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Teacher 악몽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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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7:54 조회 857회 댓글 0건본문
난 신체조건이 남다르다. 유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받았기 때문에 아주 어렸을 적부터 또래의 친구들보다는 머리 크기 하나만큼 더 컸다. 16살인 현재, 188센티미터의 키와 95키로 그램의 아주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체조건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운동선수를 해보라는 많은 권유를 받았지만 난 내키지 않았다. 운동보다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보고 싶었고 우리 부모님들처럼 교육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더 많은 공부를 한다면 부모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전공을 살려서 박사 과정을 밟게 되면 대학의 교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집에만 틀어박혀 공부만 했던 탓일까?. 나의 단점이라면 소심한 성격에 있었다.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했다. 아버지도 나를 두고 등치에 안 맞게 너무 소심하다가 나무라시기도 했고 또 남자라면 당당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스스로도 나의 이런 성격이 문제임을 알고 있었지만 쉽게 고칠 수는 없었다.
난 싸우는 것이 싫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맞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와 주먹 다툼을 하게 되면 최소한 몇 대는 맞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맞게 되면 내 신체에 느껴지게 될 고통이 너무 무서웠다. 어릴 때는 싸우면서 큰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난 다행히도 남다른 등치를 가졌기 때문에 누가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15살까지는 그 누구와도 싸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시에 가장 중요한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꽤 오랫동안 싸움의 장에 서 있게 되었다.
첫 발단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3학년으로 진급을 하면서 새로운 반을 배정 받았는데, 우리 반에 아주 까불까불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등치는 작지만 녀석은 주위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괴롭힘을 당하면서 그 녀석에게 덤비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까불이 녀석은 우리학교에서 싸움 좀 한다는 무리들의 일원이라고 했다. 즉,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은 그 까불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녀석의 뒤에 있는 하나의 집단이 무서웠던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까불이의 횡포는 심해졌다.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체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참았다. 그리고 다시 참았다. 분명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책에는 ‘참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내가 참을수록 그 까불이는 좀 더 노골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등치만 컸지, 실속은 별 볼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마음속으로는 녀석에게 주먹을 한 대 날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누군가를 단 한 번도 때려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주먹을 강하게 쥐었지만, 그것을 앞으로 내미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참을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난생 처음으로 싸움이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그 대상은 그 까불이었다. 그날도 까불이는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를 치며 시비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대로 난 참았다. 내가 참으면 까불이는 몇 번을 더 치다가 그냥 자기 자리로 돌아갔었는데, 그날도 역시 그랬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마지막으로 내 뺨을 한 대 치고 돌아가던 까불이는 나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말을 했다.
“병신 새끼, 배알도 없구나. 너같이 등치만 큰 새끼를 낳으려고 니 엄마 보지가 벌렁벌렁 했을 텐데... 키키키... 병신 쪼다 새끼.”
내가 맞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내가 굴욕을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까불이의 말을 듣고 난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그 까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꽉 쥔 오른손 주먹으로 녀석의 턱을 향해 날렸다.
‘퍽~’
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까불이가 쓰러졌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타격감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까불이는 교실 바닥에 기절해서 쓰러져 있었다. 주위의 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교실에는 수 십 명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 말이 또렷이 들려왔다.
“재민이는 이제....죽었다.....”
까불이를 쓰러뜨린 나에 대한 우려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까불이가 나에게 맞아서 기절했다는 소식은 금세 전교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까불이가 속한 소위 싸움을 잘한다는 그 집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우리 반을 찾아와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명씩 찾아왔다. 그리고 난 그들과 소위 일대일 맞짱을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던히도 맞았다. 난 싸움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싸움 경험이 적다는 것은 압도적인 신체조건 차이에서는 별 티가 나지 않았다. 내가 5대를 맞더라도 단 1대만 상대에게 적중을 시키면, 싸움은 곧잘 나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근 일주일간 그렇게 일대일 맞짱을 했다. 그리고 모두 승리했다. 학교의 분위기는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조용하게 학교를 다니던 재민이가 각성했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려왔다.
난 싸움을 하면서 또 그 싸움을 이기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그래도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싸움을 끝내려면 난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학교에서 가장 강하다는 녀석들을 모두 눕혀버리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 내에서 마지막 싸움이 곧 시작 되었다.
학교에서 제일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난 녀석이 맞짱을 뜨자고 했다. 난 흔쾌히 수락했다. 이 녀석만 이긴다면 더 이상 나에게 아무도 덤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난 조용히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방과 후에 학교 앞의 공원 화장실에서 그 녀석과 만났다. 녀석의 친구들 몇이 공원 화장실의 입구를 막아섰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짱을 떴다. 처음에는 많이 맞았다. 역시 싸움 경험이 많은 녀석이라 상당히 싸움에 능숙했다. 그리고 지금껏 싸운 상대와 달리 파워도 넘쳤다. 얼핏 본 권투 장면을 기억해 내며 얼굴을 가드 했지만, 녀석의 주먹이 내 팔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주 잠시 뿐이었다.
