었나 봅니다.
"네네..저에요. 당신 어디에요 지금.....네네....아뇨 서울이에요....네..알았어요...네..그럼 집으로 갈께요...네"
"성재인가요?"
"네"
"어디래요?"
"거래처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술 한다나봐요"
그녀는 딴사람 이야길 하듯이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인천에서요? 아니면 서울에서...?"
"인천이라는데 제가 서울이라니까 택시타고 온다고 하는군요"
"네...서울로 올라가야겠군요... 아까 낮에 처음 만날 때 부터 느낀 것이었습니다만, 어쩐지 그들 부부는 사이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왠지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듯 하더니 지금 그녀 태도로 보아 그 느낌이 점점 굳어지더군요.
그런데 여기 인천인데...왜 서울이라 하였을까. 잠시 생각해보니 그녀 생각을 헤아릴 듯도 하였습니다.
아직 인천이라 하면 여러 설명을 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을테고, 친구놈이 의처증끼가 발동할런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아마 편하게 생각키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이제와서 말입니다만,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녀석이 바람이 났다는 일설이 있었습니다.
무리는 아니지요. 녀석이 결혼하고나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모진 고생을 했는지는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돈도 모이고 여유가 생기자 눈이 돌아가기 시작한거겠죠.
저 역시 그다지 건전한 놈이라고는 할 수 없는 처지에 녀석을 비난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녀석이 의처증끼가 다분하단 겁니다. 아무래도 그런 건 선천적인가 봅니다.
어릴때나 총각 때 ,같이 여자도 만나고 하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 일쑤더군요. 혹시 둘이 눈 맞지 않을까하는....
저에 대해서 녀석은 라이벌의식이 뿌리 깊었습니다. 그점에 대해선 저도 별로 자유롭진 못하긴 합니다만.
특히 제가 여자들에게 자신보다 더 어필하는 경우가 많아서 상당한 컴플렉스로 받아들여 진 것을 언젠가 제게 술자리에서 고백해준 적도 있었답니다.
그런놈이 왜 절 자신의 마누라 운전강습을 맡겼을까. 아마도 그녀가 강력히 주장했을 것이란 추측을 했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들어맞더군요.
다른 사람은 다 되도 그놈만은 안된다는 녀석과 부부싸움까지 할 정도였더군요.
어쨋거나 지금 이 시간까지 타지에 저와 함께란 걸 말한다면 녀석이 길길이 날뛰진 않는다하더라도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많을 것임은 명약관화했기에 그녀의 거짓말은 우리 모두를 편하게 해 주는 선의의 거짓말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서울로 차를 몰았습니다. 물론 제가 운전을 하고 그녀는 조수석에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저리 골똘히 하나 할 정도로 그녀는 말이 없더군요.
꽤 늦은 시간인데도 편도2차선의 경인고속도로는 속력을 내지 못할 만큼 제법 많은 차들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요금 내는곳에 다다르자 거의 체증이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녀가 핸드빽을 뒤적이더니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듯 보였습니다.
"제게 있어요. 그냥 계세요" 하고 만류했는데도 그녀는 기어이 천원을 건네주더군요.
전 조금 기분이 상했습니다. 자격지심인 줄 알면서도 내가 직업도 없다고 이러나 ,하는 옹졸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까....."
"네?"
"아까 노래 잘 들었어요. 부탁 들어 주셔서 고마워요"
전 속으로 흥! 하고 비웃었죠. 디비 쳐 잔 주제에.. 전 그녀에게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습니다.
"고맙다고 말만 하시면 뭐해요. 답례를 하셔야죠"
"답례?"
갸우뚱하며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를 다시 한번 일별하더군요.
"비싼 노래 해드렸으니 노래로 답해주시길 바랍니다"
전 의도적으로 사무적인 어투로 이야기했답니다.
그녀는 잠시 저를 빤히 바라보더니 내 저의를 살피려는듯 말 없이 가만히 있더군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아요. "
너무 대답이 쉽게 나와서 오히려 제가 당황해 할 정도로 그녀의 대답은 선선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노래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위는 침묵해버렸습니다.
저도 역시.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가네 아홉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네 가네 가네 갑순이 갑순이 울면서 가네 소꼽동무 새색시가 사랑일줄이야" 고운 노래였습니다.
애조 띤 가락이 처량하게 때론 애절하게 구비치고 있었습니다. 엔진소리마져 숨을 죽이고 그녀의 노래에 취한 듯 했습니다.
제 가슴에도 그녀의 노래에 실려 무언가 희미한 슬픔같은 정체모를 기운이 전염되어서 답답해졌습니다.
조금전의 제 옹졸함은 봄날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전 아늑한 기분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단언코 말하건데, 그 노래는 제가 들어 온 어떤 노래보다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 아까...깨어있었어요"
전 잠시 그녀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나보다 하고 착각할 정도로 그 어투는 좀전의 노래와 흡사했습니다.
"네?"
"노래 마치실때...저 안자고 있었어요. 선생님 노래를 듣고나니 너무 좋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던 것 뿐이에요. "
전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그저 앞차의 수시로 점멸하는 브레이크등만 바라볼 뿐이었답니다.
"그 이후에도 잠든적 없어요"
이럴수가. 그렇다면 내 키스도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받았다는......이럴수가.
순간 전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켜 훈계받는 어린아이처럼 그저 앞만 노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마음을 들켜버렸단 사실에 전 그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윗도리 벗어 덮어 주실 때....눈물 참느라 혼 났어요..."
실제로 흘깃 스쳐 본 그녀의 눈에 지금도 습기가 고여오는 듯 했습니다.
전 꿀먹은 벙어리처럼 막막히 앉아서 앞만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속도를 낼 수 있던 도로가 서울이 가까와지자 다시 정체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시선도 앞쪽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요즘 저희 조금 힘들어요..."
"........."
"차라리 옛날처럼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때가 그리운 적도 많아요. 그땐 돈만 없었고 다 있었거든요. 그이의 사랑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니....돈을 얻는 대신 그만큼의 것들이 절 떠났어요......그런데 말이죠..지금은 다시 무르고싶어요. 돈을 포기하면 다시 얻어질까요?....요즘 생각으로는...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돈 같은건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돈을 갖고 있어서일까요?....돈을 잃고 그걸 다시찾는다면 또다시 전 돈을 원할까요?.....아뇨.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전 기쁠것 같아요..."
그녀의 말소리가 잦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흐느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마음이 답답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어디 산에라도 올라가 꽥꽥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흐느낌속에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오늘 선생님께 큰 죄를 지었어요. 실은 선생님을 이용하고 말았어요......그이가 선생님을 견제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일부러 선생님에게 연수받겠다고.....생각대로 그이는 펄쩍 뛰더군요....딴사람은 되도 그놈은 절대 안된다고....전 선생님 아니면 안된다고...부부싸움 할 정도로..."
화도 나지 않더군요. 철저히 갖고 놀았던 겁니다만,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었답니다.
저 자신 놀랄만큼... 전 차안의 티슈백에서 두서너장을 뽑아 건네 주었습니다.
받아드는 그녀의 손이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습니다. 건네주는 제 손이 담담한 만큼 그녀의 떨림은 두드러져 보였습니다만.
"전 그이가 오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거란걸 알고 있었죠...거래처사람들이란 아마 핑계일거에요...그사람...지금쯤 어디서 정신없이 퍼마시면서 질투에 불타고 있겠죠....그이로부터 전화가 왔을때...전 거짓말을 했어요...계획대로라면 선생님하고 같이 있다고 해야 하는데...차마 그럴 수 없었어요...제가 선생님에게 너무 큰 죄를 저질럿다는걸...그제서야 안거죠..."
그녀의 집이 가까워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제가 제 결혼식 때 느낀것은 모두 사실대로 말한거에요...그리고...그리고..."
