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터미널의 그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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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6:15 조회 903회 댓글 0건본문
"그러니까 내 말을 알아듣겄냐 이거여."
"네 손님."
"워뗘?"
"하아...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피곤에 절어있는 어깨를 습관적으로
주물렀다. 벌써 새벽 1시 반...후회가 밀려온다.
지금 내 눈앞에 만취한채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이 할아버님은 벌써 15분째 카운터를 점거한 채로 "대체 황금마차 김 마담은 왜 나를 뺀찌먹이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주제로 토론을 요청해왔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성토하고 있었다.
"맞제? 내말이 맞제? 근데 시상에 암만 변했다구 해도 마..여으자들 맴은 당췌 알다가도 모르거꾸마아"
"아 네...근데 손님 그거 계산하고 드셔야 되는데.."
"아따 내가 돈이 없을까봐잉"
카운터 앞에 진열된 숙취해소 음료를 집어 호쾌하게 마셔버리는 할배.
할배는 한손에는 들고있던 육포와 은단껌을 대충 주머니에 찔러넣더니 이내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던졌다.
"잔돈은...."
"아따 학상 간식 사먹으야"
할배는 만족했다는 듯 숙취해소 음료를 털어넣고 취한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후....먹고 살기 힘들구만."
룸메이트의 편의점 알바 대타로 떔빵지원을 나오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무려 새벽타임..그 말은 즉슨 지금 내방에서는 룸메와 그의 여친이 나체로 나뒹굴고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누군 자기 대신 뺑이치고있는데..하아암.."
고단한지 하품과 함께 졸음기운이 밀려왔던 터라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폴더폰 너머로 그녀와 찍은 배경화면속 시계가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쁜 기집애."
입버릇처럼 혀를 차며 흘긴 눈으로 사진속 너머 혜진이를 꼬집어본다.
.
.
.
그녀를 알고 지낸지도 어느새 두달 반이 지났다.
만난지 한시간만에 밥을 먹고, 만난지 삼일만에 모텔에서 격정적(...)이고 슬픈 밤을 보낸 나는, 그 뒤로도 그녀-혜진이와 세번 만날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원나잇을 너무 거하게 치룬 관계로 우리 서로 술자리에서는 보지말자는 암묵적인 룰 아래 그녀와 영화관, pc방, 에버랜드 데이트를 갖게 되었는데 내심 파이즈리 사건의 복수를 다짐했던 나는 그날 이후 혜진이와의 잠자리를 원했고 데이트가 끝날 때 즈음에는 넌지시 요구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요즘 통금이 좀 빨라졌거든...히히 미안해앵.." 라든지 "아 요즘 생리라..."같은 말들로 나를 되받아 치기 일쑤였고 결국 그날의 복수전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녀 쪽에서 문자는 정말 꼬박꼬박 보내왔는데 스타킹이나 브래지어 색상 고르기같은 시시콜콜한 주제에서 부터 문제의 `승재오빠`에 대한 이야기 까지..나는 사귀지도 않는 여자와 하루에도 백통 가까운 문자를 주고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날밤의- 그녀의 농익은 육체가 생각날 때면 룸메이트 몰래 원룸 화장실에서 자위에 몰두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그녀에 대한 욕망은 식을 기세를 모르고 쌓여가고 있었다.
"누나 생각나서 힘들면 금딸하지말고 이거 보면서 즐겨용 우리 애기"
그녀는 내 엉덩이를 토닥이며 에버랜드 회전목마 앞에서 가슴이 드러나게 찍은 전신 풀샷 사진을 내 핸드폰의 배경으로 강제설정해두었다.
"금딸 안하거든?! 하드에 예쁜 누나들 많이 있거든?!"
"에이 누나들 보다 내 가슴이 더 그리우면서..."
.
.
"나쁜 기집애."
[-모해?-]
그 때 타이밍 좋게 그녀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새벽 두시가 가까운 이 시간에 문자라니..
[-안잤어? 나 편의점알바 대타중.-]
[-또 대타? 바쁘겠넹?-]
[-뭐 그렇지, 아까까진 좀..진상이 달라붙어서-]
[-에구..힘내시게 근로청년.ㅎ_ㅎ-]
이모티콘 너머로 그녀의 표정이 보이는듯 머릿속에 그려진다.
[-혜진이 넌 안자고 머하는데?-]
[-비밀.-]
이게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이라면 이쯤에서 편의점 문을 박차고
그녀가 들어오겠지. 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연하게도 그럴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있잖아 잠깐 전화 돼?-]
[-응? 전화? 한가하긴 한데-]
그녀로 부터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몇일만에 통화에 살짝 긴장했지만 전화를 받기로 했다.
"여보세.."
"여보세여"
"어, 응 혜진이구나, 근데 갑자기 전화는 왜"
"..........ㅎ어........ㅋ있지.....ㅎㅇ..."
평소와 너무 다른 텐션의 그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왜 그래? 어디 아퍼?"
"흐....아니, 그냥..헛...목소리가 듣..고싶어서.."
묘하게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게 느껴졌다.
"응?...어....그래 저번에 집에는 잘들어갔고??"
"흐...어..잘들어..갔지.."
"너 운동이라도 하고있니?..왜 숨을 헐떡..."
"아냐..아냐아..좀 뛰었...따....와서.."
"................"
단지 통화로 몇마디 나눴을 뿐이지만 내 빈곤한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할만큼은 충분했고 덕분에 그 순간 엄청나게 안좋은 상상을 해버렸다
"혜진아."
"..으응?"
"너 같이있지 지금?"
"무슨..소리...이..야?"
"너 승재오빤가 하는 놈이랑같이 있지 지금??"
"아!!..니..야아.."
그녀의 목소리가 요상하게 꼬부라진다.
아아...이건 확실했다.
"바꿔줘봐."
그러나 대답 대신 수화기 너머로는 통화 종료음과 함께 정적이 찾아온다.
"..........씨발...뭐하는거냐고 이게.."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풍경.
내 감이 틀리지 않다면, 그녀는 지금 승재오빠라는 섹스프렌드에게 놀아나고 있을 것이다.
온갖 변태성욕을 그녀를 통해 해소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의 마음에 진심으로 대답하지 않은채 그놈은 여전히 그녀를 갖고 놀고 있는 것이리라..
왠지 초조해지고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다급한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저쪽에서 응답은 없었다.
아직 손님 교대가 올때까지는 5시간이나 남았지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마음이었다. 속타는 마음에 담배 꼬리에 불을 붙여 밤공기와 함께 폣속을 비워낼 뿐이었다.
"푸우..."
입김과 함께 담배연기가 부서져 내린다. 그렇게 니코틴에 의존해서 마음을 추스리며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그녀를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녀를 만나온 요 몇달 간 몇번 생각해본적이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질투인 것인가.
질투라면 사랑에 대한 질투인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그녀의 몸을 갖고 싶어하는 소유욕인 것인가.
알 수 없다.
라기보다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삐뚤어진 애정으로 맹목적으로 한 남자를 바보같이 바라보는 그녀.
그 애정의 끝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걸 알면서도 뛰어들었던 그여자를
내가 뭐라 할 자격이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화내고 초초해 하는 것인가.
담배 한개비가 다 타들어갈때쯤 주머니속에서 문자 수신 진동이 느껴졌다.
"어라..."
[-안녕하세요, 그쪽하곤 처음 인사하는데 저를 찾으셨다면서요? -]
모르는 낮선번호로 온 문자..
그러나 그 문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