‘퍽~’
한참을 맞고 있다가 눈을 감고 본능적으로 주먹을 한 번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주먹에 타격감이 느껴졌다. 눈을 떠 보니 녀석이 쓰러져 있었다. 입술이 터진 듯, 녀석의 입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녀석은 다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덤볐다.
“이 씨발 새끼가 죽을라고...”
그리고 처절한 싸움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유리해졌다. 무엇보다 녀석의 주먹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계속 맞다보니 아픔에 익숙해졌고, 무수한 주먹질에도 내가 쓰러지지 않았으니, 체력이 달리는 것은 녀석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주먹을 날렸다. 녀석이 가드를 했지만 압도적인 내 힘에 녀석의 몸이 뒤로 점차 밀리고 있었다. 난 자신감이 붙었다. 조금 더 몰아붙이면 평소처럼 내 승리가 확실시 되었다. 난 주먹을 계속 내질렀다. 조금씩 녀석이 쓰러지고 있었다. 속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말했다.
“아악...뭐...뭐야...”
녀석이 쓰러지려던 순간 갑자기 내 뒤에서 누군가 나를 발로 걷어찼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입구를 막고 있던 녀석의 친구들이 나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모두 3명이었다.
“비겁한 녀석들...”
말도 안 되는 3대 1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4대 1이 되었다. 곧 쓰러질 것 같았던 녀석이 잠시 숨을 돌리더니 싸움에 가세했다. 난 계속 얻어맞았다. 주먹이 8개가 계속 날라 왔기 때문에 몸을 움츠리면서 가드를 하더라도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쓰러지면 녀석들의 괴롭힘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그건 최악의 결과였다.
“아아아아아아......”
한동안 몸을 움츠리며 맞기만 하던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세웠다. 그리고 한 녀석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얼굴을 강하게 쳤다. 다른 녀석들이 놀라워하며 계속 나를 때렸지만, 참고 또 참았다. 내 손에 잡힌 녀석이 내 주먹 3대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녀석을 놓고 다른 녀석을 잡았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녀석을 때렸다.
“저 새끼 미.....미쳤어....”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눌러 버렸다. 맞으면 참았고 한 놈씩 잡아서 계속 때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녀석 혼자 서 있게 되었다.
“미....미친 놈....”
녀석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물론, 나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녀석의 표정은 질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무섭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한 걸음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난 또 다가갔다. 그리고 강하게 마지막 주먹을 내질렀다.
‘퍽~’
내 마지막 주먹을 맞고 녀석이 쓰러졌다. 그리고 난 지친 몸을 이끌고 공원 화장실 밖을 나왔다. 온 몸이 아파왔다. 그리고 내 얼굴에서는 쌍코피가 흘렀고 입술은 이미 터진 상태였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정신을 잃을 듯 어지러웠다. 자고 싶었다. 조금만 누워서 숨을 돌리고 싶었다.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공원 구석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면 상쾌한 기분이 들어야 할 텐데, 마음이 무거웠다. 울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왜 난 싸움을 시작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그만 싸우고 싶었다. 정말 그만 싸우고 싶었다.
“얘, 괜찮니?.”
한동안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맑고 경쾌한 여자 목소리였다. 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쳐다봤다. 강한 햇빛 때문에 순간적으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내 눈에 한 중년의 여성이 보였다.
“어머, 피나는 것 좀 봐. 너 교복 보니까 우리 학교 학생인 것 같은데....몇 학년 몇 반 누구니?.”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자의 말을 들으니 우리학교 선생님인 듯 했다.
“3학년.....3반......이재민....입니다...”
“아, 3학년이라 나를 모를 수도 있겠구나. 난 1학년 담당 가정 선생님이야.”
얼핏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학기 초에 새로운 가정 선생님이 전근을 왔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앞에 있는 여자가 그 여선생님인 듯 했다.
“어디서 이렇게 다쳤니...?”
“......그게....”
“불량배들 만난 거야?. 에구...이 피 흐르는 것 봐라...”
난 불량배를 만났냐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가정 선생님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아...”
“많이 아프니?.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네...”
“괘...괜찮습니다.”
새하얀 손수건으로 나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가정 선생님을 바라봤다. 가정 선생님의 손이 참 가늘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가정 선생님의 얼굴도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하얀 피부와 살짝 웨이브를 준 헤어스타일이 청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근’
가슴이 뛰었다. 가정 선생님의 손수건이 내 얼굴에 닿을 때마다 가슴의 심장 박동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느낌, 도대체 무엇일까?.
“피는 대충 닦아 냈는데, 빨리 집에 가서 약을 발라야겠네. 그리고 불량배들 만난 것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도 학교에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학교 주변에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고....”
“...네...고맙습니다.”
“고맙긴...조심히 들어가...”