그녀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전 그녀가 못하는 말이 무얼까 가만히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짐작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머리속이 멍할뿐,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는겁니다. 워낙 제가 받은 충격이 컸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거지요.
무심한 척 했지만 실은 너무 큰 충격에 미쳐 화 낼 여력조차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저 또한 화를 내보기도 전에 그녀의 집이 지척에 가까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여기서 세워 주실래요"
불과 얼마 남겨 놓지 않았는데 세우라 하더군요. 속으로 친구놈이 볼까봐 그러나보다 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전 차를 한켠으로 붙여 세웠습니다. 시동을 끌까 하다가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 간단한 조작조차 귀찮고 성가시단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쏘주 한병 사들고는 퍼 마시고 푹 자고 싶을 따름이었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는데, 그녀가 황급히 달려와서 제 팔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잠시만요"
"네?"
그녀는 절 잡고는 조수석에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전 비로서 역정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갖고 놀 게 남았나. 때를 놓친 역정이어서인지 그 울화는 격렬하게 제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견디기 힘들더군요. 자릴 박차고 나오려는데 그녀의 출발이 한발 빨랐습니다.
벌써 안전벨트까지 하고서는 차를 출발시킨 신속함에는 내가 하려는 행동을 미리 간파한 것이 분명했답니다.
정말 머리회전이 남다른 여자였습니다. 목동아파트가 그녀 집이었습니다만 그녀는 주차할 자릴 찾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미 귀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서 그런지 자린 쉽사리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몇번 돌다가 마침내 한자리가 보였습니다. 차 한대 반정도의 일렬주차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제서야 전 왜 그녀가 절 다시 태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늘 배운 일렬주차를 제게 보여주려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단번에 능숙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점수로 하면 80점 이상은 충분히 될 법 했습니다.
주차가 끝나고 가만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녀가 절 건너다 보았습니다. 어땠어요? 하고 그 눈이 묻고 있었습니다.
전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녀도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습니다.
"잘하셨어요..."하고 전 치사했죠.
그녀는 아까의 흐느끼던 얼굴과 동일한 얼굴이란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환히 웃었습니다.
젠장. ...이쁘더군요. 너무너무.... 그녀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고 저도 내렸습니다.
그녀와 전 그렌져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았습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잘하셨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하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럼..전 이만..." 하고 가려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절 잡더군요.
"잠깐만요"
"?......?"
"저어...내일부턴 연수 못받을것같아요..."
아니, 그럼 또 나를 갖고 너희 부부 사랑놀음에 이용하려 했단 말인가.
전 기가 턱하니 막혔습니다만, 내색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그런데....그 다음의 그녀의 말을 듣고선 그만 그 자리에 못박힌듯 꼼짝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선생님이 그이 친구라서이에요...정말..정말.....좋아져버릴것같아서..."
말을 끝맺지도 않은 채 그녀는 안녕히가세요 하고 인사하고는 자신의 아파트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아까 차안에서 주저하던 말이 이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전 또 어리벙벙한 모습으로 멍하니 그 뛰어가는 모습만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거기 서 있을 듯한 모습으로. 4.후일담 전 그 이후에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났답니다.
그것은 그녀가 제 친구와 이혼하고 재혼했다는 소문을 듣고 난 이후니까 아마 그날의 운전연수 후 삼년 정도가 흐른 날일겁니다.
시내 모 백화점에서 그녀를 알아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녀가 많이 살이 오른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옆에 서서 함께 쇼핑하는 낯선 남자가 얼핏 납득이 안되었던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요.
제 친구놈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하지만 곧 그녀가 재혼했다는 소문을 기억해내고는 아마 새남편일 거라 생각하자 그녀는 분명 언젠가 내 어깨에 머물렀던 <별>임을 알아볼수 있더군요. 그녀도 저를 보았습니다.
두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을 때 , 전 저도 모르게 빙긋 웃어 주었습니다.
그녀도 약간 당황하는 듯 하다가 새남편쪽이 딴곳을 보고 있음을 확인하곤 역시 환하게 웃어 주더군요.
많이 살 오른 모습이었지만 건강해보였고 밝아 보였습니다.
그녀는 다시한번 새남편을 힐깃 보고는 절 향해 양손을 주욱 뻗어 보였습니다.
전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그녀의 의도를 알고선 다시 파안대소했답니다.
그녀는 운전대를 붙잡고있는 흉내를 낸 것이지요.
그 모션이 자신이 이젠 운전에 능숙하단 뜻인지, 아니면 그날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이제 그런 것들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요.
전 문득 그녀의 노래를 다시 청하고 싶어지더군요.
따지고보면 , 제가 두번 그녀는 한번 서로에게 노래를 들려주었으니 제게 한번 더 기회가 있는거잖아요.
정말 궁금하더군요. 이번에 그녀는 무슨 노랠 들려 줄런지.
지금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선 전에 들려 준 그런 노래는 아닐듯 한데....
그녀가 손을 흔들며 인파속으로 그녀의 새남편과 사라지고 말았을 때 전 속으로 가만가만히 그녀에게 속삭여주었답니다.
"행복하세요..그리고 다신 아무것도 잃지마세요"
지금까지 제 이야길 들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그녀에게 혼잣말로 속삭였던 같은 말을 드리고 싶답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아무것도 잃지마세요.... 마칩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오후 무렵이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요란한 벨소리에 무료한 오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휘휘 젖는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졸리운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얌마. 모하냐"
"응..성재구나. 오랜만이네. 잘 지내냐?"
"잘 지내고뭐고..임마야. 나 좀 살려줘라"
"응? 무슨 일이냐?"
"요번에 마누라가 운전면허를 땃거든"
"그런데?"
친구놈 말은 요컨데 면허를 딴 마누라 도로연수를 시키다가 이혼할 뻔 했다는 겁니다.
차를 몰고 도로에 올라설 때 까지만 해도 호들갑을 떨며 자신 있다고 큰소리 치던 마누라가 도로를 타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려 심하게 책망을 했다는 겁니다. 흔히 있는 이야기죠.
"하하하 알만하다. 그런 사정이구나"
"그래 임마야. 나도 좀 상냥하게 가르켜 주고 싶은데, 막상 마누라가 헤멜때마다 내가 돌아버리는 걸 어쩌겐냐. 그러니 니가 좀 수고를 해줘라. 술 한잔 살께"
"글쎄..차라리 운전학원에 가보지 그러냐. 아무래도 거기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많이 가르키니까 잘 하지 않겠어?"
"이런 씹새. 우리 이쁜 마누라를 외간남자에게 어떻게 맡기냐. 넌 신문도 테레비도 안보냐. 그렇고 그런 일 종종 나오잖아"
"하하하...하하하하.."
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자제하기 힘들더군요. 이쁜 마누라라니...하하하 제가 아는 그 녀석 마누라, 그러니까 제겐 제수씨가 되는가요.
전혀 美하고는 관계없는 여자였기 때문이랍니다. 하기사 제 눈에 안경이란 말도, 짚신도 짝이다란 말도 있지만..
아. 그렇다고 제가 그녀를 비하하는 뜻이 있어 웃음이 터져 나온것은 아니란 말은 꼭 해야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오해가 없겠지요. 비하는 커녕, 그녀의 억척스러운 생활모습엔 절로 고개를 숙이고 마니까요.
친구놈이 가진것이라고는 불알 두쪽일 때 시집와서 벌써 10년. 그녀는 알뜰살뜰 살림하고 낮엔 보험하고 밤엔 시간제 파출부로 식당에 나가 설겆이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지금은 40평 아파트에 번듯한 상가건물까지 갖고 있으니, 그녀의 고생은 이루 형용하려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지요.
친구놈도 만만찮은 놈이지요. 처음엔 그런 마누라때문에 볶여서 못살겠다고 푸념 뿐이더니, 돈 들어오는 재미를 알아 버린 놈이 나중엔 더 극성이 되어 버리더군요.
