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딸감이 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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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8:31 조회 3,670회 댓글 0건본문
엄마의 직업은 동네 보습학원 국어 강사였다
한 교실에 10명도 안 되는 작은 동네학원이었는데
고등부에서 경희대 한의대, 경찰대, 연대 의대를 한
해에 동시에 보내는 바람에 갑자기 학생이 몰렸다
엄마 왈 그건 순전히 운빨이었다 선생이 잘 가르쳐
서가 아니고 그냥 내비둬도 어차피 그 대학에 갈 학
생들이었다는거다
암튼 난 그냥 엄마가 일하는 학원이니 자연스럽게
중학교 입학 후 그 학원을 다녔고 갑자기 붐비기 시
작한 그 학원에서 여러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동네가 후진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돈 많은 집 새끼
들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부잣집 애는 동네 산부인
과 원장 아들이었다 바로 그 자식때문에 엄마는 아
이들의 딸감으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국어의 아들인 것을 아무
도 알지 못했다 내가 엄마를 닮지 않아서인지 아니
면 그냥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마와 나의 관계를 아는 건 오로지 선생들 뿐이었다 그런 이유 덕분(?)에 나는 울엄마를 주제
로 한 아이들의 음담패설을 생라이브로 들을 수 있
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엄마를 여자로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그냥 평범한 동네 아줌마 스타일이기는 하 지만 설령 엄마가 김성령급이었어도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여자로 느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얼굴도 몸매(?)도 그냥 완전 이경실 그래서 별명도 경실이다
학원 친구들은 울엄마를 경실이라고 불렀다 가끔
은 경실이년 왕빨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울엄마
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 그 산부인과 집 아들이
처음이었다 한 번 왕빨통이라 부르기 시작하자 다
들 울엄마를 왕빨통이라고 불렀다
14살 소년들의 주요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의 가슴
이었다 성욕폭발시기의 소년들이었지만 아직 관심
사가 보지 엉덩이 등으로는 번지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중1밖에 안 된 남자 아이들이 그런 상상까지 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지만 사춘기
라는 시기가 모든 걸 납득시켜주는 것 같다 나 역시
성인이 된 지금보다 사춘기 당시에 더 야한 상상을
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춘기 소년들의 여자 가슴에 대한 망상이
우리 엄마의 가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
다 티비나 야동에 나오는 여자를 제외하곤 가장 가 까이에서 볼 수 있는 성숙한 여자가 다름아닌 우리
엄마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는
데 말이다 뭐 물론 가슴이 큰 건 사실이었다
나는 초4까지 엄마의 가슴을 만졌다 근데 초5때 야
동을 본 뒤로 더이상 엄마의 가슴을 만질 수가 없었
다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게 성적인 의미라는 걸 깨
닫게 된 것이다 암튼 그래서 그 날 이후 엄마의 가
슴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사실 엄마 가슴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근데 아이들이 엄마 가슴에 대해 언급을 시작한 뒤
로 다시금 엄마의 가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릴 때지만 나는 아무튼 엄마의 가슴을 만져봤기
에 아이들이 엄마 가슴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묘하게 흥분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 성에 눈을 뜨기
전에 만져본 거라 특별한 기분이 남아있지는 않았
지만 그래도 만져보기는 한거니 애들과의 대화 중
왕빨통이나 경실이년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풀발기 가 되어 버렸다
대화는 주로 게임으로 시작해 야동으로 넘어갔다
야동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꼭 울엄마가 등장했
다 국어 경실이년 왕빨통 다 울엄마를 지칭하는 단
어들었다
사실 아다들끼리 모여 한다는 얘기가 대부분 울엄
마 가슴(뭐 대부분 젖통 빨통 젖탱이라고 불리긴 했
지만) 주무르면 어떤 느낌일까 아니면 어떻게 주물
러주면 울엄마가 좋아할까 등과 같은 피상적이고
순진한 내용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울엄마 아니 울엄마의 가슴을 상상하며
자위를 했을 것이다
울엄마는 애새끼들이 자기 가슴만 보는지도 모르
고 나름 엄격한 선생 노릇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이들을 더 꼴리게 만든 듯하다 학원에서는
엄격한 선생이 밤에는 자기 앞에서 다리를 벌려주
는 상상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엄마의 엉덩이에 포커스가 맞
춰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 녀석들은 여자 엉덩이에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는데 엄마가 엉덩이살
이 다 드러날 정도로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온 뒤
로 갑자기 엄마의 엉덩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
작했다 처음 입을 연 건 역시 그 산부인과 집 아들
이었다
"오늘 국어년 엉덩이 봤냐?"