내 얼굴에 묻은 피를 다 닦아 낸 가정 선생님이 빙긋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아쉬웠다.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난 학교에서 가정 선생님을 몰래 훔쳐봤다. 자주 마주치기는 힘들었지만, 학교에서 그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짧은 인사를 나누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내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아니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나에게도 첫사랑이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가정 선생님은 이미 결혼한 유부녀였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내 첫사랑의 상대가 선생님, 그리고 30대의 유부녀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 안타까움은 그녀와 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난 내 마음을 외면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정 선생님과 이어질 수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속 짝사랑이었지만, 가정 선생님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행복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었고, 난 내가 사랑하는 가정 선생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속 평화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국에는 내가 B 중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것이 사실이 되었고, 그것은 또 현실이었다. 난 이 사실이 퍼지는 것이 싫었지만, 내 주변은 이런 내 마음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 이 사실을 자꾸 학교 밖으로 퍼뜨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타 학교에서 나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사실 정말 이런 상황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만화책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는 그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난 싸움을 피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 학교의 학생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우리학교의 학생의 돈을 뺏기도 하고 또 하교하는 내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어 지단으로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 고개를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고개가 아닌 이제 거대한 산이 내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결국 난 이 산을 넘어야 모든 싸움이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싸움의 장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계속 이겨 나갔다. 그러나 승리를 할수록 싸움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기면 또 다른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학교 내의 녀석들과 싸울 때보다 수십 배는 힘들고 외로웠다. 난 철저하게 혼자 움직였지만, 어느 학교든지 싸움을 한다는 녀석들은 집단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난 이겼다. 싸움이 많아질수록 내 싸움 경험치도 올라갔다. 전문적으로 격투기 등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싸움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싸움기술을 터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나의 큰 장점인 압도적인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싸움이 싫어서 싸움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난 점점 싸움꾼이 되고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싸움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난 꽤 유명해졌다. B 중학교의 이재민이 이 근처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난 결단코 그 소문이 좋지 않았다. 그런 소문이 늘어날수록 나에게 덤비는 녀석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하교를 하려고 교문을 나서는데, 낯선 녀석 2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 중 한 녀석이 씨익 웃으며 말을 했다.
“니가 이재민이냐?.”
“.....그런데, 넌?.”
“이 새끼가 너라니. 난 고등학생이야. 일단 우리랑 함께 가자.”
“무...무슨 일인데요?.”
속으로 ‘젠장’이라고 말을 했다. 이제는 고등학생마저 나에게 싸움을 걸어온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난 고등학생과는 싸워 본 적이 없었는데, 조금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싸우기 싫은데...요.”
“싸우는 것 아니야 임마. 내 친구가 너 좀 보고 싶대.... 너 혹시 변태석 이라고 들어봤냐?.”
“변....태석...”
들어 본 이름이었다. 싸움을 하다가 몇 번 들어 봤는데, 나에게 진 녀석들이 공통적으로 꺼낸 이름이었다.
- 이 새끼, 두고 보자, 우리 태석이 형이 널 죽여 버릴 테니까..
그때는 그 말을 무시했다가 나중에 주위 친구에게 들어봤는데, 그 태석이라는 사람이 변태석이라고 했다. 이름의 첫 글자와 두 번째 글자만 쓰면 ‘변태’라는 것이 되어서 참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주위 친구들의 말로는 고교 2년생으로 싸움의 신이라고 했다. 아마 전국 고등학생들 중에서 싸움으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그를 이긴 자가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정말 크게 웃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변태석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싸워봤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싸움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놈이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나의 물음에 친구들은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며 내 말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변태석은 서울시의 모든 학교의 짱들과 맞짱을 뜨는 미친 짓을 감행했다고 했다. 스스로를 파이터라고 생각하며 싸움을 하러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변태석이 서울시의 모든 학교의 짱과의 싸움에서 다 이겼다고 했다. 심지어는 그것도 시시하게 느껴서 아마추어 이종격투기 대회에도 밥 먹듯이 출전했고 성인들을 대상으로도 꽤 많은 승리를 했다고 했다. 여러 체육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왔다고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별 희한한 놈 하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심각성을 못 느끼자 주위 친구들은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다. 변태석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따른다고 했다. 대부분 양아치라고 했는데, 그 중에 두 명은 변태석과 거의 친형제처럼 다닌다고 했다. 그 두 명의 이름도 상당히 유명했다. 우창민과 좌진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변태석을 중심으로 우청룡 좌백호를 따라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이름이 우창민과 좌진석이라고 했다. 이 세 친구의 무서운 점은 각자의 싸움 실력도 대단하지만, 함께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을 많이 한다고 했다. 폭행사건도 많았지만 특히 강간을 많이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번 찍은 여자는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변태석의 집안에서 모든 사건을 무마시켰다고 했다. 변태석의 집안이 100대 기업 중 하나라나?.