친구들 술자리엔 전혀 콧배기 안 보이고, 관혼상제 어디에서도 녀석은 봉투 한번 내미는 법이 없었습니다.
지독하다...라며 다른 친구들이 수근거렸지만, 녀석의 귀에도 틀림없이 들렸을 그런 악담에도 녀석은 태연하기만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녀석이 찾아 왔더군요. 마누라하고 함께였습니다.
그들 부부 결혼식에 보고 제수씨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으니, 5년만인가요. 그녀는 결혼식때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답니다.
까칠한 피부에 기미 주근깨로 뒤덮힌 얼굴, 가죽과 뼈 뿐인듯한 앙상한 몸.
하지만 지금도 또렷히 기억나는 건 그녀의 강렬한 눈빛이었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일도정진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전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벌어진 일엔 경악스럽기 조차 했답니다. 전 더 큰 충격적인 감동에 휩싸이고 말았던 겁니다.
아직 어수선한 집안으로 극구 거절하던 그들을 억지로 잡아 끌듯이 잡아 들여와 차 한잔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녀가 분명 어디 시장판에서 싸구려로 샀음직한 낡아빠진 코트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새하얀 봉투를 꺼내선 제 와이프에게 떠다 맡기고는 황급히 사라진 것입니다.
친구놈은 그런 마누라 뒤를 따라 가다가 날 잠시 뒤돌아보더니 다시 그녀 뒤를 쫓아 가버리고, 망연자실 남겨진 저희가 그 봉투를 열었을 땐 십만원이란 돈이 담겨져 있던 겁니다.
메모 한장과 함께. 결혼 축하한다. 어쩌구저쩌구. 네가 보여준 20년 동안의 우정에 감사한다. 어쩌구저쩌구.
다른 놈들에겐 이야기 하지마라. 누군 주고 누군 못 주는 내 심정도 편친 않구나.....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전후 사정이 길어졌읍니다만, 몇 번의 사양 끝에 전 녀석의 부탁을 승낙했습니다. 아참. 제소개가 늦었군요.
전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IMF로 인한 실직자 신세였답니다. 어쩔 수 없는 무능한 자신만을 원망하며 무의도식, 퇴직금만 까먹을 때였죠.
그러니 시간도 철철 넘치는 놈이 거절하기 힘들었기도 했고, 집구석에서 마누라의 눈총 받기도 불편했으니 오랜만의 외출을 결심한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죠.
만나기로 한 전철역 환승주차장에 어슬렁거리며 약속보다 좀 늦게 나갔답니다. 그런데 녀석의 차가 안보이더군요.
덜덜거리는 르망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차가 안보여서 아직 안왔나 싶었죠.
그런데 제가 기다릴 요량으로 나무그늘을 찾고 있는데 저 쪽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그랜져에서 녀석이 나오더니 팔을 치켜드는 거에요.
"야. 여기다"
"어라?"
전 그렌져쪽으로 걸어 갔습니다. 하긴 현재 녀석의 재력으로 볼 때 그렌져쯤이야 전혀 무리가 아닐것입니다.
저도 녀석과 이십년지기라지만 , 녀석이 그리 재테크에 능력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답니다.
언젠가 녀석이 술 마시면서 들려준 이야기로는 <한단위>가 어렵고 그걸 넘어서면 나머지는 그냥 들어온다는 거였습니다.
말하자면, <백만원>을 벌면 <999만원>까지는 일방통행이고 ,<천만원>을 채우면 <9999만원>까진.....그리고 <억>인데...<억>에서부터는 <단위>가 <일억, 이억, 삼억....>으로 바뀌는 걸 빼면 원리는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저야 한달마다 나오는 월급만으로 살아오던 놈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만...
그렌져는 첫 눈에 보기에도 그야말로 티끌조차 없는 센삥이었읍니다. 파리가 낙상한다더니, 그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와아. 니 차냐? 하하. 근사하다"
전 진심으로 기뻣습니다. (물론 100%냐고 물으신다면....^^)
"이제 너도 쓰고 살기로 한 모양이구나. 그래 잘 생각했다. 젊은 놈이 즐기면서도 살아야지"
기쁘기도 부럽기도 한 마음에 좀 수선을 피웠는데도 녀석은 쓴 웃음만 지을 쁜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백수인 내게 좀 미안하다 싶었겠죠.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 얼굴빛으로 들을수 있는 사이란 건 정말 편합니다만, 때론 불편할 때도 있죠.
지금처럼..그래서 좀 수다를 떨었답니다. 얼마냐느니, 잘나가냐느니..녀석은 간단한 대답만 하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차 안을 들여다보며 빨리나오라고 재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썬팅이 짙어서 안이 들여다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녀석의 마누라, 제수씨가 타고 있겠죠. 역시 그렇더군요.
부끄러워서...어쩌구 하면서 좀처럼 나오려 하질 않더군요.
"이런...선생님 오셨는데 무슨 부끄럼이야. 빨리 안나와" 녀석의 윽박지름이 이어지고, 마침내 탈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다리가 먼저 땅을 딛더군요.
빨간 슈즈가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첫눈에 보기에도 고급품이란걸 알 수 있을만큼 매끄럽게 여름햇살에 반짝이더군요.
얼마나 고가이고 고급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장바닥제품이 아닌건 확실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제수씨가 나오는데.....
앗! 전 내심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던 친구마누라가 아니었습니다. 전혀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 녀석이 딴 여자를 데리고 나온 줄 알고 적잖이 당황했을 정도였으니 그녀의 변신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는 제 이야길 들으시는 당신에게 맡깁니다.
제가 해드릴 설명이라면 먼저 머리는 숱 많은 생머리로 목덜미에서 묶었고, 옷은 검은색 심플한 끈원피스였답니다.
예전에 깡마르고 눈빛만 형형하던 몸매는 적당한 영양상태 덕분인지 매우 보기좋을 만큼 살이 붙어 있었고 피부는 썬탠을 했는 모양으로 콜라빛으로 시원해 보였습니다.
짙은 썬글라스 때문에 그녀의 눈빛을 보지 못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틀림없이 그녀였습니다.
아무튼 녀석이 우리 이쁜 마누라 어쩌고 한 것을 웃었던 내 자신이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폐를 끼칠것 같아요. 어쩌죠?"
말투조차 완전히 딴 사람이었습니다. 제 집에 친구와 둘이서 왔을 때는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별다른 말도 하지않고 묻는 말에나 마지못해 대답하던 여자였는데....
"아네....별말씀을요..(우물쭈물..)"
"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디 가서 시원한 거라도 한잔 마시자. 지낸 이야기도 좀 하고말야"
친구놈이 그렇게 곤혹스러운 절 구해주더군요.
"어때? 오늘 인천에나 갈까? 마침 내가 거기 일도 있고말야 연수하기에 좋은 곳도 있다구. 나 일볼 때 연수하고 올라올 때 또 셋이 같이 오면 되겠어"
저야 시간이라면 써도 써도 남아도는 형편이니 별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 가게 됐죠.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보니 어느새 경인고속도로가 끝나더군요.
월미도에서 회 한사라를 먹고는 택지조성중이던 연수동으로 갔습니다. 연수동이라니. 그래서 아직 그 이름을 못 잊나봅니다.
도로연수할 곳 , 연수동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모양으로 그 기초공사 때문인지 여기저기 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제법 쌓아 올린 건물들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하면 될꺼야. 차라고 해야 뜸하게 트럭들만 지나다니거든"
"응.."
그러고보니 신도시라서 그런지 도로도 잘 정돈되어 있었고,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어 도로연수엔 적격처럼 보였습니다.
"아참! 너 생명보험 들어놨냐? 안들었으면 안전벨트 꼭 해라. 에어빽이 운전석만 터진다. 하하하"
"이이는...호호"
눈을 곱게 흘기는 마누라를 등 두드려 격려해주곤 녀석은 성큼성큼 걸어가 어느 공사장으로 들어가더군요.