가 시작이었다
속으로야 생각을 했겠지만 아무도 엄마의 엉덩이
를 언급하고 있지 않았는데 결국 그 자식이 물꼬를 틀고야 만 것이다
엉덩이라는 단어가 올라오자 하나둘 각성이라도 한 듯 엉덩이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엉덩이는 울엄마의 엉덩이처럼 크고 빵빵
한 게 좋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갑자기 여자
의 엉덩이에 대한 얘기들이 대화창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 대화를 읽으며 설거지 중인 엄마의 뒷모습
을 바라봤다 자꾸 엄마를 성적으로 취급하는 아이
들때문에 나 역시 매일 보던 엄마의 엉덩이가 특별
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엄마의 바지와
팬티를 벗겨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한테 미안하다
왕빨통 왕엉덩이로 전락한 줄도 모르고 엄마 노릇
선생 노릇에 매진 중인 엄마를 상상하며 거의 매일
자위를 했다
내 망상에 불을 지핀 것은 역시 그 녀석이었다
"경실이년 임신했대"
라는 글이 올라왔다
엄마는 내 동생을 나은 뒤로 임신을 3번 더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40대 초반에 그니까 내가 중고딩
일 때 5년에 걸쳐 3번이나 아이를 가졌다
울엄마가 임신을 한 것은 나와 동생을 포함 총 7번
이다 나를 낳은 다음 해에 임신을 했고 내 동생을
가지기 전 또 한번 임신을 했다
거기까지는 온 가족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근데
한동안 뜸하다가 40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연속
3번 임신을 한 것이다
아버지의 돈벌이가 한창 좋을 때였다 당연히 부부
금술도 좋았겠지 섹스도 많이 했을 것이다 아니
많이 했다 아버지가 서울 본사로 옮긴 뒤부터는 매
일 같이 살았으니까
어릴 때는 언제나 안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근데 내
가 중딩이 된 후로는 밤만 되면 안방 문이 굳게 잠
겨 있었다 엄마 아빠의 방이라기 보다는 남녀가 사
랑을 나누는 공간처럼 느껴졌고 아들인 나에게 그
곳은 점점 금지구역으로 변해갔다
암튼 그때까지만 해도 부부간의 비밀이었던 엄마
의 임신 사실이 아이들 사이에 쫙 퍼지고만 것이다
아이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 녀석은 자
기 아빠가 말해줬다고 했다 의사가 되가지고 환자
의 신상을 가족에게 얘기하다니 그래서 나는 아직
도 의사를 싫어한다
엄마의 임신 사실이 밝혀지자
"그럼 니네 아빠가 국어년 보지 본거야?"
라는 글이 올라왔고
그 녀석은 당당히
"응 봤대 보기만 한 게 아니고 보지를 만져도 봤대
젖통이랑 엉덩이도 막 주무르고"
설마 그 녀석 애비가 아들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을
리가 있나 근데 그때는 모두 그걸 믿었다
"어떻게 생겼대?"
"잠깐 사진 보여줄게?"
나는 순간 긴장했다 그당시만 해도 산부인과에서
여자 보지 사진도 찍는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진짜 보지 사진이 올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봐도 퍼온 사진
근데 그때는 그 사진이 진짜 엄마의 보지라고 믿었
다 워낙 충격적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보지
살이 말도 못하게 쫙 벌어진 개허벌 보지였다 내음
순이 툭 튀어나와 벌어져 있었고 클리토리스가 단
단한 느낌으로 볼록 솟아올라 있었다 구멍도 벌어
져 있었는데 여자가 직접 보지 밑을 잡아 벌리고 있
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 가면 여자가 직접 보지를 벌려야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저기가 클리토리스 여자 성감대 아빠가 만져주니
커진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들 보지 사진을 보며
자위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