친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변태석이라는 고등학생이 나를 찾고 있었다. 학교 앞까지 똘마니 같은 친구들을 보내서 나를 데려오라고 했으니, 피하려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변태석이 마음을 먹었고 소문대로 그렇게 독한 녀석이라면 내가 이 자리를 피하더라도 언젠가는 날 찾아올 듯 했다.
“자, 따라와.”
“...네.”
변태석이 보낸 고등학생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가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변태석은 나를 왜 부르는 것일까?. 설마 그때 녀석의 복수를 위해서 부른 것일까?. 만약에 싸우게 된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피식...걱정마. 새끼야.”
“...네?.”
내 얼굴에 근심걱정이 가득한 것이 드러났는지, 그 고등학생이 나를 보고 웃었다.
“태석이는 너에게 관심이 많아. 너 꽤 유명하더라. 항간에는 너를 제2의 변태석이라고 하던데?. 오늘 보니 하드웨어 하는 정말 죽이구만.”
“............”
“이야기를 들어보니 태석이가 너를 동생 삼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동생이...요?.”
“니가 L 중학교 김기철을 깼다며?. 그 녀석은 태석이가 아끼는 후배였는데...”
“그...그건 녀석이 먼저 덤볐단 말예요.”
“아, 아까도 말했듯이 걱정하지는 마. 그걸 따지려고 너를 부르는 것이 아니니깐.”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동생은 뭐고?. 또 L 중학교의 김기철이 왜 언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자, 그 고등학생이 말을 이어갔다.
“넌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태석이를 따르는 친구들이 많아. 그 중에는 어린 녀석도 많지. 너처럼 중학생들도... 그렇게 따르는 녀석들이 많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도 하나의 조직이 되었지.”
“조...조직이요?.”
“하하하. 물론 성인들처럼 조폭 이런 것은 아니야. 그냥 오토바이 좋아하고 싸움도 간간이 즐기고, 또 술도 마시면서 노는 집단이지. 키키키...”
“...........”
“넌 눈치를 보아하니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우리 집단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야. 특히 중학생들은 더더욱 들어오기 힘들지. 그런데 L 중학교 김기철은 우리 조직에 들어올 수 있었어... 그리고 태석이는 기철이를 많이 아꼈지. 그 이유가 뭔 줄 알아?.”
“그...그게....뭔데요?.”
결국에는 쓰레기 집단이었다. 그런데 무슨 그 조직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아주 거창하게 말을 하는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태석이는 전설이야. 서울시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지. 내 생각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싸움을 잘할 것 같지만.... 태석이가 서울시의 모든 학교 짱을 다 일일이 찾아가서 눕힌 것은 너도 알 거야. 유명한 일화니깐. 그런데 그런 태석이를 롤 모델로 삼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후배가 바로 L 중학교 김기철이었어.”
“에에?.”
“넌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인데, 네가 쓰러뜨린 L 중학교 김기철이 서울시 중학생들의 전체 짱이라고 생각하면 이제 상황 파악이 되겠냐?.”
그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았다. L 중학교의 김기철과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주위 친구들이 이번 상대는 정말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빨리 싸움을 멈추려면 그 녀석을 꺾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서울시 전체 짱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그러니까...”
“이제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지?. 태석이는 흥미가 있었던 거야. 김기철에게... 자신이 밟은 길을 똑같이 밟아오는 후배를 지켜보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너, 이재민이라는 녀석이 튀어나와서 그 후배를 단숨에 깨버렸다는 거야. 태석이는 당연히 너에 대해 궁금하다 이것이지.”
“.........그렇군요.”
결국에는 변태석이든, 지금 나에게 말을 하는 고등학생이든 양아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싸움을 아무리 잘해봐야, 나중에 되는 것은 깡패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 깡패의 대장들에게 불려가는 중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난 싸움을 하기 싫었는데, 싸움을 하기 싫어서 싸움을 했을 뿐인데. 싸움을 시작하면서 부정해 왔던 ‘참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문구가 자꾸 떠올랐다.
“자, 여기다 들어가자.”
어느 주택가의 빈 집인 듯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주 소란스러웠다. 내 눈에는 거실에서 1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술잔치를 하는 것이 보였다.
“저 녀석이 이재민이야?.”
“오호...체격이 대단한데...힘은 정말 진퉁이겠다.”
“하하하하하......기철이가 깨질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체격만큼은 창민이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은데......하하하”
술을 마시던 고등학생들이 나를 보고 다들 한 마디씩 날렸다. 나는 그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고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새끼야. 긴장하지 마..”
“아...네...”
나를 데려온 고등학생이 옆에서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난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천천히 술자리를 가지고 있던 고등학생들을 쳐다봤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아주 큰 체격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생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 사람이 웃기 시작하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난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변태석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큰 체격은 아니지만, 온 몸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얼굴은 턱의 각이 두드러질 만큼 샤프한 모습과 함께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한동안 나를 보고 웃던 그 사람은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니가 이재민이냐?.”