둘이 남자 좀 어색하기도 하고 해서 전 맡겨진 임무에 곧장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네"
둘이는 차를 탔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빤히 쳐다보더군요. 무얼 어떻게 해야하냐는 의미겠지요.
그런데 전 그때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겁니다. 감히 그녀와 눈을 맞출 용기가 안나서 헛기침 한번 하고는 말을 꺼냈죠.
"어느정도 하셨어요 연수는?"
"연수랄거 까지도 없어요. 한 백미터 가면서 내내 저이 잔소리만 듣느라고 아무 기억도 안나요"
"하하.."
"얼마나 잔소릴 해대는지 .. 결국 대판 싸우고선 운전대 뺏기고 말았어요"
"하하...저도 잔소리 할 지도 모르는데.."
"호호..인규씨가 설마 저이처럼 막말이야 하겠어요"
"막말...을 하던가요? 성재가요?"
"말도 마세요. 얼마나 난리던지..욕은 기본이에요"
"그래서 제 식구는 못가르키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정말 그런가봐요. 처음이었어요. 저이 그러는건"
"자.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보죠"
전 달리 그런 문제에 대해 말 할만한 것도 없고 해서 말을 돌렸습니다
"네. 잘 가르켜주세요"
썬글라스 너머로 절 보며 그녀가 웃음 띤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도로연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전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돌을 집어서 도로 가장자리에 눈대중으로 사각형의 줄을 그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일렬주차연습을 위한 작업이었지요. 지금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운전의 기본이자 기초는 주차라고 전 믿습니다.
혹 이 이야기를 듣고 계신 분들 중에는 저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제 짧은 소견으론 차를 출발하는 자리가 바로 기본이란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여기서..계속 왔다갔다 해야 하는건가요?"
그녀가 뾰루퉁한 얼굴로 이렇게 물어 왔을때 , 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답니다.
단호하게!! 여자는 공간인지관념이 부족하다더니, 그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스무번 쯤 반복하고 나면 어느정도 감을 잡을만한데, 그녀는 당장 시작한 것처럼 수십번을 되풀이해도 마찬가지로 헤메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별로 이 작업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한번 떠 보았죠 "재미없나요?" 그녀는 날 얼핏 보더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곤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하고 묻더군요.
전 물론!! 하고 응답했죠. 그녀말은 ,자신은 도로를 달리고싶지 네모진 칸 안에 자신을 우겨넣고 싶진 않다고 말하더군요.
전 참을성 깊게 그녀가 할 말을 다 하도록 기다려 주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푸념이 끝났을 때 제 소견을 들려 주었습니다.
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가 떠나고 출발하는 그 위치다. 그것이 주차다. 도로를 달린다는것은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고나서 차를 못세운다면 그것 만큼 곤란한것도 없는 것이다. 달리는 것은 누구라도 한다.
하지만 처음에 주차를 배워 놓는다면 그 주행은 후환을 없앤 편안한 것이 분명하다 라고요.
제가 워낙 진지하게 설명해서일까요. 그녀는 썬글라스 너머로 보이지않는 눈으로 쭉 저를 응시하는 듯 보이더군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번 더 해요 하고 말해주더군요. 이 기회다 싶어 전 달갑지 않은 소릴 한마디 더 했죠.
썬글라스는 자외선을 막아주며 눈의 피로를 덜어 주는 중요한 소품이지만, 초보로서 아직 주위를 살피는 능력도 안되면서 스스로 빛을 차단하다는것은 아직 배우는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그렇게 힐 높은 구두는 유사시에 브레이크를 밟기에 적당치 못하다.
운동화를 하나 준비해서 운전할 때는 운동화를 신는 편이 좋겠다...... 한참 듣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하더군요
"정말 제 남편 친구 맞네요. 똑같은 잔소리....호호호"
그라고서는 썬글라스를 벗어 버렸답니다. 그리고는 쑥스럽게 웃고 있는 저를 향해 얼굴을 돌렸습니다. 아....그 눈... 그 눈빛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더군요. 아까 말씀드린듯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선 그걸 향해 줄달음쳐갈 때 옹고집이 번뜩이는... 그 눈빛이 다시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전 이 여자가 언젠가 때 절은 옷과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제 결혼축의금을 던져놓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던 내 친구의 마누라란 걸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야 이야기지만 그때까지도 혹시?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저흰 다시 차에 올라 탔습니다. 그녀는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부르릉~~ 차 엔진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달아 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답니다.
마치 전쟁터에 투입되기 전날의 병사의 코 고는 소리처럼,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희극적이기도 하죠.
그녀는 기어를 넣는다고 기어쪽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내려다보시지 않아도 계기판에 나오잖아요. 시선은 앞을 주로 해 주세요"
"네.."
그녀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다소곳하게 대답했는데, 그게 제 눈에는 왜 이리 이뻐보이는지요.
그녀는 R로 기어를 넣고 핸들을 돌리며 룸미러와 빽미러를 번갈아 힐끗거리며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에어콘을 틀어 놓았음에도 그녀는 긴장했는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있었읍니다.
차는 꾸물거리며 주춤주춤 뒤로 향했습니다만, 역시 별로 나아진 것은 없더군요. 삐뚤삐뚤한 움직임.
아직도 차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으로 후진 일렬주차는 아직 무리였던 걸까요. 그녀도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이제 첫날이니까 당연한거랍니다. 점점 더 익숙해지실거에요."
"정말 그럴까요?..전 왠지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풀 죽은 모습의 그녀가 왠지 안쓰럽고 측은해 보여서 전 무언가 용기를 주고 싶어 졌습니다.
자신감을 되찾아 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느라 전 그녀의 말을 얼핏 놓치고 말았는데, "선생님? 냉커피 한잔 하러가자구요. 무슨 생각을 그리.."
"아...네. 좋죠. 저도 목이 컬컬하던 참이니...가죠"
그리고는,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자신감회복을 위한 궁리.
"제수씨. 아까 우리가 차 마신 곳 있죠? 거기로 가요"
"월미도요? 좋아요" 하면서 일어나려는 그녀를 전 가만히 제지 했답니다. 그리고 말했죠.
"제수씨가 운전해서 가는거에요"
"네? 제가요? 어머 안돼요. 전 못해요. 자신없어요"
호들갑을 떨면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전 말 없이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여주었죠.
"저...정말 자신 없어요...."
"걱정마세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오히려 주차가 어렵지. 그냥 앞으로만 가면 되요. 내가 잘 살펴줄테니 미러 보는것 염두에 두고 브레이크와 악셀레이터만 확실히 밟아 주세요"
"하지만.."
"그렇게 겁이 많으신 분이셨나요? 제 기억하고는 다른데요.."
전 일부러 그녀의 약을 올렸습니다. 자존심 강한 여자란 걸 알고 있었답니다. 과연 효과는 금방 나타나더군요.
이를 앙다물며 저를 흘깃 보더니 운전대를 꼬옥 잡아 쥐더군요.
"좋아요. 하지만 사고나면 선생님이 책임지셔야 해요"
"후후. 책임지죠. 갑시다"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키를 돌렸습니다. 부르르릉~ 차가 가벼운 진동을 했어요.
제가 보기엔 그녀나 차나 둘 다 긴장상태인 듯 보였습니다. 저도 슬슬 긴장이 되더군요.
사고나면 내 책임이라는데 방관자적 입장에서 지켜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더군요.
기어를 D로 넣더니 브레이크를 서서히 놓는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톱!!"
"어멋!"
끼이잌!! 제 돌연한 정지명령에 그녀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차가 출렁 할 정도로 급히 멈추어 섰습니다.
"왜그래요?"
약간은 신경질적인 어투로 그녀가 항의반 의아반으로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죠.
"아직 출발하기 위한 준비가 안됐어요"
"무슨...?"
"먼저 안전벨트"
"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벨트를 찾아내선 끼우려고 하는데, 긴장 탓인지 제대로 그 구멍에 맞추질 못하더군요.
전 속으로 아이구 이 여자가 엄청 쫄았구나, 하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운전하라 그랬나 하는 후회도 밀려오고.
하지만 이대로 그녀에게서 운전대를 뺏는다면 그녀가 완전히 자신감을 잃을 것이 뻔했습니다. 던져진 돌팔매였습니다.
어디에 떨어질런지 몰라도 일단 날아갈 수 밖엔... 그녀는 아직 벨트를 끼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마에 핏줄이 불끈거리고 땀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보다못해 제가 거들었습니다.
제가 끼우려 했는데도 안들어가더군요. 줄을 짧게 뺀 때문이었습니다. 못 미치는 걸 어떻게든 끼우려니.
전 줄을 잡아당기기 위해 팔을 뻗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딸려가고 마치 제가 그녀를 안는것처럼 몸이 겹쳐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제 후각으로 확 끼치는 냄새. 화장품과 땀냄새가 믹서된 묘한 자극이 제 후각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게다가 제 왼편가슴과 그녀의 오른쪽 가슴이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완전히 밀착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가는 숨결이 제 턱을 간지럽혔습니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아니 착각일 것입니다.
그녀의 가는 신음소릴 들었다고 느낀건... 탈칵! 하고 벨트가 채워지고 전 제위치로 돌아 왔습니다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마른침이 자꾸만 삼켜져서 그걸 들킬까봐 제대로 말도 못했답니다.
벨트를 맸기 때문에 그녀의 가슴은 둘로 확실히 구분되어져 더더욱 도드라져 보이는것도 자꾸 제 시선을 땡겼습니다.
내가 미쳤나봐...하며 죄책감같은것이 불끈 치밀더군요. 친구 마누라를 여자로 느끼다니.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제 쥬니어가 점점 고개를 드는거에요. 난처하기 그지없더군요. 그래서 얼른 말했죠.
"출발하죠"
스르르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한적한 도로를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미러 보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정신없었죠. 속도는 20키로도 안나오더군요.
"악셀을 밟으세요. 천천히..."
우우웅...하며 속도가 빨라지더니 다시 발을 떼었는지 속도가 또 떨어지더군요.
운전대를 움켜 쥔 채 몸이 완전히 앞으로 쏠려서 차유리에 코를 마주할 듯이 바짝 다가서 있는 모습으로 그녀는 앞만 뚫어져라 노려보았습니다. 겁 먹은게 분명했습니다.
"뒤에 차 오나요?"
"네?..몰라요. 잠시만요" 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뒤로 돌리더군요. 그러더니 안온다며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차는 비록 서행하고 있었지만 전방주시태만이라니 .
"차 세우세요"
좀 전보다는 제법 여유있게 섰습니다.
"제수씨. 우선 자세가 나빠요. 운전할 때의 자세는 히프를 뒤로 완전히 붙이고 가슴을 펴세요. 운전대는 10시10분으로 잡고..."
전 하나하나 그녀의 자세를 교정해주었습니다. 그러자니 아무래도 그녀의 옆모습을 보아야 했는데 이게 또 보통 난처하질 않더군요.
짧은 원피스는 허벅지가 훤히 보이고 악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다보니 그럴때마다 그 사이가 아슬아슬하게 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팬티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어둠으로 처리되는 그 부근의 실루엣이 안타까움을 더 한 갈증으로 느껴지는 경험, 여러분들도 있으시죠? 홀라당 벗어제친 것보다는 따오기(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않는...)가 더더욱 감질나는 괴로움으로 우리 남성들을 몰고 가는거 아닌가요.
그런데다가 땀이 송글송글 맺힌 그녀의 목덜미 , 땀에 젖은 옷과 그 옷을 밀어 올리듯 봉긋한 두개의 밥사발같은 가슴의 또렷한 윤곽, 가쁜 숨소리.....고문이 따로 없었습니다. 제 쥬니어는 이미 통제불능.
제 의지가 미치지 않는 놈의 융기를 혹시 그녀가 볼까봐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넣어 꼭 움켜쥐고 있어야 했습니다.
전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너저리너저리 그녀에게 가르쳤고, 그녀는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 듣는체를 했습니다.
다시 차는 출발했고, 이번에는 그녀는 내 지시대로 잘 해주더군요. 자세는 단정하고 시야처리도 원만했습니다.
속도는 50을 넘지 못해서 뒷차의 하이빔과 클렉션소리를 수시로 받아들어야 했지만, 제가 요구한 것들이 성실히 받아들여진다는 기쁨에 전 매우 흐뭇하고 뿌듯해졌답니다.
무엇이 그녀를 갑자기 자신감있게 바꾼건지 전 의아했지만 어쨋거나 가르키는 선생으로서 배운 학생이 잘해주는 것만큼의 보람이 어디 있을까요. 월미도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친구놈이 몰고 올 때는 금방 와서인지 지척거리인 줄 알았습니다만, 제법 멀더군요.
아무리 그녀가 잘해주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그 거리는 무리다 싶던 차에 줄지어선 회집과 여관들이 운집한 곳이 보여서 거기 한곳 커피숍에 차를 세웠습니다. 거기가 송도였습니다.
주차장은 텅비어 있어서 그녀는 별 어려움 없이 무난히 주차를 하더군요. 주차 후 키를 뽑고 나서 절 바라보던 그녀.
의기양양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그 눈길에 왠일인지 전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제 마음이 검어서 그런건지 그녀의 시선엔 무언가 도발적인 기운이 서려 있는 듯 보인 까닭입니다. 제 착각이겠죠?
"선생님. 어때요? 잘했죠?"
"네. 아주 잘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했어요....선생님! 저 열심히 배울께요. 많이 가르켜주세요 네?"
"물론입니다. 잘하시니까 저도 아주 기분이 좋은걸요"
차에서 내려 갑자기 그녀가 내 곁으로 와서 팔짱을 꼈습니다.
느닷없는 행동에 전 당황했읍니다만, 그녀의 뭉클한 젖가슴의 감촉이 제 팔에 확실히 느껴졌을 때의 그 설레임은 지금 이 순간도 또렸하게 남아 있음을 고백해야겠군요.
머리속의 피가 몽땅 쥬니어로 몰려간 때문인지 어찔, 하며 현기증까지 날 정도였답니다.
오랜 시간을 충혈된 상태로 고개들고 있던 쥬니어는 이미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구요.
커피숍에서 누구라도 저희 두사람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연인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녀는 아예 제 옆자리에 앉아서 제 이야기 하나 하나에 까르르르 여고생같은 웃음으로 답해 주었습니다.
비록 화제는 운전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다시 고백컨데 그때 제 옆에 앉아있던 그녀가 제 친구의 마누라란 사실을 전 잊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녀가 채근했습니다. 제가 겪었던 운전중에 일어난 에피소드 한가지를 들려주고 있었거든요.
덤프트럭 앞에서 끼어들기를 했더니 이 자식이 미친듯이 제 차를 받아버릴 듯 바짝 붙여 계속 따라온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되겠더군요. 제가 브레이크를 조금만 밟아도 바로 추돌해 버릴 것처럼 제 엉덩이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으니까요"
"어머어머. 그래서요?"
"차를 세웠죠. 그랬더니 자기도 세우더군요. 그러더니 문이 열리고 내리는 기척이 들리더군요. 오늘 한판 하는구나,하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죠. 저도 내렸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요. 그런데요오~"
"걸어오는 녀석이 글쎄 키가 한 160이나 될까말까한 놈인겁니다. 상상해보세요. 그 큰 덤프트럭에서 왠 난장이똥자루만한 놈이 똥폼을 턱 잡고 배바지를 추켜올리며 씩씩거리며 걸어오는걸.."