톤이 낮고 굵직한 만큼, 나를 움찔하게 할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러한 신체조건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운동선수를 해보라는 많은 권유를 받았지만 난 내키지 않았다. 운동보다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보고 싶었고 우리 부모님들처럼 교육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더 많은 공부를 한다면 부모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전공을 살려서 박사 과정을 밟게 되면 대학의 교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집에만 틀어박혀 공부만 했던 탓일까?. 나의 단점이라면 소심한 성격에 있었다.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했다. 아버지도 나를 두고 등치에 안 맞게 너무 소심하다가 나무라시기도 했고 또 남자라면 당당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스스로도 나의 이런 성격이 문제임을 알고 있었지만 쉽게 고칠 수는 없었다.
난 싸우는 것이 싫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맞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와 주먹 다툼을 하게 되면 최소한 몇 대는 맞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맞게 되면 내 신체에 느껴지게 될 고통이 너무 무서웠다. 어릴 때는 싸우면서 큰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난 다행히도 남다른 등치를 가졌기 때문에 누가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15살까지는 그 누구와도 싸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시에 가장 중요한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꽤 오랫동안 싸움의 장에 서 있게 되었다.
첫 발단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3학년으로 진급을 하면서 새로운 반을 배정 받았는데, 우리 반에 아주 까불까불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등치는 작지만 녀석은 주위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괴롭힘을 당하면서 그 녀석에게 덤비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까불이 녀석은 우리학교에서 싸움 좀 한다는 무리들의 일원이라고 했다. 즉,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은 그 까불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녀석의 뒤에 있는 하나의 집단이 무서웠던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까불이의 횡포는 심해졌다.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체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참았다. 그리고 다시 참았다. 분명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책에는 ‘참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내가 참을수록 그 까불이는 좀 더 노골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등치만 컸지, 실속은 별 볼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마음속으로는 녀석에게 주먹을 한 대 날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누군가를 단 한 번도 때려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주먹을 강하게 쥐었지만, 그것을 앞으로 내미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참을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난생 처음으로 싸움이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그 대상은 그 까불이었다. 그날도 까불이는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를 치며 시비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대로 난 참았다. 내가 참으면 까불이는 몇 번을 더 치다가 그냥 자기 자리로 돌아갔었는데, 그날도 역시 그랬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마지막으로 내 뺨을 한 대 치고 돌아가던 까불이는 나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말을 했다.
“병신 새끼, 배알도 없구나. 너같이 등치만 큰 새끼를 낳으려고 니 엄마 보지가 벌렁벌렁 했을 텐데... 키키키... 병신 쪼다 새끼.”
내가 맞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내가 굴욕을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까불이의 말을 듣고 난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그 까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꽉 쥔 오른손 주먹으로 녀석의 턱을 향해 날렸다.
‘퍽~’
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까불이가 쓰러졌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타격감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까불이는 교실 바닥에 기절해서 쓰러져 있었다. 주위의 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교실에는 수 십 명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 말이 또렷이 들려왔다.
“재민이는 이제....죽었다.....”
까불이를 쓰러뜨린 나에 대한 우려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까불이가 나에게 맞아서 기절했다는 소식은 금세 전교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까불이가 속한 소위 싸움을 잘한다는 그 집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우리 반을 찾아와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명씩 찾아왔다. 그리고 난 그들과 소위 일대일 맞짱을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던히도 맞았다. 난 싸움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싸움 경험이 적다는 것은 압도적인 신체조건 차이에서는 별 티가 나지 않았다. 내가 5대를 맞더라도 단 1대만 상대에게 적중을 시키면, 싸움은 곧잘 나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근 일주일간 그렇게 일대일 맞짱을 했다. 그리고 모두 승리했다. 학교의 분위기는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조용하게 학교를 다니던 재민이가 각성했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려왔다.
난 싸움을 하면서 또 그 싸움을 이기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그래도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싸움을 끝내려면 난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학교에서 가장 강하다는 녀석들을 모두 눕혀버리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 내에서 마지막 싸움이 곧 시작 되었다.
학교에서 제일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난 녀석이 맞짱을 뜨자고 했다. 난 흔쾌히 수락했다. 이 녀석만 이긴다면 더 이상 나에게 아무도 덤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난 조용히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방과 후에 학교 앞의 공원 화장실에서 그 녀석과 만났다. 녀석의 친구들 몇이 공원 화장실의 입구를 막아섰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짱을 떴다. 처음에는 많이 맞았다. 역시 싸움 경험이 많은 녀석이라 상당히 싸움에 능숙했다. 그리고 지금껏 싸운 상대와 달리 파워도 넘쳤다. 얼핏 본 권투 장면을 기억해 내며 얼굴을 가드 했지만, 녀석의 주먹이 내 팔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주 잠시 뿐이었다.
‘퍽~’
한참을 맞고 있다가 눈을 감고 본능적으로 주먹을 한 번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주먹에 타격감이 느껴졌다. 눈을 떠 보니 녀석이 쓰러져 있었다. 입술이 터진 듯, 녀석의 입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녀석은 다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덤볐다.
“이 씨발 새끼가 죽을라고...”
그리고 처절한 싸움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유리해졌다. 무엇보다 녀석의 주먹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계속 맞다보니 아픔에 익숙해졌고, 무수한 주먹질에도 내가 쓰러지지 않았으니, 체력이 달리는 것은 녀석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주먹을 날렸다. 녀석이 가드를 했지만 압도적인 내 힘에 녀석의 몸이 뒤로 점차 밀리고 있었다. 난 자신감이 붙었다. 조금 더 몰아붙이면 평소처럼 내 승리가 확실시 되었다. 난 주먹을 계속 내질렀다. 조금씩 녀석이 쓰러지고 있었다. 속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말했다.
“아악...뭐...뭐야...”
녀석이 쓰러지려던 순간 갑자기 내 뒤에서 누군가 나를 발로 걷어찼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입구를 막고 있던 녀석의 친구들이 나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모두 3명이었다.
“비겁한 녀석들...”
말도 안 되는 3대 1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4대 1이 되었다. 곧 쓰러질 것 같았던 녀석이 잠시 숨을 돌리더니 싸움에 가세했다. 난 계속 얻어맞았다. 주먹이 8개가 계속 날라 왔기 때문에 몸을 움츠리면서 가드를 하더라도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쓰러지면 녀석들의 괴롭힘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그건 최악의 결과였다.
“아아아아아아......”
한동안 몸을 움츠리며 맞기만 하던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세웠다. 그리고 한 녀석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얼굴을 강하게 쳤다. 다른 녀석들이 놀라워하며 계속 나를 때렸지만, 참고 또 참았다. 내 손에 잡힌 녀석이 내 주먹 3대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녀석을 놓고 다른 녀석을 잡았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녀석을 때렸다.
“저 새끼 미.....미쳤어....”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눌러 버렸다. 맞으면 참았고 한 놈씩 잡아서 계속 때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녀석 혼자 서 있게 되었다.
“미....미친 놈....”
녀석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물론, 나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녀석의 표정은 질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무섭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한 걸음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난 또 다가갔다. 그리고 강하게 마지막 주먹을 내질렀다.
‘퍽~’
내 마지막 주먹을 맞고 녀석이 쓰러졌다. 그리고 난 지친 몸을 이끌고 공원 화장실 밖을 나왔다. 온 몸이 아파왔다. 그리고 내 얼굴에서는 쌍코피가 흘렀고 입술은 이미 터진 상태였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정신을 잃을 듯 어지러웠다. 자고 싶었다. 조금만 누워서 숨을 돌리고 싶었다.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공원 구석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면 상쾌한 기분이 들어야 할 텐데, 마음이 무거웠다. 울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왜 난 싸움을 시작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그만 싸우고 싶었다. 정말 그만 싸우고 싶었다.
“얘, 괜찮니?.”
한동안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맑고 경쾌한 여자 목소리였다. 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쳐다봤다. 강한 햇빛 때문에 순간적으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내 눈에 한 중년의 여성이 보였다.
“어머, 피나는 것 좀 봐. 너 교복 보니까 우리 학교 학생인 것 같은데....몇 학년 몇 반 누구니?.”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자의 말을 들으니 우리학교 선생님인 듯 했다.
“3학년.....3반......이재민....입니다...”
“아, 3학년이라 나를 모를 수도 있겠구나. 난 1학년 담당 가정 선생님이야.”
얼핏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학기 초에 새로운 가정 선생님이 전근을 왔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앞에 있는 여자가 그 여선생님인 듯 했다.
“어디서 이렇게 다쳤니...?”
“......그게....”
“불량배들 만난 거야?. 에구...이 피 흐르는 것 봐라...”
난 불량배를 만났냐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가정 선생님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아...”
“많이 아프니?.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네...”
“괘...괜찮습니다.”
새하얀 손수건으로 나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가정 선생님을 바라봤다. 가정 선생님의 손이 참 가늘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가정 선생님의 얼굴도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하얀 피부와 살짝 웨이브를 준 헤어스타일이 청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근’
가슴이 뛰었다. 가정 선생님의 손수건이 내 얼굴에 닿을 때마다 가슴의 심장 박동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느낌, 도대체 무엇일까?.
“피는 대충 닦아 냈는데, 빨리 집에 가서 약을 발라야겠네. 그리고 불량배들 만난 것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도 학교에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학교 주변에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고....”
“...네...고맙습니다.”
“고맙긴...조심히 들어가...”