"호호호호...호호호...게다가 선생님이 이렇게 한 덩치하시는 분이니...호호호호"
"하하하 걸어오다가 절 보더니 멈칫 하더군요. 녀석도 착각을 한거겠죠. 쪼그마한 프라이드에서 185짜리가 기어나오리라고는 미쳐 생각도 못하고. 하하하하"
"호호호 호호호"
커피숍에 있던 몇명인가가 모두 돌아볼 정도로 저희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녀석이 갑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덤프에 올라타고는 황급히 가버리더군요. 다신 차크기로 밀어붙이는 짓 안할 겁니다 하하하"
"그러고보니 선생님이나 성재씨나 모두 키크고 덩치가 크네요"
"유유상종인가봅니다 하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박에는 땅거미가 스물스물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쉬웠죠.
이대로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고픈게 제 솔직한 마음이었답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던것 같습니다.
제가 그만 가자고 했을때 10분만 5분만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밖은 어둠으로 물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연수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몇번이나 친구놈과의 통화을 시도했지만 , 녀석의 핸드폰이 절명했는지 연락이 닿지를 않자 비로소 그녀도 조금 초조한 안색을 보이더군요.
운전을 하는 저로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수동에 도착해서 친구놈과 헤어졌던 곳에서 차를 멈춘 채 녀석과 연락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죠.
좀전에 그리 척척 호흡 맞추어가며 이야기하던 그녀와 저였지만, 그땐 서로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짙어져 가는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따름이었답니다.
어색한 침묵이 가라앉은 차안이 답답하더군요.
서울로 가 버릴 수도,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난처함에 놓여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라디오라도 들으실래요...?"
조수석에서 손톱을 물고 있는 그녀가 딱해 보여 한마디 건네 보았습니다.
"선생님..... "
"네..?"
"기억나세요?...제가 결혼식장으로 갈 때 저 태워다 주신거요.."
아. 그렇군요. 제가 미쳐 말씀 못드린 게 있는데,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생각났거든요.
친구놈이 거래처로 가 버리고 둘만이 차에 남게 되자 이 상황이 언젠가 한번 더 있었다는 걸 기억해낸거죠.
녀석의 결혼식날, 전 신부댁으로 가서 신부인 그녀를 태우고 식장으로 갔던 일입니다.
그런데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길 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안 남았답니다. 아마 별 이야긴 안했기 때문일 겁니다.
인상적인 이야길 나누었다면 단박에 기억 못했을 리 없죠.
"네. 기억납니다. 참 이쁘셨죠 그때..후후"
거짓말입니다. 그때 교회에서 결혼을 하느라 신부인 그녀는 신부화장까지 마치고 웨딩드레스를 질질 끌며 제 차에 올랐는데, 긴장으로 잔뜩 굳어진 얼굴에 깡마른 광대뼈만 눈에 가득 들어오더군요.
게다가 잠을 설친 탓으로 화장이 안먹은건지, 아니면 동네미용실 솜씨여서 그런건지 화장마져 붕 떠버려서 그리 감탄할 만큼 이쁘진 않았답니다.
"호호...거짓말마세요. 저도 그때 사진 보면 깜짝 놀라는걸요..호호"
"아닙니다. 정말 이쁘셨어요"
"그럼....그때가 이뻐요? 지금이 이뻐요?"
시트에 파묻힌 채 어둠에 쌓인 전방만 바라보며 사근사근 이야기하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물어왔을 때 전 흠칫! 놀랄 정도로 그녀의 태도는 도전적이었습니다.
끈원피스에 채 가려지지 못한 가슴갈라진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마 그녀의 눈에는 제 동공확대되는게 보였을겁니다.
"무,,물론 지금이 이쁘죠....하하..."
"지금이 더 이뻐요? 정말요? 왜 지금이 더 이쁘죠?"
질문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고 전 자꾸만 말이 더듬어졌습니다.
지금이 더 이쁜 이유야 뻔했죠. 지금 그녀는 여자로 보이니까요.
"그, 글쎄요..이유랄거까진 잘 모르지만...아무튼 지금이 더 이뻐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다시 시트에 몸을 묻더군요.
"그때 저에게 이야기해 주신 거 , 기억나요?"
"언제요?"
"절 식장으로 태워다 주실 때.."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는군요. 아. 한가지 더 기억나는군요.
길이 막혀서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초조했던 기억.
"그때 성재씨 자랑 해 주시고, 길막혀서 제가 초조해 할까봐 우스운 이야기도 해 주시고....노래도 불러주셨잖아요"
그랬군요. 이제 기억납니다. 그랬었죠. 이제야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조금 당혹스럽더군요.
제게는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한 채 잊혀져 버렸던 일이 그녀에겐 또렷한 모습으로 추억되어지고 있었다니.
"그때 불러주신 노래가 초야란 노래였죠?"
"네. 산울림의..."
"그 노래 들으면서 전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사실 , 그때 초조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호호..지난일이지만 다시 생각하니 진땀이 또 나오네요 호호."
그녀는 정말 진땀이라도 난다는 듯이 손바닥을 펴선 호오호오 불기까지 하더군요.
"하하. 그런 기억은 잊어버리세요"
"아뇨!"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곤난한 지경에 빠진 절 위해 노래까지 불러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물론 아직까지도요..."
전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만큼 난처했습니다. 날 빤히 응시하는 그녀와 눈을 맞추자니 오늘 사고 칠 것 같고, 앞만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친구놈이 나타나 야 이 새끼야. 내 마누라랑 무슨 수작이야 하며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도 싶고.
"저..선생님" 하고 불러놓고는 무엇이 우스운지 입을 가리며 웃더군요.
"선생님선생님 하니까 제가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선생님이 자꾸 생각나요. 그러고보니 두분, 공통점이 있네. 자상하고 다정하고....호호.."
"네...그럼 그냥 이름 부르세요"
"아뇨. 싫어요. 선생님이라고 부를래요. 그게 좋아요"
"...."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라뇨...말하세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다면야.."
"물론 들어 주실수 있어요. 그리고 꼭 들어 주셔야 하구요"
꼴깍. 전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상황묘사가 얼마나 근사치에 접근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그녀가 우리, 카섹스해요 지금 당장! 하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답니다.
야릇한 열기가 차안을 가득 메웠고, 두사람의 들 뜬 호흡에 차 유리는 뿌옇게 흐려져 있었습니다.
제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제 몸의 일부분이 쿠데타라도 일으키려는 듯 속속 병력을 저 몰래 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부탁이란...."
"네..."
"그때 불렀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 달라는거에요"
이런. 최소한 절 한번만이라도 안아주세요 정도는 나올 줄 알았더니. 온몸에 기운이 주욱 빠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왠지 희롱당한 기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김칫국부터 생각한 건 저 자신이죠.
게다가 그녀는 제가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친구마누라이고요. 그런 사람에게 흑심을 품은 제 자신을 전 책망했습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구제불능이란 말이야 어쩌구 하며 반성을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하하. 저 음치란거 잘 아시면서요. 가사도 다 잊었고요"
"아뇨. 그때 들려주신 노래는 제가 들은 어떤 노래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어요..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선생님은 부끄럼을 무릅쓰고 절 위해 용기를 내셨던 것일거에요. 다시한번 용기를 내 주시겠어요?"
"그 노래 불러본 지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자신없어요 후후"
"모르면 모르는대로 아는데까지만이라도..."
아무래도 쉽게 단념할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에게 연락 올 때까지 킬링타임으로 절 골려주려는 의도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그녀에겐 진실성이 있었습니다.
제가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걸 꺼리는게 사실이지만, 그녀의 간절함에는 거절하기 힘든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전 잠시 눈을 감고 초야란 노래가사를 상기하려 애썼습니다.