내 얼굴에 묻은 피를 다 닦아 낸 가정 선생님이 빙긋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아쉬웠다.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난 학교에서 가정 선생님을 몰래 훔쳐봤다. 자주 마주치기는 힘들었지만, 학교에서 그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짧은 인사를 나누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내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아니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나에게도 첫사랑이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가정 선생님은 이미 결혼한 유부녀였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내 첫사랑의 상대가 선생님, 그리고 30대의 유부녀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 안타까움은 그녀와 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난 내 마음을 외면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정 선생님과 이어질 수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속 짝사랑이었지만, 가정 선생님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행복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었고, 난 내가 사랑하는 가정 선생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속 평화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국에는 내가 B 중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것이 사실이 되었고, 그것은 또 현실이었다. 난 이 사실이 퍼지는 것이 싫었지만, 내 주변은 이런 내 마음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 이 사실을 자꾸 학교 밖으로 퍼뜨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타 학교에서 나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사실 정말 이런 상황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만화책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는 그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난 싸움을 피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 학교의 학생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우리학교의 학생의 돈을 뺏기도 하고 또 하교하는 내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어 지단으로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 고개를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고개가 아닌 이제 거대한 산이 내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결국 난 이 산을 넘어야 모든 싸움이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싸움의 장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계속 이겨 나갔다. 그러나 승리를 할수록 싸움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기면 또 다른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학교 내의 녀석들과 싸울 때보다 수십 배는 힘들고 외로웠다. 난 철저하게 혼자 움직였지만, 어느 학교든지 싸움을 한다는 녀석들은 집단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난 이겼다. 싸움이 많아질수록 내 싸움 경험치도 올라갔다. 전문적으로 격투기 등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싸움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싸움기술을 터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나의 큰 장점인 압도적인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싸움이 싫어서 싸움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난 점점 싸움꾼이 되고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싸움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난 꽤 유명해졌다. B 중학교의 이재민이 이 근처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난 결단코 그 소문이 좋지 않았다. 그런 소문이 늘어날수록 나에게 덤비는 녀석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하교를 하려고 교문을 나서는데, 낯선 녀석 2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 중 한 녀석이 씨익 웃으며 말을 했다.
“니가 이재민이냐?.”
“.....그런데, 넌?.”
“이 새끼가 너라니. 난 고등학생이야. 일단 우리랑 함께 가자.”
“무...무슨 일인데요?.”
속으로 ‘젠장’이라고 말을 했다. 이제는 고등학생마저 나에게 싸움을 걸어온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난 고등학생과는 싸워 본 적이 없었는데, 조금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싸우기 싫은데...요.”
“싸우는 것 아니야 임마. 내 친구가 너 좀 보고 싶대.... 너 혹시 변태석 이라고 들어봤냐?.”
“변....태석...”
들어 본 이름이었다. 싸움을 하다가 몇 번 들어 봤는데, 나에게 진 녀석들이 공통적으로 꺼낸 이름이었다.
- 이 새끼, 두고 보자, 우리 태석이 형이 널 죽여 버릴 테니까..
그때는 그 말을 무시했다가 나중에 주위 친구에게 들어봤는데, 그 태석이라는 사람이 변태석이라고 했다. 이름의 첫 글자와 두 번째 글자만 쓰면 ‘변태’라는 것이 되어서 참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주위 친구들의 말로는 고교 2년생으로 싸움의 신이라고 했다. 아마 전국 고등학생들 중에서 싸움으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그를 이긴 자가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정말 크게 웃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변태석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싸워봤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싸움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놈이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나의 물음에 친구들은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며 내 말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변태석은 서울시의 모든 학교의 짱들과 맞짱을 뜨는 미친 짓을 감행했다고 했다. 스스로를 파이터라고 생각하며 싸움을 하러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변태석이 서울시의 모든 학교의 짱과의 싸움에서 다 이겼다고 했다. 심지어는 그것도 시시하게 느껴서 아마추어 이종격투기 대회에도 밥 먹듯이 출전했고 성인들을 대상으로도 꽤 많은 승리를 했다고 했다. 여러 체육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왔다고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별 희한한 놈 하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심각성을 못 느끼자 주위 친구들은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다. 변태석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따른다고 했다. 대부분 양아치라고 했는데, 그 중에 두 명은 변태석과 거의 친형제처럼 다닌다고 했다. 그 두 명의 이름도 상당히 유명했다. 우창민과 좌진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변태석을 중심으로 우청룡 좌백호를 따라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이름이 우창민과 좌진석이라고 했다. 이 세 친구의 무서운 점은 각자의 싸움 실력도 대단하지만, 함께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을 많이 한다고 했다. 폭행사건도 많았지만 특히 강간을 많이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번 찍은 여자는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변태석의 집안에서 모든 사건을 무마시켰다고 했다. 변태석의 집안이 100대 기업 중 하나라나?.
친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변태석이라는 고등학생이 나를 찾고 있었다. 학교 앞까지 똘마니 같은 친구들을 보내서 나를 데려오라고 했으니, 피하려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변태석이 마음을 먹었고 소문대로 그렇게 독한 녀석이라면 내가 이 자리를 피하더라도 언젠가는 날 찾아올 듯 했다.
“자, 따라와.”
“...네.”
변태석이 보낸 고등학생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가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변태석은 나를 왜 부르는 것일까?. 설마 그때 녀석의 복수를 위해서 부른 것일까?. 만약에 싸우게 된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피식...걱정마. 새끼야.”
“...네?.”
내 얼굴에 근심걱정이 가득한 것이 드러났는지, 그 고등학생이 나를 보고 웃었다.
“태석이는 너에게 관심이 많아. 너 꽤 유명하더라. 항간에는 너를 제2의 변태석이라고 하던데?. 오늘 보니 하드웨어 하는 정말 죽이구만.”
“............”
“이야기를 들어보니 태석이가 너를 동생 삼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동생이...요?.”
“니가 L 중학교 김기철을 깼다며?. 그 녀석은 태석이가 아끼는 후배였는데...”
“그...그건 녀석이 먼저 덤볐단 말예요.”
“아, 아까도 말했듯이 걱정하지는 마. 그걸 따지려고 너를 부르는 것이 아니니깐.”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동생은 뭐고?. 또 L 중학교의 김기철이 왜 언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자, 그 고등학생이 말을 이어갔다.
“넌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태석이를 따르는 친구들이 많아. 그 중에는 어린 녀석도 많지. 너처럼 중학생들도... 그렇게 따르는 녀석들이 많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도 하나의 조직이 되었지.”
“조...조직이요?.”
“하하하. 물론 성인들처럼 조폭 이런 것은 아니야. 그냥 오토바이 좋아하고 싸움도 간간이 즐기고, 또 술도 마시면서 노는 집단이지. 키키키...”
“...........”
“넌 눈치를 보아하니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우리 집단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야. 특히 중학생들은 더더욱 들어오기 힘들지. 그런데 L 중학교 김기철은 우리 조직에 들어올 수 있었어... 그리고 태석이는 기철이를 많이 아꼈지. 그 이유가 뭔 줄 알아?.”
“그...그게....뭔데요?.”
결국에는 쓰레기 집단이었다. 그런데 무슨 그 조직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아주 거창하게 말을 하는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태석이는 전설이야. 서울시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지. 내 생각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싸움을 잘할 것 같지만.... 태석이가 서울시의 모든 학교 짱을 다 일일이 찾아가서 눕힌 것은 너도 알 거야. 유명한 일화니깐. 그런데 그런 태석이를 롤 모델로 삼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후배가 바로 L 중학교 김기철이었어.”
“에에?.”
“넌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인데, 네가 쓰러뜨린 L 중학교 김기철이 서울시 중학생들의 전체 짱이라고 생각하면 이제 상황 파악이 되겠냐?.”
그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았다. L 중학교의 김기철과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주위 친구들이 이번 상대는 정말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빨리 싸움을 멈추려면 그 녀석을 꺾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서울시 전체 짱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그러니까...”
“이제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지?. 태석이는 흥미가 있었던 거야. 김기철에게... 자신이 밟은 길을 똑같이 밟아오는 후배를 지켜보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너, 이재민이라는 녀석이 튀어나와서 그 후배를 단숨에 깨버렸다는 거야. 태석이는 당연히 너에 대해 궁금하다 이것이지.”
“.........그렇군요.”
결국에는 변태석이든, 지금 나에게 말을 하는 고등학생이든 양아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싸움을 아무리 잘해봐야, 나중에 되는 것은 깡패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 깡패의 대장들에게 불려가는 중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난 싸움을 하기 싫었는데, 싸움을 하기 싫어서 싸움을 했을 뿐인데. 싸움을 시작하면서 부정해 왔던 ‘참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문구가 자꾸 떠올랐다.
“자, 여기다 들어가자.”
어느 주택가의 빈 집인 듯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주 소란스러웠다. 내 눈에는 거실에서 1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술잔치를 하는 것이 보였다.
“저 녀석이 이재민이야?.”
“오호...체격이 대단한데...힘은 정말 진퉁이겠다.”
“하하하하하......기철이가 깨질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체격만큼은 창민이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은데......하하하”
술을 마시던 고등학생들이 나를 보고 다들 한 마디씩 날렸다. 나는 그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고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새끼야. 긴장하지 마..”
“아...네...”
나를 데려온 고등학생이 옆에서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난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천천히 술자리를 가지고 있던 고등학생들을 쳐다봤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아주 큰 체격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생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 사람이 웃기 시작하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난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변태석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큰 체격은 아니지만, 온 몸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얼굴은 턱의 각이 두드러질 만큼 샤프한 모습과 함께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한동안 나를 보고 웃던 그 사람은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니가 이재민이냐?.”
톤이 낮고 굵직한 만큼, 나를 움찔하게 할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