밤이 되자 주위엔 낮에 가끔 다니던 트럭은 커녕 자전거 한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풀벌레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절 응시하면서 말을 삼간채 제 노래가 나오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닷바람 차갑지않아 달처럼 어여쁜 얼굴..."
나즈막히 전 읊조리듯 노래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제 노래소리에 눈을 감고는 양손을 모으고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사위는 고즈녁한데 제 음정박자 무시한 노래가 한 여름날밤에 언발란스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꿈결처럼 고운 이 밤에 사랑해 사랑해 밤하늘 무지개 피네...."
전 꿋꿋히 2절까지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제 노래를 듣고 있었답니다.
마침내 제 부끄러운 노래가 끝났을 때 전 휴우, 한숨을 몰아쉬고는 앞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나오질 않는겁니다. 아직 이어지는거로 아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 끝났어요...으이구 챙피해라...하하 하며 막을 내렸음을 알려도 역시 무응답.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더니.....자고 있는 겁니다.
이런 태평한....하하...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녀가 새근새근 가는 숨을 규칙적으로 쉬면서 꿈나라로 가 버린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전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도테의 별이란 단편을 떠 올렸습니다.
저 하늘의 별 하나가 지친 몸을 내 어깨에서 쉬고있다..라며 맺음하던 양치기소년의 이야기.
전 정말 그 양치기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어 잠든 그녀의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싫증내지 않고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전 어느새 그녀의 입술에 가만 입 맞추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절대 정액냄새 비릿한 육욕에서의 행동은 아니었답니다.
그건 굳이 표현하자면 그녀에게 주는 꽃한송이같은 키스였답니다. 여러분들이 믿거나말거나. 입술은 촉촉했습니다.
전 제가 마치 장미꽃잎에게 입맞춘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로 그녀의 입술은 나른하고 촉촉했답니다.
여름이라해도 아직 봄날 꽃샘바람이 밤엔 패잔병들처럼 출몰하던 때라 비록 차안이라 해도 그녀가 좀 추울 듯 생각되어지더군요.
전 입고있던 양복 상의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으음 하면서 뒤척이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저도 잠이 들어버린 모양입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핸드폰 벨소리에 저는 잠을 깼습니다.
전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고 잘 만큼 잠귀가 어두운 편인데도 단 한번 울린 벨소리에 잠을 깬 것을 보면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여보세요"
잠기운 하나 없는 명료한 목소리로 그녀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단 한번 벨소리에 받은 것을 보면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나 봅니다.
어라. 그러고보니 제가 덮어 준 양복상의가 고스란히 제게 덮혀져 있는게 아닙니까.
진작부터 그녀는 깨어 있었나 봅니다.
"네네..저에요. 당신 어디에요 지금.....네네....아뇨 서울이에요....네..알았어요...네..그럼 집으로 갈께요...네"
"성재인가요?"
"네"
"어디래요?"
"거래처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술 한다나봐요"
그녀는 딴사람 이야길 하듯이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인천에서요? 아니면 서울에서...?"
"인천이라는데 제가 서울이라니까 택시타고 온다고 하는군요"
"네...서울로 올라가야겠군요... 아까 낮에 처음 만날 때 부터 느낀 것이었습니다만, 어쩐지 그들 부부는 사이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왠지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듯 하더니 지금 그녀 태도로 보아 그 느낌이 점점 굳어지더군요.
그런데 여기 인천인데...왜 서울이라 하였을까. 잠시 생각해보니 그녀 생각을 헤아릴 듯도 하였습니다.
아직 인천이라 하면 여러 설명을 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을테고, 친구놈이 의처증끼가 발동할런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아마 편하게 생각키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이제와서 말입니다만,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녀석이 바람이 났다는 일설이 있었습니다.
무리는 아니지요. 녀석이 결혼하고나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모진 고생을 했는지는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돈도 모이고 여유가 생기자 눈이 돌아가기 시작한거겠죠.
저 역시 그다지 건전한 놈이라고는 할 수 없는 처지에 녀석을 비난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녀석이 의처증끼가 다분하단 겁니다. 아무래도 그런 건 선천적인가 봅니다.
어릴때나 총각 때 ,같이 여자도 만나고 하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 일쑤더군요. 혹시 둘이 눈 맞지 않을까하는....
저에 대해서 녀석은 라이벌의식이 뿌리 깊었습니다. 그점에 대해선 저도 별로 자유롭진 못하긴 합니다만.
특히 제가 여자들에게 자신보다 더 어필하는 경우가 많아서 상당한 컴플렉스로 받아들여 진 것을 언젠가 제게 술자리에서 고백해준 적도 있었답니다.
그런놈이 왜 절 자신의 마누라 운전강습을 맡겼을까. 아마도 그녀가 강력히 주장했을 것이란 추측을 했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들어맞더군요.
다른 사람은 다 되도 그놈만은 안된다는 녀석과 부부싸움까지 할 정도였더군요.
어쨋거나 지금 이 시간까지 타지에 저와 함께란 걸 말한다면 녀석이 길길이 날뛰진 않는다하더라도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많을 것임은 명약관화했기에 그녀의 거짓말은 우리 모두를 편하게 해 주는 선의의 거짓말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서울로 차를 몰았습니다. 물론 제가 운전을 하고 그녀는 조수석에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저리 골똘히 하나 할 정도로 그녀는 말이 없더군요.
꽤 늦은 시간인데도 편도2차선의 경인고속도로는 속력을 내지 못할 만큼 제법 많은 차들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요금 내는곳에 다다르자 거의 체증이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녀가 핸드빽을 뒤적이더니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듯 보였습니다.
"제게 있어요. 그냥 계세요" 하고 만류했는데도 그녀는 기어이 천원을 건네주더군요.
전 조금 기분이 상했습니다. 자격지심인 줄 알면서도 내가 직업도 없다고 이러나 ,하는 옹졸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까....."
"네?"
"아까 노래 잘 들었어요. 부탁 들어 주셔서 고마워요"
전 속으로 흥! 하고 비웃었죠. 디비 쳐 잔 주제에.. 전 그녀에게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습니다.
"고맙다고 말만 하시면 뭐해요. 답례를 하셔야죠"
"답례?"
갸우뚱하며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를 다시 한번 일별하더군요.
"비싼 노래 해드렸으니 노래로 답해주시길 바랍니다"
전 의도적으로 사무적인 어투로 이야기했답니다.
그녀는 잠시 저를 빤히 바라보더니 내 저의를 살피려는듯 말 없이 가만히 있더군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아요. "
너무 대답이 쉽게 나와서 오히려 제가 당황해 할 정도로 그녀의 대답은 선선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노래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위는 침묵해버렸습니다.
저도 역시.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가네 아홉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네 가네 가네 갑순이 갑순이 울면서 가네 소꼽동무 새색시가 사랑일줄이야" 고운 노래였습니다.
애조 띤 가락이 처량하게 때론 애절하게 구비치고 있었습니다. 엔진소리마져 숨을 죽이고 그녀의 노래에 취한 듯 했습니다.
제 가슴에도 그녀의 노래에 실려 무언가 희미한 슬픔같은 정체모를 기운이 전염되어서 답답해졌습니다.
조금전의 제 옹졸함은 봄날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전 아늑한 기분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단언코 말하건데, 그 노래는 제가 들어 온 어떤 노래보다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 아까...깨어있었어요"
전 잠시 그녀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나보다 하고 착각할 정도로 그 어투는 좀전의 노래와 흡사했습니다.
"네?"
"노래 마치실때...저 안자고 있었어요. 선생님 노래를 듣고나니 너무 좋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던 것 뿐이에요. "
전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그저 앞차의 수시로 점멸하는 브레이크등만 바라볼 뿐이었답니다.
"그 이후에도 잠든적 없어요"
이럴수가. 그렇다면 내 키스도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받았다는......이럴수가.
순간 전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켜 훈계받는 어린아이처럼 그저 앞만 노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마음을 들켜버렸단 사실에 전 그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윗도리 벗어 덮어 주실 때....눈물 참느라 혼 났어요..."
실제로 흘깃 스쳐 본 그녀의 눈에 지금도 습기가 고여오는 듯 했습니다.
전 꿀먹은 벙어리처럼 막막히 앉아서 앞만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속도를 낼 수 있던 도로가 서울이 가까와지자 다시 정체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시선도 앞쪽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요즘 저희 조금 힘들어요..."
"........."
"차라리 옛날처럼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때가 그리운 적도 많아요. 그땐 돈만 없었고 다 있었거든요. 그이의 사랑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니....돈을 얻는 대신 그만큼의 것들이 절 떠났어요......그런데 말이죠..지금은 다시 무르고싶어요. 돈을 포기하면 다시 얻어질까요?....요즘 생각으로는...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돈 같은건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돈을 갖고 있어서일까요?....돈을 잃고 그걸 다시찾는다면 또다시 전 돈을 원할까요?.....아뇨.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전 기쁠것 같아요..."
그녀의 말소리가 잦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흐느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마음이 답답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어디 산에라도 올라가 꽥꽥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흐느낌속에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오늘 선생님께 큰 죄를 지었어요. 실은 선생님을 이용하고 말았어요......그이가 선생님을 견제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일부러 선생님에게 연수받겠다고.....생각대로 그이는 펄쩍 뛰더군요....딴사람은 되도 그놈은 절대 안된다고....전 선생님 아니면 안된다고...부부싸움 할 정도로..."
화도 나지 않더군요. 철저히 갖고 놀았던 겁니다만,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었답니다.
저 자신 놀랄만큼... 전 차안의 티슈백에서 두서너장을 뽑아 건네 주었습니다.
받아드는 그녀의 손이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습니다. 건네주는 제 손이 담담한 만큼 그녀의 떨림은 두드러져 보였습니다만.
"전 그이가 오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거란걸 알고 있었죠...거래처사람들이란 아마 핑계일거에요...그사람...지금쯤 어디서 정신없이 퍼마시면서 질투에 불타고 있겠죠....그이로부터 전화가 왔을때...전 거짓말을 했어요...계획대로라면 선생님하고 같이 있다고 해야 하는데...차마 그럴 수 없었어요...제가 선생님에게 너무 큰 죄를 저질럿다는걸...그제서야 안거죠..."
그녀의 집이 가까워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제가 제 결혼식 때 느낀것은 모두 사실대로 말한거에요...그리고...그리고..."
그녀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전 그녀가 못하는 말이 무얼까 가만히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짐작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머리속이 멍할뿐,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는겁니다. 워낙 제가 받은 충격이 컸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거지요.
무심한 척 했지만 실은 너무 큰 충격에 미쳐 화 낼 여력조차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저 또한 화를 내보기도 전에 그녀의 집이 지척에 가까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여기서 세워 주실래요"
불과 얼마 남겨 놓지 않았는데 세우라 하더군요. 속으로 친구놈이 볼까봐 그러나보다 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전 차를 한켠으로 붙여 세웠습니다. 시동을 끌까 하다가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 간단한 조작조차 귀찮고 성가시단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쏘주 한병 사들고는 퍼 마시고 푹 자고 싶을 따름이었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는데, 그녀가 황급히 달려와서 제 팔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잠시만요"
"네?"
그녀는 절 잡고는 조수석에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전 비로서 역정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갖고 놀 게 남았나. 때를 놓친 역정이어서인지 그 울화는 격렬하게 제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견디기 힘들더군요. 자릴 박차고 나오려는데 그녀의 출발이 한발 빨랐습니다.
벌써 안전벨트까지 하고서는 차를 출발시킨 신속함에는 내가 하려는 행동을 미리 간파한 것이 분명했답니다.
정말 머리회전이 남다른 여자였습니다. 목동아파트가 그녀 집이었습니다만 그녀는 주차할 자릴 찾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미 귀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서 그런지 자린 쉽사리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몇번 돌다가 마침내 한자리가 보였습니다. 차 한대 반정도의 일렬주차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제서야 전 왜 그녀가 절 다시 태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늘 배운 일렬주차를 제게 보여주려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단번에 능숙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점수로 하면 80점 이상은 충분히 될 법 했습니다.
주차가 끝나고 가만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녀가 절 건너다 보았습니다. 어땠어요? 하고 그 눈이 묻고 있었습니다.
전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녀도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습니다.
"잘하셨어요..."하고 전 치사했죠.
그녀는 아까의 흐느끼던 얼굴과 동일한 얼굴이란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환히 웃었습니다.
젠장. ...이쁘더군요. 너무너무.... 그녀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고 저도 내렸습니다.
그녀와 전 그렌져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았습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잘하셨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하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럼..전 이만..." 하고 가려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절 잡더군요.
"잠깐만요"
"?......?"
"저어...내일부턴 연수 못받을것같아요..."
아니, 그럼 또 나를 갖고 너희 부부 사랑놀음에 이용하려 했단 말인가.
전 기가 턱하니 막혔습니다만, 내색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그런데....그 다음의 그녀의 말을 듣고선 그만 그 자리에 못박힌듯 꼼짝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선생님이 그이 친구라서이에요...정말..정말.....좋아져버릴것같아서..."
말을 끝맺지도 않은 채 그녀는 안녕히가세요 하고 인사하고는 자신의 아파트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아까 차안에서 주저하던 말이 이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전 또 어리벙벙한 모습으로 멍하니 그 뛰어가는 모습만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거기 서 있을 듯한 모습으로. 4.후일담 전 그 이후에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났답니다.
그것은 그녀가 제 친구와 이혼하고 재혼했다는 소문을 듣고 난 이후니까 아마 그날의 운전연수 후 삼년 정도가 흐른 날일겁니다.
시내 모 백화점에서 그녀를 알아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녀가 많이 살이 오른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옆에 서서 함께 쇼핑하는 낯선 남자가 얼핏 납득이 안되었던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요.
제 친구놈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하지만 곧 그녀가 재혼했다는 소문을 기억해내고는 아마 새남편일 거라 생각하자 그녀는 분명 언젠가 내 어깨에 머물렀던 <별>임을 알아볼수 있더군요. 그녀도 저를 보았습니다.
두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을 때 , 전 저도 모르게 빙긋 웃어 주었습니다.
그녀도 약간 당황하는 듯 하다가 새남편쪽이 딴곳을 보고 있음을 확인하곤 역시 환하게 웃어 주더군요.
많이 살 오른 모습이었지만 건강해보였고 밝아 보였습니다.
그녀는 다시한번 새남편을 힐깃 보고는 절 향해 양손을 주욱 뻗어 보였습니다.
전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그녀의 의도를 알고선 다시 파안대소했답니다.
그녀는 운전대를 붙잡고있는 흉내를 낸 것이지요.
그 모션이 자신이 이젠 운전에 능숙하단 뜻인지, 아니면 그날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이제 그런 것들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요.
전 문득 그녀의 노래를 다시 청하고 싶어지더군요.
따지고보면 , 제가 두번 그녀는 한번 서로에게 노래를 들려주었으니 제게 한번 더 기회가 있는거잖아요.
정말 궁금하더군요. 이번에 그녀는 무슨 노랠 들려 줄런지.
지금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선 전에 들려 준 그런 노래는 아닐듯 한데....
그녀가 손을 흔들며 인파속으로 그녀의 새남편과 사라지고 말았을 때 전 속으로 가만가만히 그녀에게 속삭여주었답니다.
"행복하세요..그리고 다신 아무것도 잃지마세요"
지금까지 제 이야길 들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그녀에게 혼잣말로 속삭였던 같은 말을 드리고 싶답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아무것도 잃지마세요....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